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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터키의 쿠르드 말살과 저항···그 뒤엔 '아저씨' 오잘란이 있다

중앙일보 2019.10.19 05:00
지난 6일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자 터키가 9일부터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하고 있다. 사태가 긴박해지자 미국의 마크 펜스 부통령이 날아가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5일간의 휴전에 합의했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은 중동에 새로운 분쟁을 일으키고 인도주의 위기를 몰고 오는 것은 물론, 지역의 정치 지형도까지 뒤흔들고 있다.  

쿠르드 노동자당(PKK) 세워 독립 구심점
터키의 쿠르드족 박해와 문화말살에 저항
공산혁명 통한 쿠르드 국가 수립 주장해
4만 희생 84년 봉기로 PKK, 테러단체 지정
오잘란, 99년 체포돼 외딴 섬 홀로 수감
오잘란 사진, 쿠르드 시위현장의 필수품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위원회 앞에서 지난 9일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을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한 사람이 쿠르드 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사진을 들고 있다.사진에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구호이자 단체 이름이 영문으로 적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위원회 앞에서 지난 9일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을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한 사람이 쿠르드 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사진을 들고 있다.사진에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구호이자 단체 이름이 영문으로 적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터키, 쿠르드노동자당(PKK)을 테러단체로 지정

터키는 왜 이럴까? 터키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족이 터키에서 설립한 정치·군사 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손잡고 독립국가 건설을 추진한다고 비난한다. 이에 따라 터키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PKK는 물론 시리아 쿠르드족의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YPG)와 이라크 쿠르드족의 민병대인 페슈메르가를 모두 테러 단체로 규정한다. 터키는 이번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을 테러 세력 응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터키는 이번에 YPG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을 공격했지만, 다음에는 총부리를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구의 민병대인 페슈메르가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국과 손잡고 각각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IS를 몰아내는 데 협력한 YPG와 페슈메르가를 테러 세력으로 모는 것은 국제사회의 거부감만 부를 가능성이 크다. 특히 IS의 파리나 브뤼셀 테러 등으로 적지 않은 민간인이 희생된 유럽 국가들은 벌써 터키에 무기 수출을 금지하고 제재를 논의하고 있다.  
 
터키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터키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PKK는 IS보다 더하다”며 터키 동조

그럼에도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 조직이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도널드 대통령마저 “PKK는 (중동 극단주의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보다 더하다”는 발언으로 터키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터키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집요하게 쿠르드족을 공격할까. 에르도안과 트럼프는 왜 PKK를 그렇게 적대시할까. 그 배경에는 PKK와 터키와의 오랜 악연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악연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유엔 건물 앞에서 지난 11일 벌어진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 항의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사진 앞에서 승리를 상징하는 V자를 손가락으로 그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유엔 건물 앞에서 지난 11일 벌어진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 항의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사진 앞에서 승리를 상징하는 V자를 손가락으로 그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쿠르드족이 ‘아포(아저씨)’로 부르는 오잘란

악연의 중심에는 쿠르드족이 ‘아포’로 부르는 압둘라 오잘란이 자리 잡고 있다. 아포는 쿠르드어로 ‘아저씨’라는 뜻도 되고, 압둘라의 축약형도 된다. 쿠르드족의 구세주 ‘아저씨’인 셈이다. 터키는 오잘란을 테러분자로 여기지만 쿠르드 세계에서 그는 ‘넬슨 만델라’급의 인물로 통한다. 이번에 미국이 시리아에서 철수하며 시리아 쿠르드족이 터키에 공격을 받자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린 시위 현장에는 오잘란의 사진과 PKK의 깃발이 등장하고 있다. 이란과 이라크 국경에는 거대한 오잘란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잘란의 얼굴은 수많은 희생자의 작은 사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오잘란에 대한 쿠르드족의 존경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검문소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 쿠르드 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과 전사자들의 사진이 함께 보인다. 쿠르드족 사이에서 오잘란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AP=연합뉴스]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검문소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 쿠르드 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과 전사자들의 사진이 함께 보인다. 쿠르드족 사이에서 오잘란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AP=연합뉴스]

공산혁명 통한 쿠르드족 독립국가 건국 꿈꿔  

1978년 11월 27일 터키 동부 디야르바키르 주의 작은 마을인 리스에서 앙카라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압둘라 오잘란이 이끄는 쿠르드족 대학생들이 쿠르드 노동자당(PKK)을 설립했다. 원래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바탕으로 노동계급의 대중운동과 혁명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자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조직이었다. 독특한 점은 혁명적 사회주의에다 쿠르드 민족주의를 결합했다는 점이다. 쿠르드족이 사는 쿠르디스탄에 독립 공산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공산 혁명을 통해 터키와 자본주의 세계를 누른 뒤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건설을 꿈꾼 셈이다. 쿠르드족은 오잘란이 쿠르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을 결합해 PKK를 창설한 1978년을 쿠르드 자각 운동의 시작으로 여긴다. 쿠르드족은 터키에서 분리 독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룹부터, 터키에서 더 많은 자치를 얻어내자는 그룹, 터키에서 소수민족으로 인정받아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추구하는 그룹 등 다양한 지향점을 가진 수많은 분파가 있다. PKK는 현재 공산주의 색채는 희미해지고 쿠르드 민족주의만 남아 구심체 역할을 한다.  
PKK를 설립한 오잘란과 대학생들이 ‘공산 쿠르디스탄’을 꿈꾼 가장 큰 이유는 터키 정부의 쿠르드족 차별과 억압, 그리고 동화 정책이었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 되면서 서방 자본주의 세계의 일원으로서 공산국가인 소련에 맞섰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지난 13일 열린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 항의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사진과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YPG)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지난 13일 열린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 항의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사진과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YPG)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터키, 쿠르드족 무시·박해에 동화까지 추진

그런 터키 정부는 당시 쿠르드족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터키에는 소수민족이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었다. 쿠르드인을 존재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취급한 셈이다. 쿠르드족이라는 말 대신 ‘산악 터키인’으로 부르다 1991년에야 이를 포기했다.  
공식 장소에선 쿠르드나 쿠르디스탄, 또는 쿠르드인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못 하게 했다. 주로 터키 동부인 쿠르드 거주지에서는 쿠르드어 사용, 민속 의상 착용, 심지어 쿠르드 전래 동화책이나 쿠르드식 이름까지 금지했다. 쿠르드인을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말살하거나 동화하려고 시도한 셈이다. 인구의 19% 정도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이 분리, 독립을 요구할까봐 아예 철저하게 억눌렀다고 볼 수 있다.  
터키의 쿠르드 대학생들이 PKK를 만든 배경에는 이러한 터키의 쿠르드족 차별, 말살, 동화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PKK 설립 목적은 이런 상황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들은 터키에서 쿠르드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 공식 인정받아 이에 준하는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싶어했다.  
쿠르드족 거주지역. [CIA 월드팩트북]

쿠르드족 거주지역. [CIA 월드팩트북]

 

군사정부, 쿠르드어 사용 공식 금지하기도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터키 군사정부는 한술 더 떠 쿠르드어 사용을 공식적으로 완전 금지했다. 학교에서 쿠르드어 교육은 물론 쿠르드어 책이나 신문 출간, 그리고 방송 자체가 금지됐다. 공공장소에서 쿠르드어로 말을 하거나 쿠르드어로 된 출간물을 발행하거나, 심지어 쿠르드어 노래를 불러도 체포돼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을 떠올리게 하는 정책들이다. PKK는 이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으며, 터키에서는 물론 국경을 넘어 이라크의 쿠르드족과도 손을 잡았다. 터키와 이라크는 PKK의 활동 무대가 됐다.        
 

터키 쿠르드족, 1984년 봉기했다 4만 희생

PKK는 1984년 8월 15일 쿠르드 봉기를 선언했으며, 이 봉기는 1999년 9월 1일 PKK가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할 때까지 계속됐다. 봉기의 대가는 혹독했다. 이 봉기로 4만여 명이 숨졌으며, 희생자의 대부분은 쿠르드족 거주지인 터키 동부에서 터키군에 사살된 쿠르드족 민간인이었다. 쿠르드족 학살, 고문, 임의 체포, 강제 이주, 마을 파괴를 비롯한 수천 건의 인권유린도 고발됐다. 상당수 쿠르드족 지식인도 사라지거나 살해됐다. 터키 동부의 쿠르드족 거주지는 초토화했다. 터키 외교부는 1984년부터 계속된 이러한 갈등으로 터키가 3000억~45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보았으며 특히 주요 산업인 관광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7년 10월 22일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열린 쿠르드노동자당(PKK) 반대 시위. 터키 정부는 PKK를 테러 단체로 규정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2007년 10월 22일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열린 쿠르드노동자당(PKK) 반대 시위. 터키 정부는 PKK를 테러 단체로 규정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PKK, 서방에서 테러단체 규정돼

PKK도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가장 큰 정치적 타격은 국제사회로부터 테러단체로 지정됐다는 사실이다. 터키는 물론 미국과 나토, 유럽연합(EU), 호주와 쿠르드족이 소수민족으로 거주하는 시리아도 PKK를 테러 단체로 지목됐다.  
PKK를 결성한 이듬해인 1979년부터 시리아로 건너가 쿠르드족의 보호를 받고 살았던 오잘란은 이 때문에 1998년 시리아에서 추방됐다. 러시아를 거쳐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지내던 오잘란은 1999년 유럽을 떠나 위조여권을 들고 아프리카 케냐로 거처를 옮겼다. 케냐의 나이로비 주재 그리스 대사관에 머물던 오잘란은 1999년 2월 15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협조를 받은 터키국가정보국(MIT)에 체포돼 터키로 압송됐다.  
압둘라 오잘란. [사진 Freedom for Abdullah Ocalan-Peace in Kurdistan]

압둘라 오잘란. [사진 Freedom for Abdullah Ocalan-Peace in Kurdistan]

 

오잘란, 99년 잡혀 사형선고 뒤 무기감형   

오잘란이 체포되면서 유럽 전역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주로 외교 공관에서 열렸다. 터키를 압박해달라는 의미였다. 터키가 독일에 초청노동자를 보내면서 터키 국민인 쿠르드족도 따라서 이주하면서 유럽 전역에는 독일 80만 명 등 100만 명 이상의 쿠르드족이 거주한다. 당시 쿠르드족 일부는 베를린의 이스라엘 총영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다 공관에 진입하자 이스라엘 보안대원은 규칙에 따라 이들에게 총격을 가해 시위대원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항의도 무의미하게 오잘란은 터키 법원에서 무장단체 구성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유럽연합(EU)이 터키의 가입 조건으로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면서 오잘란은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오잘란은 터키 내해인 마르마라 해에 있는 이마랄리 섬의 감옥에 감금됐다. 2009년까지 10년간 오잘란은 이 감옥에 홀로 수감됐다. 오잘란은 ‘이마랄리의 나홀로 수감자’가 됐다.  
 

오잘란과 PKK는 터키-쿠르드 이해 열쇠

PKK는 오잘란이 터키 당국에 체포된 뒤 1999년 9월 1일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다. 지도자의 체포로 기가 꺾인 셈이다. 하지만 결국 2004년 6월 1일 휴전 종료를 선언하고 다시 무장 투쟁에 들어갔다. 양측의 교전은 2011년 여름 이후 치열해졌지만 2013년 터키 정부는 오잘란과 대화를 시도했으며 2013년 3월 21일 오잘란은 무장 투쟁의 종식과 휴전을 선언하고, 사태를 대화로 풀겠다고 밝혔다.  
PKK는 이슬람국가(IS)와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이라크 쿠르드족을 터키가 공습하고 지상군도 파견하자 2015년 7월 25일 휴전을 다시 무효화했다. PKK는 에르도안이 이끄는 터키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과 비밀 접촉을 하면서 사실상 휴전을 이어가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감옥 속의 오잘란은 ‘무장투쟁은 옛날 방식이고 이젠 진화해야’라고 주장하는 책을 냈지만 진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오잘란과 PKK는 터키와 쿠르드 간 불신과 증오를 이해하는 열쇠다. 어쩌면 쿠르드 사태의 해결 방안도 여기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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