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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초보 감독 이경수가 만드는 작은 기적

중앙일보 2019.10.18 00:04 경제 7면 지면보기
경기복 대신 양복을 입은 이경수 목포대 감독. 김효경 기자

경기복 대신 양복을 입은 이경수 목포대 감독. 김효경 기자

“우리 학교가 (전국)체전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기쁘네요.”
 

목포대 부임 1년 만에 전국체전 동
2부 팀으로 올 두 차례 전승 우승
제자 김동민 프로에도 진출시켜
“기회되면 프로 가르치고 싶다”

제100회 전국체육대회가 한창이던 이달 초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만난 이경수(40) 목포대 배구팀 감독 표정이 밝았다. 부임 1년 만에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땄다. 좋은 일이 하나 더 있다. 제자인 윙 스파이커 김동민(22)이 프로배구 KB손해보험 지명을 받았다. 이 감독이 현역 시절 뛴 그 팀이다.
 
이경수 감독은 대학(한양대) 시절 초 정상급 공격수였다. 큰 키(1m96㎝)와 긴 팔로 내리꽂는 스파이크가 일품이었다. 특히 대각 공격은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성균관대 센터 고희진(삼성화재 코치)이 “형, 틀어치지 말고 정면으로 뚫어보라”고 도발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현역 시절 이경수. [연합뉴스]

현역 시절 이경수. [연합뉴스]

공격력에 가렸지만, 리시브 등 수비력도 수준급이다. 2000년 대학대회에서 한 경기 최다득점(53점)을 기록했고, 2001년 실업배구 슈퍼리그에선 대한항 공을 상대로 최다득점(51점)을 올렸다. 금메달을 딴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도 한국팀 에이스였다.
 
프로에서도 이경수 감독은 대단했다. 11시즌 동안 개인 통산 3841득점을 기록했다. 박철우(삼성화재), 문성민(현대캐피탈), 김요한(전 OK저축은행) 등 후배들이 경신했지만, 여전히 4위다. V리그 1호 트리플크라운(후위 공격·서브·블로킹 3개 이상) 주인공이다. 아쉽게도 우승컵은 들지 못했다. 2015년 허리와 발목 부상으로 은퇴했고, 이후 대표팀 트레이너, 유소년 팀 코치를 거쳤다.
 
이경수 감독은 지난해 목포대를 맡았다. 한 지인은 “이 감독이 부임한 뒤 목포대가 달라졌다. 선수도 늘었고 경기력도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대학 2부리그인 목포대는 올해 두 차례 대회에서 모두 전승 우승했다. 1부까지 참여하는 대학리그에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1부 팀을 두 차례나 눌렀다. 이 감독은 “기대치에는 못 미쳤지만, 두 번 우승한 데 만족한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스타 출신 대학 배구 사령탑 이상렬(경기대), 이경수, 최천식(인하대 왼쪽부터) 감독. [중앙포토]

스타 출신 대학 배구 사령탑 이상렬(경기대), 이경수, 최천식(인하대 왼쪽부터) 감독. [중앙포토]

국립인 목포대는 배구 명문 사립대보다 선수도 적고, 예산도 넉넉지 않다. 연맹에서 물품을 지원받는다. 이경수 감독은 “솔직히 고교 팀보다도 예산이 적다. 올해 3명이 졸업하면 7명 남는다. 지금 수시전형이 진행 중인데, 지방이라 신입생도 잘 오지 않는다”며 걱정했다. 교내 체육관도 하나뿐이라 농구부와 나눠쓴다. 이 감독은 “수업 다 마치고 늦은 시간에 연습한다. 열심히 해주는 선수들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수퍼스타 출신 감독 부임 후 팀 분위기가 바꿨다. 주장 김동민은 “감독님 프로 때 경기를 본 적이 있다. 처음 오셨을 때 ‘왜 이 분이 여기 오셨지’라고 놀랐다”고 말했다. 김동민은 “우리 학교는 졸업 후 프로보다 다른 진로를 주로 선택한다”고 전했다. 이경수 감독도 “대부분 프로행을 생각하지 않아, 배구뿐 아니라 사회성도 키울 수 있게 신경 쓴다”고 말했다.
 
‘이경수’ 하면 드래프트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감독은 2003년 드래프트를 거부했고, 징계를 받았다. 프로 출범 전 LG화재(KB손보 전신)와 입단을 약속했는데, 다른 구단들이 드래프트에 나오라고 했다. 이른바 ‘이경수 파동’이 벌어졌다. 결국은 LG화재 유니폼을 입었지만, 드래프트장에 가지 못했다. 이 감독은 “(이번에) 드래프트를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드래프트로) 제자가 프로에 가게 돼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김동민은 목포대 출신으로는 처음 2라운드(전체 13번)에 뽑혔다.
 
이경수 감독은 슬하에 5남매를 뒀다. 수원의 가족을 볼 시간이 많지 않다. 이 감독은 “목포와 수원을 오가느라 1년간 5만㎞를 운전했다”며 웃었다. 이어 “기회가 된다면 프로에서도 선수들을 가르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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