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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명상원장, 시신 두고 "명상중"···가담자 일부 사망 알았다

중앙일보 2019.10.18 14:43
지난 16일 오후 찾은 제주시 노형동 모 명상수련원 건물의 정문이 잠겨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16일 오후 찾은 제주시 노형동 모 명상수련원 건물의 정문이 잠겨 있다. 최충일 기자

“그는 지금 명상 중이다”
제주시 노형동의 한 명상수련원 원장 H씨(58)가 지난 15일 오후 경찰에 체포될 당시 수련원에서 발견된 시신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수련원 3층 수련실에서 K씨(57)가 숨진 채 발견된 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H씨 등 관계자들은 이미 숨져 부패가 진행 중인 K씨의 시신을 명상수련원 안에 그대로 둔 채 흑설탕물을 먹이고, 시신을 매일 닦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다.

H원장, 50대 회원 '시신 명상' 주장 고수
경찰 "가담자 일부는 사망한 것 인지 중"
설탕물 먹이고, 매일 시신닦는 기이행동
경찰, 종교·주술 관련성까지 수사 확대
6명 입건…원장 등 3명 구속영장 신청

 
경찰은 수련원 관계자 등을 체포한 후 조사과정에서 "K씨의 시신을 매일 닦고 설탕물을 먹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시신 주변에 놓여있던 흑설탕과 주사기 등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추궁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K씨의 사망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수련원 관계자들의 진술은 엇갈린다. 이번 사건으로 입건된 6명 중 H원장은 아직도 “그는 명상 중”이라는 입장을 꺾지 않고 있다. 반면 다른 가담자 일부는 ‘K씨가 사망을 했다’는 정도의 인식을 했고,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종교나 주술적 연관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있는데,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판단했다”며 "종교적인 신념에 의한 것인지, 의식이 비정상적인 것인지는 조사를 통해 알아내겠다. 관계자 보강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혐의를 입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6일 오후 찾은 제주시 노형동 모 명상수련원 건물 외부 계단 3층에 놓은 검은색 비닐봉지. 이안에 있는 휴지조각에서 심한 악취가 났다. 최충일 기자

지난 16일 오후 찾은 제주시 노형동 모 명상수련원 건물 외부 계단 3층에 놓은 검은색 비닐봉지. 이안에 있는 휴지조각에서 심한 악취가 났다. 최충일 기자

K씨의 사인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수련실 내부에 따로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되지 않아 진술에 의존해 수사를 하고 있다. K씨는 평소 지병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련원 관계자들은 경찰에서 “그가 수련 도중 쓰러졌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지난 16일 오후 K씨를 부검하고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약독물 검사 등을 추가로 요청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K씨는 지난 8월 30일 “제주 지역 명상수련원에 들어가겠다”며 집을 나섰고, 이튿날인 31일 해당 수련원을 찾았다. 일행 2명과 동행했던 K씨는 이틀 뒤인 9월 1일 전남으로 돌아가는 배편을 예매한 상태였다. 하지만 일행 2명만 돌아갔고 그는 제주에 남았다. K씨는 이전에도 몇차례 이 수련원을 찾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수련원은 숙식이 가능한 곳은 아니지만, 회비를 납부한 회원에 한해 항시 자유롭게 오갈 수 있고 원하면 잠도 잘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K씨의 부인은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닿지 않자 지난 15일 전남 지역의 한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고, 공조 요청을 받은 제주경찰은 당일 오후 해당 수련원을 찾아가 숨진 K씨를 발견했다. 당시 수련원 관계자들은 건물 내부로 들어서는 경찰에게 "영장이 있느냐. K씨는 현재 명상 중이다"라며 진입을 저지하기도 했다. 이에 경찰은 119 구급차를 대기시킨 후 수련원 내부로 들어갔다.
 
발견 당시 K씨는 수련실에 설치된 원터치 모기장 안에서 이불이 목까지 덮인 채 누워있었다. 경찰이 수련실에 진입할 당시 악취가 진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추가 시신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색견을 투입해 건물 내외부를 면밀히 살폈지만 다른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6명을 사체은닉 및 유기치사 등의 혐의로 입건했고, 이중 H원장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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