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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가르쳐주겠다” 골프 클리닉 자원한 ‘필드의 예수’

중앙선데이 2019.10.19 00:20 657호 25면 지면보기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제주 CJ컵 출전한 플릿우드

어머니를 위해 머리를 기른 토미 플릿우드(오른쪽)가 지난 16일 CJ컵을 앞두고 열린 제주 클럽나인브릿지의 골프 클리닉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합뉴스]

어머니를 위해 머리를 기른 토미 플릿우드(오른쪽)가 지난 16일 CJ컵을 앞두고 열린 제주 클럽나인브릿지의 골프 클리닉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남자가 한 침대에 누워 있다. 한 남자는 내의를 입고 있고, 머리가 긴 다른 남자는 옷을 걸치지 않았다. 내의 입은 남자가 일어나 머리 긴 남자를 흔들어 깨운다. 머리 긴 남자는 졸린 목소리로 “얼마나 좋았어”라고 묻는다. 내의남은 어깨를 으쓱하며 “4점 만점에 4점”이라고 답한다. 머리 긴 남자는 “당신은 5점 만점에 5점이야”라고 말한다.
 

작년 라이더컵 우승 유럽팀 주역
동료와 웃통 벗은 동영상 화제
긴 머리·수염 눈길, 유머도 일품

“지금 중요한 건 기본기 다지는 것”
예정 시간 넘게 가르쳐주고 사인도

지난해 미국과 유럽의 골프 대륙대항전인 라이더컵 때 화제가 된 동영상 장면이다. 내의를 입은 사람은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 머리가 긴 남자는 토미 플릿우드(28·잉글랜드)다. 둘 중 머리 긴 플릿우드의 연기가 특히 뛰어났다. 두 선수는 라이더컵에서 한 팀을 이뤄 4승 무패를 기록했다. 타이거 우즈와 패트릭 리드로 구성된 미국의 필승 조를 두 번이나 꺾었다. 한 조로 무패를 기록한 두 사람의 이름을 합성한 ‘몰리우드’라는 이름이 유행하기도 했다.
 
플릿우드는 마지막 개인전에서 패해 4승을, 몰리나리는 개인전도 이겨 5승을 기록했다. 플릿우드가 4점 만점에 4점, 몰리나리가 5점 만점에 5점 평가를 받은 이유다.
 
유럽 팀은 라이더컵에서 이긴 후 저녁 파티에서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고 두 선수가 동의해 방에 들어가 동영상을 찍었다. 옷 벗은 남자 역할을 플릿우드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플릿우드는 10대에 유명 드라마 아카데미에 합격한 경력도 있다.
  
친구가 캐디, 어릴 적 코치 그대로
 
플릿우드. [연합뉴스]

플릿우드. [연합뉴스]

미국 팀의 패트릭 리드는 이 동영상을 보고 “나는 누구와도 팀을 이뤄 경기에 나가 싸울 수 있지만, 팀워크가 좋다고 해서 함께 침대에 가지는 않는다”고 비꼬았다. 그러자 플릿우드는 “미국인들은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플릿우드는 올해 골프계에서 핫한 선수다. 긴 머리와 수염 때문에 필드의 작은 예수라고 불린다. 헤어스타일 때문에 눈길을 끄는 데다 위트가 있다. 특히 표정 변화 없이 던지는 영국식 유머가 일품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흔쾌히 옷을 벗을 정도로 성격이 소탈하다.
 
지난해 US오픈에서 2위, 올 시즌 디 오픈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코스가 매우 어려웠던 2018년 US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63타를 기록해 골프계를 놀라게 했다. 유러피언 투어에선 5승을 거뒀다.
 
플릿우드가 PGA투어 CJ컵에 출전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가 한국을 찾은 사연이 재미있다. 선수 섭외를 맡은 CJ그룹 스포츠마케팅팀 김유상 부장은 플릿우드가 아이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대회장에서 어린이 클리닉이 열리는데 아이들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플릿우드는 “한국 아이들이 나를 아느냐,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도 되느냐”고 답했다. 김 부장이 “당신은 한국에서도 유명하다”고 하니 흔쾌히 참가를 결정했다.
 
플릿우드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부분은 그의 가족이다. 플릿우드는 2015년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한 에이전트와 2017년 결혼했다. 둘 사이에 26개월 된 아들 프랭클린이 있다. 그런데 12세, 11세의 아들이 또 있다.
 
부인인 클레어가 이전 결혼에서 낳은 아이다. 플릿우드는 두 아이를 친아버지 이상으로 아낀다. 부인 클레어는플릿우드 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다. 플릿우드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함께 일을 시작했을 때 이렇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성적이 안 좋아 힘들 때 클레어가 나를 위로해줬다. 결혼한 뒤에도 에이전트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에이전트가 하라는 일은 다 한다”고 말했다. 플릿우드는 영국 맨체스터 인근의 머지사이드에 자랐다. 집이 디 오픈이 열리는 로열 버크데일 골프장에서 가까웠다. 플릿우드는 그린피가 싼 시립 골프장에서 주로 연습을 했다. 로열 버크데일 골프장에는 몰래 들어가 몇 번씩 샷을 해 본 게 전부였다.
  
스무 살 연상 에이전트와 결혼
 
지난해 라이더컵 승리 후 플릿우드와 몰리나리(오른쪽)가 찍은 동영상 캡쳐. [연합뉴스]

지난해 라이더컵 승리 후 플릿우드와 몰리나리(오른쪽)가 찍은 동영상 캡쳐. [연합뉴스]

2008년 디 오픈은 로열 버크데일에서 열렸다. 당시 17세의 플릿우드가 대회에 참가할 뻔했다. 매치플레이 방식의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디 오픈 출전권을 주는데 그는 결승까지 올라갔다. 플릿우드는 “다른 선수들은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마스터스 출전 자격을 얻는다고 흥분하는데, 나는 우리 동네에 있는 버크데일에서 열리는 디 오픈에 참가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잠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9년이 흐른 뒤 2017년 버크데일에서 열린 디 오픈에 참가했다.
 
머리를 기른 이유도 재미있다. 플릿우드는 “아버지가 머리카락이 많지 않아 나도 조만간 숱이 줄어들 것 같았다. 그래서 즐길 수 있을 때 충분히 즐기려고 머리를 기른다”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10대 때 그는 형과 함께 장난으로 머리를 빡빡 깎았다. 이를 본 어머니가 놀라서 울었고 그때부터 머리를 기르기로 했다.
 
그의 캐디는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다.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섰다. 어릴 때 배우던 코치에게서 배운다. 골프 선수로 성공했지만 플릿우드의 삶은 대부분 그런 식이다.
 
플릿우드는 16일 제주에서 열린 어린이 클리닉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기본기를 잘 다지는 것”이라면서 “여러분은 앞으로 투어에서 나와 함께 경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클리닉 행사를 주관한 스포티즌 이호걸 부장은 “15분 예정 행사인데 30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더라. 아이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짜증 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미소만 있었다”고 말했다.
 
의리파 플릿우드, 나이키 용품 충성도 가장 높아
2016년 나이키는 골프 용품 시장에서 갑자기 철수했다.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등 대부분의 선수들은 다른 용품사와 새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일부 선수는 그냥 남았다. 나이키 용품이 익숙해 그대로 쓰는 선수와, 자신이 좋아하는 클럽을 골라 쓰는 부류다. 토미 플릿우드가 전자이고 세계랭킹 1위 브룩스 켑카는 후자다. 프란체스코 몰리나리는 올해 새 회사와 계약하기 전까지 나이키 제품을 2년여 썼다. 패트릭 리드도 계약 없이 클럽을 사용하는 용품 자유계약선수(FA)다.
 
나이키 철수 후 용품 FA의 성적이 좋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12개의 메이저대회에서 6승을 했다. 켑카가 4승, 몰리나리와 리드가 1승씩을 했다. 플릿우드도 지난해 US오픈과 올해 디 오픈에서 2위를 했다. 유명 선수에게 용품계약 제의는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그러나 용품 계약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로리 매킬로이가 대표적이다. 2013년 나이키와 사용 계약을 한 후 일 년 반 동안 PGA 투어에서 우승을 못 했다. 테일러메이드와 용품 계약을 한 2017년 5월 이후 19개월 동안 1승에 그쳤다.
 
그래서 최근 트렌드는 점점 바뀌고 있다. PGA 투어 선수인 라이언 파머는 “용품사들이 사용 계약을 할 때 공을 포함, 11개 이상의 클럽을 일괄적으로 쓰기를 원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클럽이나 공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대회 상금이 커지면서 용품사가 주는 돈의 액수가 상대적으로 작아졌다. 용품 사용료는 PGA 투어 톱 10에 2번만 들면 벌 수 있는 액수다. 계약 없이, 마음에 드는 장비를 써서 상금을 많이 버는 것이 낫다”고 했다.
 
플릿우드는 의리파다. 나이키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았다. 지난해 한 대회에서 나이키 7, 8번 아이언의 호젤이 닳아 12개 클럽으로 대회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동료인 폴 케이시가 가지고 있는 나이키 아이언에 눈독을 들였다가 “레어템이어서 줄 수 없다. 큰 돈을 제시해라”는 답변을 들었다. 나이키 제품이 나오지 않아 플릿우드가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다. 현재 그는 대부분 테일러메이드 제품을 사용한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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