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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인싸] 사회적 쟁점 ‘리얼돌’ 국회 법안은 달랑 1건

중앙일보 2019.10.21 05:00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2019년 국정감사장을 달군 정책적 이슈 중 하나는 ‘리얼돌’입니다. 리얼돌이란 주로 여성의 신체를 본뜬 성인용품을 말하는데 지난 6월 대법원이 리얼돌은 개인적 성기구라는 이유로 수입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이후 논란이 거셉니다. 여성계를 중심으로 여성의 성 상품화, 여성혐오적 소비와 범죄화에 대한 우려가 나옵니다. 심지어 특정인의 얼굴로 ‘커스터마이징(맞춤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고,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 청원이 올라와 26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이용주 무소속 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성인용품인 리얼돌을을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 [뉴스1]

이용주 무소속 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성인용품인 리얼돌을을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지난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리얼돌’이 등장했습니다. 무소속 이용주 의원은 “지난 6월 일본에서 제작된 리얼돌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1년에 13건 정도였던 리얼돌 통관 신청이 111건으로 늘어났다”며 “국내에서도 리얼돌이 만들어지고 있고, 세계 섹스토이 시장이 2020년 33조원 규모로 전망되는 상황이기에 산업적 측면에서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시장에서 기업들이 필요하다면 정부가 (리얼돌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과연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앞서 11일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도 리얼돌 이슈를 다뤘습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관세청이 성인용 전신 인형을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단속해 왔으나 대법원이 단순 성인용품으로 간주해 수입을 허용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리얼돌은 현재 국내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에 신속히 관련 부처 협의 하에 규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영문 관세청장은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국민정서를 고려해 통관 금지 조치를 유지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실제 대법원 판결로 통과된 리얼돌 1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허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소송을 했던 리얼돌 수입업체는 지난 14일 정부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리얼돌 수입을 허용하도록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고 현재 4000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리얼돌 수입·통관을 담당하는 인천세관에는 수입을 허용하라는 항의 전화가 걸려온다고 합니다.  
지난 2017년 4월 5일 인천세관본부 조사관이 인천 중구 항동 인천세관본부 강당에서 성인용 전신인형(리얼돌)을 의류제작 마네킹으로 둔갑, 밀수입 위반한 일당 검거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17년 4월 5일 인천세관본부 조사관이 인천 중구 항동 인천세관본부 강당에서 성인용 전신인형(리얼돌)을 의류제작 마네킹으로 둔갑, 밀수입 위반한 일당 검거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사회적 논란인데 비해 국회 차원의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일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리얼돌 관련 법안은 1건에 불과합니다. 무소속 정인화 의원은 지난 8월 아동의 형상을 한 리얼돌의 수입·제작·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인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두 달이 넘도록 해당 법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회 관계자는 “리얼돌 찬반 논쟁이 젠더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회 차원의 대책 논의가 소극적인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용주 의원이 여론의 뭇매를 맞긴 했지만 리얼돌 이슈를 환기시켰다는 점 하나는 칭찬할 만 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지난 9월 리얼돌 관련 국내 법규가 미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미국·호주 등은 성인용 전신 인형에 대한 규제는 하지 않더라도 아동의 형상을 한 리얼돌은 규제하고 있거나 추진 중입니다. 미국 하원은 지난해 6월 아동 형상의 섹스돌·로봇·마네킹 등의 수입·유통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인형이나 로봇은 강간범이 피해자 저항 저지를 연습하는 것을 배우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영국은 2017년 초등학교 운영위원이던 데이비드 터너(당시 72세)가 아동을 성적 대상화한 사진 3만 여장과 100㎝ 크기의 아동 섹스돌을 가지고 있어 논란이 된 후 이를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우리 국회에서도 최소한 이견이 적은 아동 형상의 리얼돌 규제 방안이라도 심도 있게 논의되길 바랍니다. 부작용이 나타난 후에야 규제에 나서려는 건 아닐 거라 믿고 싶습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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