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벌 아이] 중국의 최고 싱크탱크를 가다

중앙일보 2019.10.22 00:33 종합 28면 지면보기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베이징의 가을이 바로 천당이다.” 중국의 소설가 라오서(老舍·노사)는 수필 ‘삶의 꿈(住的夢)’에서 베이징의 가을을 극찬했다. 그중에서 청말 열강의 대사관 건물이 밀집한 동교민항(東郊民巷)은 가을 베이징의 백미다. 가을 색 완연하던 지난 14일 동교민항의 옛 네덜란드 대사관 부지의 국무원 참사실(參事室)을 찾았다. 설립 70주년 만에 처음으로 외교사절과 외신기자에게 청사를 공개한 자리였다.
 
참사실의 영어 이름은 ‘스테이트 카운슬러 오피스’, 즉 국가 자문실이다. 1949년 11월 마오쩌둥 주석이 후난사범학교의 은사 푸딩이(符定一) 선생을 중난하이로 초대했다. 음식을 대접하며 인문과 역사를 연구할 중앙문사연구관 겸 참사실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푸딩이는 “학식(文)과 연륜(老)을 갖췄지만 가난한(貧) 인물이 적당하다”며 사양했다. 마오는 “학식·나이·가난뿐 아니라 재능(才)·인덕(德)·명망(望)도 필요하다”며 “저명한 노학자 가운데 일자리가 없어 생활이 어려운 이들로 꾸려달라”고 재차 부탁했다. 중국 최고의 싱크탱크인 참사실의 시작이다. 이후 참사실은 정부의 핵심 과제를 조사·연구해 총리에게 직보하고, 법률의 제정과 개정을 건의하며, 사회 여론을 전달하는 이른바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정책 결정을 돕는 기구로 자리 잡았다.
 
1950년 마오쩌둥(왼쪽)과 푸딩이(오른쪽) 중앙문사관 초대 관장. [사진 국무원참사실]

1950년 마오쩌둥(왼쪽)과 푸딩이(오른쪽) 중앙문사관 초대 관장. [사진 국무원참사실]

참사는 총리가 저명한 학자나 정부의 퇴직 간부 중에서 임명한다. 지난 70년 동안 191명, 현재 41명에 불과하다. 전인대·전국정협 위원보다 영향력이 크다. 왕중웨이(王仲偉) 참사실 주임은 “장관도 이렇게 규격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통일전선 차원에서 비공산당원 비율이 70%다. 퇴임 연령도 비공산당원 70세, 공산당원 65세로 다르다. 야권 위주의 자문기구인 셈이다.
 
자율성은 어떨까.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출신인 쉬셴핑(徐憲平) 참사는 2016년 신경제 보고서에 “부동산은 미쳤고 제조업은 막막하고 노기업은 어렵고 신경제는 찬란하다”고 적었다며 “할 말은 한다”고 강조했다. 창장(長江) 경제 벨트 보고서로 잘못된 규제를 없앤 사례도 언급했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일곱명의 참사는 모두 차관급 이상의 공직자와 학계에서 명망 높은 전문가였다. 현직에서 평생 쌓아온 전문성을 정책에 반영한다는 열의와 자부심이 넘쳤다.
 
중국에는 정당의 집권 경쟁과 자유 언론의 감시는 없다. 대신 참사실을 비롯한 정치 협상 기구들이 정책의 완성도를 높인다. 한국은 종종 집권당의 설익은 정책에 시달린다. 정책 심판을 선거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완결성을 높이면 어떨까.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