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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를 그리기 전, 가시에 찔려보라

중앙선데이 2019.10.19 00:21 657호 17면 지면보기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 <21>

지금은 차이가 그렇게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유학을 떠난 독일에서 난 절망했다. 일상에서 접하는 독일 물건은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견고하고 깔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동차 외부의 철판부터 치약의 튜브에 이르기까지, 내가 당시 한국에서 접했던 물건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최근 독일 자동차의 ‘디젤 사태’로 ‘메이드 인 저머니’의 위상이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독일 물건’이 갖고 있는 질감의 특별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바로 재료가 가지는 기능을 이해하고 물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바우하우스는 재료의 질감 중시
그 느낌을 예술적 승화로 유도
클레 그림이 철학자 사랑받은 이유
재료 뒤섞어 만들어낸 질감 때문

‘형태’와 더불어 ‘재료’는 바우하우스 예술교육의 양 날개였다. 바우하우스 선생들은 나무·철·천·점토·유리·돌·색채와 같은 다양한 재료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철저하게 가르쳤다.<사진3> 이텐의 예비과정에서 있었던 ‘엉겅퀴 실습’은 재료의 특징을 학습하는 방법을 잘 보여준다. 이텐은 학생들에게 엉겅퀴 잎의 가시를 피부에 문지르게 했다. 그리고 그 아픈 느낌을 가지고 엉겅퀴를 종이에 표현하도록 했다. 피부로 직접 경험해야 재료의 특징을 알 수 있다는 거다. <사진2>는 예비과정의 학생 군타 슈퇼츨(그녀는 후에 바우하우스 직물공방의 마이스터로 활약하게 된다)이 이텐의 기초과정에서 그린 엉겅퀴 그림이다.
 
재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느낌은 달라진다
 
① 엉겅퀴. ② 바우하우스 학생 군타 슈퇼츨의 엉겅퀴 그림.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① 엉겅퀴. ② 바우하우스 학생 군타 슈퇼츨의 엉겅퀴 그림.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이텐의 재료교육은 20세기 말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캐논 뉴런(canonical neuron)’이나 ‘거울 뉴런(mirror neuron)’에 관한 뇌과학적 설명에 비춰보았을 때 매우 흥미롭다. 1990년대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지아코모 리촐라티 연구팀은 원숭이 실험에서 특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의 행동을 보고만 있을 뿐인데도, 실제 행동할 때와 같은 뇌의 특정 부위(‘F5영역’)가 활성화되는 것이었다. 이른바 ‘거울 뉴런’의 발견이다.
 
인간에게 있어 거울 뉴런은 원숭이에 비해 훨씬 정교하게 발달한 것으로 최근의 뇌과학 연구들은 보고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적으로 거울 뉴런의 존재는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타인의 마음에 관한 가설을 세우는 인간 특유의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을 가능케 한다. 정서심리학적으로는 거울 뉴런은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는 ‘공감 능력’의 토대가 된다.
 
‘캐논 뉴런’은 ‘거울 뉴런’과 유사하지만 주로 운동 영역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거울 뉴런은 주로 타인의 행위를 관찰할 때 활성화되지만, 캐논 뉴런은 단지 특정 물건을 보는 것만으로 그 물건과 관련된 운동 영역이 활성화된다. 숟가락을 단지 보는 것만으로 숟가락을 가지고 뜨는 행동을 할 때와 똑같은 부위가 활성화되고, 삽을 보면 삽으로 흙을 퍼내는 행위를 할 때와 동일한 뇌의 부위가 활성화된다. 물론 거울 뉴런과 캐논 뉴런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시스템이 아니다. 수시로 연합하여 뇌의 감각과 운동 영역을 활성화시켜 타인 및 대상과의 상호작용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캐논 뉴런’과 ‘거울 뉴런’의 발견 이전에도 심리학에서는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인간 특유의 문화적 행위를 개념화하려고 시도했다. 러시아의 문화심리학자 알렉세이 레온체프는 인간이 만들어낸 물체에는 인간 노동의 역사가 담겨있다는 것을 ‘대상적 행위’라고 개념화했다. 인간 의식의 진화 과정은 노동에 사용된 도구의 역사와 상응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생태심리학자 깁슨은 ‘행동유도성(afforda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대상은 목적에 맞는 일정한 행동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문을 보면 열게 되어있고, 의자를 보면 앉게 되어 있다.
 
‘캐논 뉴런’과 ‘거울 뉴런’의 존재는 우리가 어떤 물질을 볼 때, 그 물질의 질감·색상·밀도와 같은 표면의 자극만으로도 그 자극과 관련된 행동과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것을 뜻한다. 손으로 직접 만든 거친 벽돌은 기계로 찍어낸 매끈한 벽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핸드메이드’의 특별함은 이렇게 뇌과학으로 설명된다). ‘캐논 뉴런’, ‘거울 뉴런’의 활성화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에 이텐이 만든 바우하우스 기초과정의 재료교육이 갖는 의미가 담겨있다. 재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달라지는 우리의 느낌을 예술적 창조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이야기다. 엉겅퀴 가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가시의 느낌과 관련 움직임이 활성화되는 것처럼, 온갖 예술재료들의 감각적 경험이 축적되어야 필요한 곳에 제대로 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이건 엄청 중요한 이야기다!).
 
클레 그림의 선에 나타난 특이성
 
③ 이텐의 ‘예비과정’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실습을 했다. ④ 클레의 ‘줄 타는 사람’. ⑤ 클레가 온갖 재료를 모아 만들어 낸 인형. 이 인형들을 가지고 클레는 아들에게 수시로 인형극을 보여주었다. [사진 윤광준]

③ 이텐의 ‘예비과정’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실습을 했다. ④ 클레의 ‘줄 타는 사람’. ⑤ 클레가 온갖 재료를 모아 만들어 낸 인형. 이 인형들을 가지고 클레는 아들에게 수시로 인형극을 보여주었다. [사진 윤광준]

비록 당시의 과학적 수준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관찰만으로도 활성화되는 이 같은 감각과 운동의 내적 경험에 관한 창조적 직관을 이텐을 비롯한 바우하우스 선생들은 예술교육과정으로 구체화했다. 이 같은 바우하우스의 예술교육이 독일 산업디자인의 기초가 되어, 오늘날 ‘독일제 물건’의 특별한 ‘질감’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물건이 여전히 따라잡지 못하는 디자인의 차원은 바로 이 재료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질감’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는 바로 쫓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질감’은 압축적 학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의 ‘문화 학습(cultural learning)’이 있어야 가능하다. 물론 한국문화 특유의 ‘질감’도 존재한다. 관건은 이를 얼마나 세계화할 수 있는가이다.
 
이텐과 마찬가지로 클레도 온갖 재료를 실험했다. 캔버스에 일반적인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이 없었다. 헝겊조각·황마·삼베·포장지·신문 등을 붙여 그림을 그렸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인형까지도 직접 만들었다.<사진5> 수채화 물감 뿐만 아니라 유화·템페라·과슈와 같은 다양한 물감을 섞어 실험했다. 색깔이 있는 물질은 죄다 캔버스에 옮겨놓으려 했다. 심지어는 기름과 달걀을 이용해 캔버스에 바탕을 칠하기도 했다. 비평가들은 재료의 변화가 너무 다채로운 그의 그림을 가리켜 ‘재료의 선동(Provokation der Materie)’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클레 그림이 유독 하이데거, 메르로-퐁티, 벤야민 같은 철학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의 그림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질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클레 그림의 그 특별한 느낌이 철학자들의 ‘거울 뉴런’과 ‘캐논 뉴런’에 근거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화가들에 비해 클레의 그림이 가지는 특별함은 그가 사용한 ‘선’에서 가장 분명해진다(내게는 그렇다. 그의 ‘선’에 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프랑스 화가 들로네의 영향으로 ‘색채’에 관한 다양한 회화를 실험했지만, 클레는 시작부터 끝까지 ‘선’의 화가였다. ‘선’이라고 다 같은 ‘선’이 아니다. 클레의 그림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질감의 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통의 물감이나 잉크로 그려지는 선의 질감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줄 타는 사람(Seiltänzer)’과 같은 그림이다.<사진4> 일단, 그림의 선이 깔끔하지 않다. 잉크로 선을 긋다가 물감이 새어나온 듯한 흔적이 곳곳에 있다. 화면 여기저기에 지저분하게 검은 물감이 묻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참 묘한 느낌을 주며 한참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같이 ‘지저분한 선(!)’은 클레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클레가 이 선의 질감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찾아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비밀을 몇 년 전 방문한 베른의 클레 미술관에서 알게 됐다. 클레는 화선지와 같은 일본 종이에 검은색 유화 물감을 가득 칠했다. 그리고 수채화 종이에 일본 종이를 거꾸로 대고 그 뒤에 못으로 그림을 그렸다. 검은색 유화 물감이 칠해진 일본 종이를 마치 먹지처럼 사용한 것이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유화 물감의 선이 수채화 종이 위에 그려졌다. 그 위에 연한 수채화 물감을 칠하면 기름의 유화 물감 선과 수채화 물감이 서로 밀어내며 묘한 대조적 질감을 만들어낸다.
 
클레 그림의 ‘지저분한 선’으로 인해 학창시절 싸구려 만년필의 잉크가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려 손은 물론, 교복 곳곳에 얼룩졌던 기억과 관련된 ‘캐논 뉴런’이 활성화된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클레를 좋아했던 철학자들도 나처럼 만년필 관련 ‘캐논 뉴런’이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기억을 ‘문화 기억(kulturelles Gedächtnis)’이라 한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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