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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올림픽의 몸값

중앙일보 2019.10.21 00:13 종합 31면 지면보기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1964년 도쿄올림픽을 두 달여 남겨놓고 일본 경시청에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나는 도쿄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할 것이다. 며칠 안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요구는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 뒤이어 도쿄 시내 곳곳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하고, 주경기장 폭발을 계획한 범인은 이를 막으려면 8000만 엔을 내라고 요구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올림픽의 몸값』의 내용이다.
 
올림픽을 인질 삼아 국가를 협박하는 이 소설의 내용이 갑자기 떠오른 건 최근 자주 등장하는 남북 올림픽 공동개최 추진 뉴스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주한 외교단 초청 리셉션에서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 지난달에도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만나 공동 유치 추진 의사를 밝혔다.
 
올림픽은 비싼 행사다. 각종 시설을 갖추는 데 많은 돈이 든다. 지난해 서울시가 제출한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 개최 유치 동의안’에 따르면 개회식과 폐회식, 경기장 보수, 경기 운영 등 순수 운영 예산으로만 34억 달러(약 4조원)가 들 것으로 추산됐다. 도로와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비용은 뺀 금액이다. 북한의 열악한 인프라 상황을 감안하면 천문학적 비용이 예상된다. 게다가 대회가 끝난 뒤 각종 시설은 ‘하얀 코끼리’(수익성 없고 쓸모없는 투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 비용이나 대회 이후의 손실을 계산에 넣지 않더라도 감당해야 할 더 큰 문제는 북한의 변심이라는 불확실성이다. 관중과 중계방송, 취재진 없이 ‘3무(無)’의 깜깜이로 진행된 축구대표팀의 평양 원정경기는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줬다. 한반도 평화증진이란 명분 속에 예측 불가능한 올림픽의 몸값까지 치러야 할 국민의 고단함은 안중에 없는 걸까.
 
하현옥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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