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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언론 획일화는 ‘노예의 평화’다

중앙일보 2019.10.18 00:25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대훈 수석 논설위원

고대훈 수석 논설위원

대통령의 오판(誤判)인가. 조국 장관 사퇴에 웬 언론 성찰, 참 생뚱맞다. 14일 조국의 사의 표명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갈등과 진통에 대해 송구’하다면서 ‘언론의 역할’을 거론했을 때 얘기다. 문 대통령은 "언론 스스로 그 절박함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신뢰받는 언론을 위해 자기 개혁의 노력을 해줄 것을 당부 드린다”고 했다. 그의 굳은 표정은 ‘검찰 개혁·조국 수호’ 좌절이 ‘성찰 안 하고 신뢰 못 받는’ 언론 탓이라는 책망의 뉘앙스를 풍겼다. 이를 언론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라고 여권에선 해석했다.
 

문 대통령, 조국 좌절뒤 ‘언론에 실망’
언론에 하나의 가치·관점 요구하고
작은 차이와 다양성을 외면한다면
현실 왜곡하는 전체주의로 가는 길

우선 실망. 다 알다시피 지금 언론계는 푹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주류 언론 중 정권에 견제의 목소리를 내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열세다. 국민 수신료와 서울시민 세금이 들어가는 공영방송 KBS와 교통방송 tbs는 물론이고 대다수 TV와 라디오에는 정부를 옹호·홍보하는 편향적 뉴스와 프로가 넘쳐난다.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를 알리기 위해 헬기를 띄우고 카메라 촬영용 크레인을 설치하며 소동을 떤 장면은 많은 걸 말해준다. 진보를 표방하는 신문들도 조국 비리에 소극적이라는 기자들의 내부 반발이 나올 정도로 친정부적이다. 보수 언론이 정권의 선한 의도에 딴죽을 건다고 수시로 훈계까지 한다.
 
문 대통령이 이런 언론을 편식했다면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을 ‘국론 분열이 아니고 직접민주주의 표시’라고 인식하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앞세워 우호적인 언론과 함께 조국 정국을 돌파하리라 믿었을지 모른다. 입맛에 맞는 언론의 일그러진 틀을 통해 왜곡된 현실이 주입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광화문 국민’을 유령으로 취급했다. 상식과 정의 회복을 요구하는 절규는 좀비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다. 뒤늦게 거대한 분노의 민심을 알게 된 대통령은 마지못해 후퇴했다. 윤석열 검찰의 저항은 그렇다 쳐도, ‘성찰하고 신뢰받는 언론’이 좀 더 많았다면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딘” 조국을 내치는 불상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 그게 대통령이 실망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불만. 집권세력은 흑백과 선악의 이분법을 언론에 들이댄다. 조국 사태에 ‘개혁 대 반(反)개혁’ 프레임을 씌운다. 검찰 개혁이라는 고상한 취지를 방해하고 조국을 악의적으로 끌어내려는 불순한 기도로 본다. 건전한 공론의 장(場)을 만들어야 할 정권의 인사들은 비판적 언론에 시정잡배나 떠들어대는 ‘기레기’ 낙인을 찍는다. 의혹 부풀리기, 인권침해, 검증되지 않은 기사 등 무책임한 가짜뉴스를 쏟아내 선량한 조국 가족을 괴롭혔다는 식으로 본다.
 
조국의 본질은 지능적 화이트칼라 범죄 의혹이다. 좌·우와 진보·보수의 진영 싸움도, 이데올로기 대결도 아니다. 조국 가족이 벌인 부와 학력 대물림 시도, 이를 위해 동원된 반칙과 특권, 여기에 수상한 돈 흐름까지 결합한 조직적 비리 여부를 묻는 법적, 상식적 문제일 뿐이다. 일반인에게는 평생 단 한 번도 오지 않을 기적이 왜 조국 가족에게만 쏟아졌냐를 따져야 한다. 다 우연으로만 봐야 하나. 이런 의문을 추적하는 게 언론의 존재 이유다. 정의와 공정은 싸구려 스낵의 상품명보다 못한 단어로 추락했다. 그 원인 제공자를 욕해야지 진실의 실체를 쫓는 겨우 한 줌밖에 안 되는 신문이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아무리 개혁이 좋다지만 조국을 ‘백두산에서 백마 탄 김정은’처럼 미화할 순 없다.
 
문 대통령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상 ‘언론 개혁’을 주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만의 표시다. 조만간 ‘촛불 명령’이라며 ‘민주’ ‘개혁’ ‘연대’를 빙자한 어용 시민단체들이 설쳐댈지 모른다. ‘보수 친일 토착 왜구’와 ‘진보 애국 의병’이란 음험한 그림이 그려진다.
 
며칠 전 정치권에서 괴벨스를 언급했다. 1933년 3월 요제프 괴벨스는 35살에 국민계몽선전장관에 취임하며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 연주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중 선동 도구로 라디오에 주목했고, 국가 보조금으로 국민수신기(Volksempfanger)라는 세계에서 가장 싼 라디오를 제작해 전 국민에게 헐값에 보급했다. 그 라디오는 "국민들은 일치단결하여 사고하고, 정부에 적극 동조하고 복무해야 한다”는 나치의 구호를 전파하는 ‘괴벨스의 주둥이’가 됐다.
 
이 사회가 오로지 하나의 가치·이념·관점만 요구한다면, 작은 차이와 다양성을 억압한다면, 거기에 순응한다면, 그게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다. 다름의 자유가 있다. 서초동 국민이 있다면 광화문 국민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언론도 따로 존재하는 게 민주주의의 다양성이다. 권력에 알아서 기는 언론의 획일화는 노예의 평화와 다름없다. 대통령의 언론관이 바뀌어야 한다. 두 달 넘게 나라를 혼돈에 빠뜨리고 대통령이 민심을 오판하게 한 참모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이 내편 언론만 보며 판단력과 균형감을 상실한 채 자기만의 세상에 고립되게 한 죄가 크다.
 
고대훈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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