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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권력분립 실현이 민주주의 충분조건이다

중앙일보 2019.10.22 00:51 종합 29면 지면보기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이틀 뒤인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민주주의의 주권자는 국민이며 국가 권력은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모두 국민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난 두 달간 우리는 어떤 일을 겪었는가.
 

조국 사태를 생각한다
대의제 망가지면 선출독재로 가
야당 인정·포용하고 협치해야

현대 대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직접 통치 대신에 공직자를 뽑아서 일정 기간 주권을 위임한다. 국민은 공직자가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 뜻에 맞춰 권력을 행사해 주기를 기대한다.그런데 알다시피 권력은 부패한다.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따라서 민주적 선출만으로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선출된 권력이 자의적 지배 대신에 법을 따르도록 하는 헌정주의와, 권력을 견제하는 다른 권력 기관을 두는 권력 분립의 실현이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이다.그렇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선출된 독재체제’ 또는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가 된다. 루소가 말했듯이 이런 체제에서 국민은 투표소 안에서만 주권자이며, 선거가 끝나면 곧 권력자의 노예가 된다.
 
우리가 채택한 대통령제는 특히 권력 분립이 원칙이다. 국민을 노예로 만들지 못하도록 ‘야망으로 야망을 견제’하는 방식이다. 의회와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권을 공격하는 야당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다. 수평적 분립뿐 아니라 수직적 분립도 필수다.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국무회의 심의가 필요하며 총리와 국무위원들의 도장을 찍어야 한다. 헌법과 법률의 조문만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자제와 절제된 운영 행태를 통해 선례와 관습으로 권력 분립은 제도화된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 대통령은 늘 권력 집중의 정점이었다. 지도자의 선출은 경쟁적으로 변했지만, 권력 분립과 민주적 운영은 훨씬 더디게 발전했다. 그러나 최근 20여년간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정치 개혁이 진행됐다. 대통령의 국무위원 임명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하면서 대통령의 인사권도 견제되기 시작했다. 국정 농단으로 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국민 주권의 재확인이었다. 한국식 ‘명예혁명’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탄핵 덕택에 권력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취임 당시 약속을 일찌감치 저버리고, 취임 이후 진영과 권력 집중의 정치를 폈다. 함께 촛불을 들었던 다른 정당들도, 국회도, 전문 관료들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늘 옳고 너는 적폐다’는 프레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국회와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의 선례를 드라마틱하게 깨뜨리며 결함투성이의 조국씨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권력에 의한 권력의 견제 원리는 간단히 무시당했고 국민 주권은 이름만 남게 된 것이다. 대의제는 무너지고 진영 대 진영의 거리 세력 싸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폭도 정치’(Mobocracy)의 순간이 오기 직전에 국민의 힘에 굴복하고 조국 장관은 사퇴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갈린 국민과 무너진 민주주의는 지금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다. 집권 세력은 현실과 유리된 엘리트 정치, 국민을 지도하고 조작하려는 하향식 정치를 지양해야 한다. 대통령은 정파의 대표가 아닌 국민 전체의 대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다수의 폭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권력 행사를 자제하며 야당을 인정·포용하고 국민의 마음을 읽도록 힘써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협치를 국회에서부터 진정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문 대통령이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한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권력 기관의 의무다.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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