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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文대통령 만나던 그 때···美대사관저 뚫렸다

중앙일보 2019.10.19 06:43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미국 대사관저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반대하는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페이스북]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미국 대사관저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반대하는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페이스북]

진보성향 단체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 등 19명이 미국 대사관저를 기습 점거하는 사건이 18일 일어났다. 미국 대사가 머무르는 관저(일명 하비브 하우스)에 한국인이 들어가 시위를 벌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1980년대 후반 서울과 부산 등의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악화된 한·미 관계를 보여준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8일 오후 2시 56분 준비한 사다리로 월담
"내정간섭 해리스 미 대사 떠나라" 요구 농성
86년엔 부산 미 문화원 점거 농성 시도 사례

진보연합 소속 대학생들은 이날 오후 2시 56분쯤부터 서울 종로구 소재 미 대사관저 담벼락에 사다리를 놓고 월담을 시도했다. 미 대사관 측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대사관저에 난입한 17명을 특수 건조물 침입 협의로 현행범 체포했고, 담을 넘는 과정에서 경찰의 제지로 대사관저에 들어가지 못한 2명은 미수 혐의로 체포했다. 
 
대사관저에 진입한 대학생들은 하비브 하우스 현관 앞까지 진출해 ‘미군 지원금 5배 증액 요구 해리스는 이 땅을 떠나라!!’는 현수막을 들고 “내정 간섭 해리스 반대” 등 구호를 외쳤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비판하는 취지였다.
 

청와대서 문 대통령 만난 해리스, 일찍 자리 떠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외교단 초청 리셥션에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외교단 초청 리셥션에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비슷한 시간 해리스 대사는 청와대 녹지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주한 외교단 초청 리셉션에 참석해 있었다. 리셉션에는 해리스 미 대사와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포함한 한국 주재 111개국 대사와 17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해 있었다.  
 
해리스 대사는 2시 34분쯤 녹지원에 도착했고 자리 배치는 나가미네 대사와 추궈홍 대사 등과 함께 헤드 테이블이었다고 한다. 해리스 대사는 오후 5시 문 대통령의 환영사를 듣고 5시 40분쯤 자리를 먼저 떴다. 문 대통령이 녹지원을 떠나기 전이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있었던 한 소식통은 “해리스 대사가 나가미네 대사 등과 함께 앉아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대통령보다 먼저 자리를 떴다”고 말했다. 
 
보통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는 보안 등의 이유로 통신을 차단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에는 외국 사절단을 초청한 만큼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해리스 대사가 대사관저 침입 사건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외교부 “외교 공관 공격 정당화될 수 없어”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을 반대하며 1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주한 미국대사관 관저 담장을 넘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학생들을 경찰병력이 연행하고 있다. [뉴시스]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을 반대하며 1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주한 미국대사관 관저 담장을 넘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학생들을 경찰병력이 연행하고 있다. [뉴시스]

외교부는 이날 오후 5시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미국 대사관저에 무단 침입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우려를 표하며 관계 부처에 주한 미국 대사관 및 관저에 대한 경계 강화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어떠한 경우에도 위와 같은 외교 공관에 대한 위해나 공격은 정당화될될 수 없다”며 “정부는 공관 지역을 보호하고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도 사건 직후 신속하게 보고가 됐다”고 설명했다.  
 

미 대사관 “14개월 만에 또 침입..강한 우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방위비분담금 협상 관련 기습 농성을 하기 위해 담벼락을 넘고 있다. [뉴시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방위비분담금 협상 관련 기습 농성을 하기 위해 담벼락을 넘고 있다. [뉴시스]

대사관저 난입 사건에 미국 대사관은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을 내 강한 우려를 분명하게 표명했다. 대사관 측은 “약 20명의 한국인이 대사관 구내에 불법적으로 진입하고, 내부에 강제 진입을 시도했다”며 “대사관은 14개월 만에 대사가 머무르는 관저에 불법적으로 침입하는 사건이 두 차례나 발생한 데 대해 강한 우려를 갖고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정부에 한국의 모든 외교 사절단에 대한 보호 노력을 강화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9월에는 한밤중 중국 국적의 동포 여성이 대사관저에 무단진입해 돌아다니다가 관저 근무자에게 적발당해 주거침입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다만 이 여성은 “한국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며 횡설수설하는 등 미국 정부를 뚜렷하게 겨냥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반면 이날 벌어진 사건은 진보단체 학생들이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관련해 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벌인 시위였다. 반미 시위라는 점에서 1980년대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얘기도 나온다. 
 
85년 5월 전국학생총연합 산하 투쟁조직인 삼민투위 소속 등 대학생 73명은 “광주 학살 사태에 미 정부가 책임을 지라”며 서울 을지로 소재 미문화원 도서관을 기습 점거, 단식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사흘 만에 농성을 풀고 나와 경찰에 연행됐다. 이듬해에는 부산대 반미·자주파 학생모임인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 13명이 부산 대청동의 미문화원에 “미제 축출” 등 구호와 함께 화염병을 던지며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점거 농성까지 가지는 못 했다. 앞서 82년엔 부산 고신대 학생들이 "미국은 5·18 광주 사태를 책임지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며 부산 미문화원에 잠입해 방화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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