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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한국은 과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닮아가나 - 저출산·저물가·저성장 닮은꼴

중앙일보 2019.10.19 00:03
주력 산업 경쟁력 정점, 서비스업 부진도 비슷… 화폐가치, 제조업 구조, 대외의존도 등에서 달라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경제의 향방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 연구기관들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하향 수정 방향을 나타내고 있으며, LG경제연구원의 경우 2019년에 2.0%에 그치고 2020년은 1.8%로 오히려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능력은 2%대 중·후반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부진한 성장세로 인해 노동력과 자본량 등의 측면에서 우리 경제는 공급과잉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두달 연속 마이너스

사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에 이어 9월에도 소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물론, 이에는 농산물가격의 불안정성 등 일시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어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에 빠졌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세계적으로 경기가 부진하고 저물가·저금리 현상이 나타난 데다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대외개방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경우 디플레이션 압력을 받기가 쉬운 상황이다.
 
일본이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과정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저물가 현상이 먼저 시작되고 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물가가 하락하는 것은 소비자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 초기에는 환영 받는 측면도 있었다. 장기 불황에도 엔화 가치가 급격한 강세를 보이면서도 초기에는 소비자물가의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통마진을 줄여서 소비자물가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저물가 현상이 장기 불황 과정에서 심해져 물가가 떨어져도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지 않고 기업이 어려워져 생산활동이 위축되고 고용 악화,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으로 빠지게 됐다. 일본의 각 경제주체들의 기대물가상승률이 떨어지고 고착화되는 상황으로 변했던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장기 불황과 함께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20년 정도 장기화됐기 때문에 일본의 젊은 세대는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성향이 강해졌다. 2012년에 등장한 아베 정권에서 양적금융완화가 계속 강화되면서 일본중앙은행은 본원통화(지폐 및 동전, 금융회사의 중앙은행 예치 지급준비금)를 연간 80조엔 정도 확대하는 정책으로 기대물가상승률 인상에 주력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 행진에서 겨우 벗어나긴 했지만 당초 아베노믹스를 뒷받침했던 핵심 자문역이자 통화 확대론자인 하마다 코이치 예일대학 명예교수 등이 주장했던 ‘통화의 대량 공급을 통해 기대물가상승률을 회복시키겠다’는 장대한 실험이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장기 불황 초기의 저물가 현상이 극심한 디플레이션으로 변화할 수 있고, 한번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되는 시점에서 처음부터 대응책을 강구해 물가 하락과 경제위축의 악순환을 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 경제의 경험에서 시사점을 찾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한일 경제의 닮은 점, 다른 점

일본형 장기 불황은 특수한 측면이 있어서 우리 경제가 이와 같은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일본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된 당시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도 고도 경제성장기가 마감되고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하락하는 장기 저성장 국면을 보였다. 자본·노동·기술 등 3요소에 뒷받침되는 잠재성장 능력이 저출산, 고령화, 산업의 성숙화 등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일본의 경우도 잠재성장 능력의 하락세가 나타났는데, 하락세가 장기간 멈추지 않았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와 함께 일본의 장기 불황에서는 잠재성장률의 하락세 이상으로 실제성장률이 더욱 떨어져 수요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고착화됐다. 일본 경제는 단기 순환적인 회복 국면에서도 수요가 생산능력보다 과소해 디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한 것이다. 성장잠재력의 장기 하락세, 공급능력 감소 속에서도 계속 이를 훨씬 능가하는 수요 부족 현상이 발생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본의 장기 불황과 우리 경제의 상황을 비교할 경우 우선,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충격으로 성장잠재력이 장기간 하락세를 보이는 현상이 유사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으로 2017년에 생산가능인구가 처음으로 감소해 1995년부터 감소한 일본과 20년 정도의 시차를 보였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함께 노동력에 의한 잠재 성장률 하락 압력이 발생하고 있다. 또 2013~2018년 기준으로 인구가 5% 이상 감소한 지자체 수는 65개로 전체의 28.5%에 이르렀다. 일본처럼 지방 상권의 악화, 지자체 소멸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유사점으로서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정점에 이르러 과거처럼 선진국을 모방하는 캐치업 전략이 한계에 직면한 가운데 신흥국의 추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선진국 산업을 캐치업 하는 경제에서 이제 우리 스스로 혁신 제품이나 사업을 창조해야 하는 단계가 되어 투자 대비 성과가 과거처럼 클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과거 일본이 한국 등의 추격을 받은 것과 달리 현재 한국은 중국의 추격이라는 거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어려움이 있다. 추격형 경제에서 혁신형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일본이 기존의 제도나 관행을 혁신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우리나라도 기득권이나 기존제도, 관행의 타성을 혁신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세 번째로 일본의 경우 제조업이 위축되는 가운데 서비스업의 강화를 모색했지만 쉽지 않았으며, 한국도 서비스업의 생산성, 국제경쟁력이 부진한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성숙 경제국의 강점 분야인 서비스 산업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장기적인 저성장 압력을 완화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일본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 유치, 서비스업의 해외 진출 확대 및 과실송금 확대 측면에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과 비교해 차이점도 있다.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진 계기는 극심한 부동산 버블의 형성과 붕괴, 그리고 후속 대책의 실수 등에 있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후반의 부동산 버블로 ‘도쿄의 부동산을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버블이 발생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이 정도의 버블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일본처럼 부동산 가격이 70% 정도 폭락하고 20년 이상 정체되고 은행 부실화가 진행되는 극심한 버블 붕괴의 가능성은 작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일본의 경우 장기 불황이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극심한 엔고가 발생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화했다. 한국의 경우 원화의 지속적이고 급격한 강세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출산·고령화 진행 초기 단계에서는 저축 확대, 투자 감소가 나타나기 쉬워서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원화 가치의 안정화 노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세 번째, 대외의존도 측면에서 한일 양국의 상황에는 차이가 있다. 일본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중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 불과하며, 한국의 30%대와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수출로 내수의 부진을 만회하기 쉬운 측면이 있다. 다만, 최근의 경우 세계 경제 불안이 장기화되고 보호주의도 강화되고 있어 한국의 대외개방성이 높다는 것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네 번째, 기초 기술력 측면에서 한일 간의 차이가 있다. 일본은 제조업 자급도가 높은 원-세트(One set)형 산업구조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 자체적으로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선택한 분야에 특화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효율 중시의 구조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유리한 측면도 있으나 이번에 발생한 일본의 무역규제 조치로 우리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적인 기초 기술력 강화가 혁신경제 구축에 중요한 시점일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한일 경제의 유사성과 차이점으로 볼 때 우리 경제가 앞으로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어서 현재 2%대 후반 수준의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위험이 있으며, 장기저 성장 초기에 중장기적 사고에 기초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우리 경제가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질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현 시점에서는 잠재성장률의 하락세를 1%대 후반에서 2% 수준에서 멈추도록 하는 중장기적 대책과 함께 물가상승률도 1%대 후반에서 2% 수준을 유지해 명목성장률이 3% 정도를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명목성장률이 3% 수준을 유지해야 일본과 달리 재정 악화나 사회보장 제도의 유지의 어려움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정책 오류에서 보는 시사점

일본은 버블 붕괴로 촉발된 경제 위축 현상에 대해 초기에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으며, 이를 단순히 경기순환의 문제로서 간주하고 대응책을 강구하는 오류를 범했다. 1992년 종합경제대책에 10조7000억엔, 1994년 종합경제대책에 15조3000억엔, 1995년 엔고 및 경제대책에 21조2000억엔, 1998년 종합긴급대책에 40조엔 등 계속 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반복했다. 그러나 기존의 틀에 기초한 대책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존의 공공투자나 복지지출이 민간수요의 확대로 이어지는 정부수요의 승수효과가 부진했던 것이다.
 
그 당시, 당면 과제로서는 버블 붕괴의 후유증인 부실채권 문제의 해결에 공적자금을 조기에 투입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했다. 근본 문제의 해결을 미루고 국민여론을 너무 의식해서 정치적인 고려로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방치하고 경기부양책만으로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큰 화를 초래할 수가 있다.
 
그리고 경제의 성장엔진을 다시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했는 데도 일본이 이를 깨닫을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일본 정부는 장기 불황 후 15년 정도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에나 성장 전략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복지지출이나 공공투자의 경우도 새롭게 성장잠재력을 보강할 수 있는 방향에서 강화했어야 했다. 일본이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장엔진의 보강에 처음부터 주력했다면 더 적은 재정지출로 경제 회복 효과를 높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베 정권에서는 1억 총활약사회를 구축하겠다는 방향에서 생산적인 복지에 주력하고 있다. 저출산 인구고령화에도 여성, 고령자의 취업 환경을 개선하면서 전체 인구 중에서 일하는 사람의 비중을 높여 1인당 소득의 증가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평생현역 사회를 위한 평생 교육 시스템, 노동력의 매칭을 중개하는 공공기반 등 생산적인 복지 정책이 경제의 활력 유지와 저출산 억제에 기여한다면 성장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아베 정권에서는 취업자 1인당 소득증가율이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오히려 하락하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하락을 억제해 경제적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성장산업을 육성하는 등 생산성 향상에 주력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한 새로운 산업인프라 투자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본도 신성장산업 육성, 4차 산업혁명에 주력하고 있으나 효과가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와 같이 정부나 지자체 등이 주도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으며, 민간의 창의와 자유로운 발상으로 기존 사업을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사업이 창조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인프라의 확충, 인력 양성, 과학기술 기반 강화 등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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