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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론 한국이 가렵지도 않아" 초강력 수출규제 밀어붙인건 아베 관저였다

중앙일보 2019.10.18 12:11
“싸움은 선제공격(一発目)이 중요하다”

G20 8일전 아베가 회의 열어 수출규제 확정
경산성도 초반 소극적, 관저가 방향 틀어
'1+1+α' 거부 "삶아도 구워도 못먹는 제안"

 
18일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이뤄진 막전막후를 다룬 기사에서 전한 일본정부 관계자의 발언이다.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강화한 초강력 대항조치는 총리 관저의 이 같은 강한 의지 하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는 6월 20일 오후 관저에서 결정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주재했다. 후루야 가즈유키(古谷一之)관방부장관보와 외무성의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사무차관, 가나스기 겐지(金杉健司) 당시 아시아대양주국장, 경제산업성의 시마다 다케시(嶋田 隆) 당시 사무차관 등 소수만 소집해 회의를 열어 결정한 것. 그러나 결정 내용은 외부로 공표하지 않고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디데이(D-day)는 8일 뒤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와 7월 4일 참의원 선거 공시일 사이로 결정됐다.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역설해야 할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할 경우 모순이 발생한다고 판단한 것. 또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국내에서 한국에 대한 불만여론이 커지고 있었던 것도 감안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회담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단 8초간 악수만 나눈 배경엔 이같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조세영 차관 ‘1+1’안 제시 나흘 뒤 수출규제 결정

 
다만 6월 20일은 바로 직전 주말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도쿄로 급파돼 ‘1+1(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강제징용 배상의 재원을 마련)안’을 제안한 지 나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일본 정부는 조 차관이 제시한 ‘1+1’안을 그 자리에서 거부했고, 곧바로 한국에 대한 대항조치로 수출규제 조치를 결정한 셈이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기업에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대응을 취해줄 것을 반복해서 요구했지만, 사실상 답변이 없는 상태가 계속됐다”고 분석했다. “1밀리도 양보할 수 없다”(외무성 간부)는 게 당시 일본 정부의 입장이었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상은 강경화 장관과 회담을 거듭했지만, 청와대의 의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강 장관과의 대화는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 정부가 청와대와도 교섭을 시도했지만 “파이프가 실처럼 가늘고, 알맹이 있는 얘기는 할 수 없었다”(한·일 소식통)라고 전했다. 결국 “문제의 심각성을 문재인 정권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한국에 대한 대항조치가 결정됐다는 것이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장관이 지난 8월 2일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 의결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YTN 캡처) 2019.8.2/뉴스1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장관이 지난 8월 2일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 의결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YTN 캡처) 2019.8.2/뉴스1

 
수출규제 조치와 화이트국가배제 결정을 주도했던 경제산업성도 그러나 초반에는 대항조치에 대해 소극적이었다고 아사히 신문은 전했다. 경제산업성은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내려놓은 후의 영향이 크다”(경제산업성 간부) 면서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 걸로는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아" 관저가 초강력 제재 주도

 
여기서 초강력 수출규제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관저였다. 지난 5월 경산성이 검토 중이던 대항조치를 본 정권 간부는 “그런 걸로는 한국이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더 강력한 안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싸움은 선제공격을 어떻게 때리느냐가 중요하다. 국내 여론은 따라올 것”

 
아사히 신문은 이 같은 총리 관저의 강경자세가 정권에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총리 주변에서는 “한·일 문제가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한·일 쌍방의 여론이 ‘더 (세게) 하라’며 과열되어 있다” 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를 배제하는 결정을 앞두고 지난 7월 31일 도쿄의 총리 관저로 출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를 배제하는 결정을 앞두고 지난 7월 31일 도쿄의 총리 관저로 출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측이 한국측이 제시한 ‘1+1+α(알파):한·일 기업의 재원으로 우선 배상하고 추후에 한국 정부가 변상’안을 거절한 사실도 확인됐다. 아사히 신문은 “8월 중순 쯤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1+1+α’안을 물밑에서 제시했지만,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지불하는 방안에 대해선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아사히 신문은 “삶아도 구워도 먹을 수 없는 제안”이라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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