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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질식사 검색’ 미스터리…고유정 의붓아들 살해 쟁점은?

중앙일보 2019.10.21 05:00
“한국 나이로 6살 아이가 자다가 눌려 죽는 일이 흔합니까. 처음부터 타살 가능성을 두고 수사했더라면…”

 
최근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고유정의 현 남편 홍태의(37)씨 측 변호인의 말이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의 의붓아들 A군(사망 당시 만 4세)이 질식사한 사건과 관련해서다. A군은 홍씨가 전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다.

 

7개월 걸린 수사…왜 경찰은 남편 의심했나

고유정과 사건 관계도. [중앙포토]

고유정과 사건 관계도. [중앙포토]

 
이 사건은 3월 초에 일어났지만 경찰 수사만 7개월 가까이 걸렸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고유정에 대해 A군 살해 혐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이 고유정을 범인으로 특정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쯤, 잠에서 깬 홍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젯밤 옆에서 잠든 아들이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입에선 피가 흘렀고 숨을 쉬지 않았다. 따로 떨어져 있던 부부가 청주 집에서 만난 지 이틀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를 안고 거실로 뛰쳐나온 홍씨는 먼저 깨어있던 고유정에게 신고를 하라고 소리쳤다. 소방관인 홍씨는 아들에게 급히 인공호흡을 실시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그가 몇 시간 전에 사망했음을 보여주는 시반(屍斑)이 형성되어 있었다.
 
3월 1일 자정, 고유정의 남편 홍씨와 아들이 잠들 당시 모습(왼쪽)과 다음날 오전 10시, 홍씨가 잠에서 깼을 당시 모습(오른쪽) [홍씨 측 변호인 제공]

3월 1일 자정, 고유정의 남편 홍씨와 아들이 잠들 당시 모습(왼쪽)과 다음날 오전 10시, 홍씨가 잠에서 깼을 당시 모습(오른쪽) [홍씨 측 변호인 제공]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A군은 ‘10여분간의 강한 압착에 의한 질식사’였다. 누른 사람은 그 시간 자택에 있던 두 명 중 한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경찰은 홍씨가 자다가 실수로 아들을 다리로 눌러 사망케 한 혐의(과실치사)에 무게를 두고 조사해왔다. 5월 말 고유정의 전 남편 살해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홍씨는 계속 피의자 신분이었다.
 
단순 실수였다면 고유정보다는 홍씨가 더 유력해보이는 측면은 있었다. 전날 고유정은 감기 기운이 있다며 다른 방에서 잤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서 “잠을 자면서 무의식 중에 피해자의 몸에 다리를 올렸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홍씨가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한 이유다.

 

"당신 잠잘 때 누르는 버릇있다"며 강조

고의적 타살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 남편 사망 사건을 알게 된 뒤에서야 홍씨는 아들마저 고유정이 살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내의 수상한 행적들도 눈에 밟혔다. 홍씨 측은 “각자의 아들을 데려와 함께 살자는 제안에 탐탁치 않아하던 고유정이 4개월 전부터 갑자기 함께 살자고 나를 설득해왔다”고 주장했다.
 
고유정과 남편 홍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홍씨 측 변호인 제공]

고유정과 남편 홍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홍씨 측 변호인 제공]

사건 5일 전부터 고유정은 남편에게 ‘감기 기운이 있으니 각방을 쓰자’고 했다. ‘당신이 잠잘 때 막 움직인다’ ‘몸으로 나를 누른 적이 있다’며 잠버릇 얘기를 미리 남편에게 일러두기도 했다. 수면다원검사 결과 실제로 홍씨에게 특이한 잠버릇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밖에 고유정은 A군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남편이 없는 사이 A군의 피가 묻은 전기장판과 침대 시트, 이불을 모두 치워버리는 의문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그럼에도 고유정의 혐의 입증에는 걸림돌이 있었다. 남편이 깰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몰래 살해하는 게 가능하냐는 거였다. 홍씨 측은 전 남편 살해와 똑같은 수법으로 고유정이 자신에게 미리 수면제를 먹였을 가능성을 주장했으나 별다른 약물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수면제·질식사 검색 기록…유죄 인정 근거 될까 

지난 7월, 뒤늦게 홍씨 모발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사건의 실마리가 잡혔다. 범죄에 잘 쓰이지 않는 종류의 수면 보조제여서 국과수 첫 분석 당시엔 배제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고유정은 같은 종류의 약물을 처방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당일 새벽 고유정이 잠을 자지 않고 깨어있었으며, PC로 아들 살해방법을 검색한 사실도 인터넷 기록을 통해 추가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고유정이 A군을 살해했을 거라 판단했다.

 
이제 검찰의 기소와 재판만 남았지만 혐의 입증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드러난 증거들이 살해의 직접 증거가 아닌 정황 증거에 가깝기 때문이다. 고유정 측은 ‘처방받은 수면제를 사용하지 않고 버렸다’며 여전히 남편의 과실치사를 주장하고 있다. 자신을 아들 살해범으로 몰아간다며 홍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홍씨 측은 경찰이 수사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며 비판했다. 사고 당시 A군의 등과 목 부근에는 멍이 들었고 얼굴에는 강하게 긁힌 상처가 있었다. 법의학자들은 몸무게 65kg의 홍씨가 무의식중에 다리를 올린 것 만으로 이런 멍과 상처가 나거나, 사망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며 타살 가능성을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남편의 과실치사 혐의 조사에 시간을 끌어 수사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주장이다.

 
A군이 타살당했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법원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살인’ 또는 ‘과실치사’라는 이름으로 사망의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양 측은 법정에서도 치열하게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내달 안에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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