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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사랑의 정치가 사회개혁 지름길

중앙선데이 2019.10.19 00:20 657호 20면 지면보기
정치적 감정

정치적 감정

정치적 감정
마사 누스바움 지음

미국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링컨·간디·타고르 연설문 분석
“보편성 호소해야 대중 단결
사랑의 감정, 정치가 키워야”

박용준 옮김
글항아리
 
어수선한 정국에 단정한 책 한권이 도착했다.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마사 누스바움의 『정치적 감정: 정의를 위해 왜 사랑이 중요한가』이다. 어쩌면 지금 한국에 곡진하게 필요한 법윤리학이라는 분야에서 갈고 닦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두툼한 저작이다. 지난 두 달 동안 펼쳐진 ‘조국 대전’에서 많이 등장한 단어들이 이 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정의·도덕·혐오·동정심·권위 같은 용어들뿐만이 아니라, 각자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개탄할 때 종종 등장하는 ‘품위 있는 사회’에 대한 요청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누스바움의 사상을 지탱하는 중심축은 역량 접근법이라는 개념이다. 역량 접근법은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의 것이지만, 누스바움은 이 개념을 더 가다듬어서 자신의 개념으로 만들었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이른바 ‘품위 있는 사회’는 구성원 모두에게 풍요롭고 보람찬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누스바움에게 자유는 굶주림이나 빈곤 같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고, 기회는 공동체를 위해 심사숙고해서 발언할 수 있는 참여의 보장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감정은 앞서 출판한 『역량의 창조』에서 정의한 10대 핵심 역량 중 하나이다. 이 10대 역량은 생명, 신체건강, 신체보전,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천이성, 관계, 인간 이외의 종, 놀이, 환경 통제인데, 온라인 매체인 ‘오픈 데모크라시’와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누스바움은 “시민의 희생과 이타주의를 요구하는 정치적 원리”를 옹호하기 위해 감정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고 밝혔다. 물론 『역량의 창조』 이전에 누스바움은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격동』에서 감정과 인지적 판단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누스바움의 결론은 감정들은 인지적 판단을 필수적으로 내포할 뿐만 아니라, 가치판단의 지각 또는 사고의 형태를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두 개의 촛불 로 갈린 민심을 통합하는 방법을 뭘까.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공정함을 열망하는 사랑의 정치를 강조한다. [연합뉴스]

두 개의 촛불 로 갈린 민심을 통합하는 방법을 뭘까.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공정함을 열망하는 사랑의 정치를 강조한다. [연합뉴스]

우리가 감정과 무관하다고 믿는 판단도 사실은 감정의 개입 없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스바움은 증명하고자 했다. 분명히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염두에 두고 지은 것으로 짐작 가는 『정치적 감정』이라는 표제는 적절한 감정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정치적 정당성의 핵심이라는 롤스의 정의를 떠올리게 만든다. 흥미롭게도 누스바움은 이런 롤스의 감정론에 입각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자신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철학을 다시 조명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타고르는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과 마찬가지로 오귀스트 콩트가 말한 ‘인간 종교’의 문제를 깊이 고민했다.
 
‘인간 종교’란 개념은 칸트와 다른 방식으로 인간성을 구현하기 위해 콩트가 창안한 ‘실증주의적 종교’이다. 콩트는 인간성의 고양은 타인에 대한 공감을 획득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감정의 증진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정부를 통한 질서, 그리고 과거의 종교와 다른 형식의 종교라고 생각했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타고르는 이런 콩트의 전통 안에 머물면서도 동시에 예술적 창조 능력을 인간의 고유성이라 주장하면서 콩트와 결별한다. 타고르에게 콩트의 ‘인간 종교’는 인류를 위한 이상적 미래, 말하자면 공정한 사회를 상상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누스바움이 이렇게 ‘인간 종교’를 거론하는 까닭은 공정한 사회의 필요조건으로서 작동하는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런 의미에서 누스바움은 루소의 반자유주의를 정치적 자유주의로 녹여 넣는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다소 생뚱맞게 들리지만, ‘사랑’이다. 누스바움은 링컨·킹·간디·네루·타고르의 연설문을 분석하면서, 공통적으로 지구적인 정의와 보편적 사랑을 설파하는 내용이야말로 대중을 단결시키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각자의 역할을 고민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정치의 제일 덕목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사랑’은 공정한 사회, 사회적 정의를 향해 열려 있는 이질성의 역량이다.
 
우리는 지난 두 달 동안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국론 분열’이라는 개탄을 끝도 없이 들었다. 그러나 누스바움이 옳다면, 우리의 문제는 그 분열의 양상이었다기보다, 공정한 사회를 열망하는 감정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랑’의 정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의 호소로 정의의 열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혐오의 언어만 난무할 때,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회의 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자 한다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필독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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