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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과 주거침입 사이, 징역 1년에 담긴 판사의 고심

중앙일보 2019.10.17 17:12
백희연 사회1팀 기자

백희연 사회1팀 기자

지난 5월 28일 새벽 6시 3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 조모(30)씨가 집으로 돌아가는 한 여성을 뒤쫓았다. 조씨는 해당 여성이 사는 원룸까지 따라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올라갔지만 집 안에 들어가는 데에는 실패했다. 조씨가 10분 동안 문고리를 돌리거나 초인종을 누르며 서성이는 모습이 담긴 CCTV가 인터넷상에 공개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조씨는 마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도시괴담의 실체 같았다. 1인 가구 여성들은 비슷한 경험을 온라인에 털어놓으며 두려움을 공유했다.  
 
그런 조씨에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김연학 부장판사)는 16일 주거침입죄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강간미수 혐의는 무죄였다. 재판부는 조씨의 행동만으로는 강간의 의도를 증명할 수 없다고 봤다. 강간 의도가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강간미수죄가 인정되려면 폭행·협박과 같이 실행의 착수가 필요한데, 강간으로 이어지는 직접적 행위가 없었다. 문을 열고자 한 조씨의 의도가 성폭행인지 살인인지, 아니면 조씨의 말처럼 그저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법원은 일어나지 않은 행동을 추측해 죄를 물을 수 없다. 
 
조씨에게 유리한 정상도 있었다. 조씨는 피해자에게 합의금으로 3000만원을 지급했다. 피해자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자신이 만취해 있었기에 조씨가 엘리베이터에서 말을 걸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도 했다. 조씨는 자신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술 한잔하자”며 말을 걸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조씨에게 강간미수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거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었다. 검찰이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것부터가 무리였다는 지적도 있었다. 만약 재판에서 강간미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면 이거야말로 여론 눈치 보기식 선례를 남기게 될 거라는 우려도 나왔다.
 
재판부는 강간미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전은 있었다. 주거침입으로 조씨에게 1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이다. 주거침입의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많은 경우 벌금형을 받는다. 조씨도 초범인 만큼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실형이 선고됐다. 김계리 변호사(법무법인 서인)는 “강간미수 혐의가 인정은 안 됐지만, 실질적으로 강간미수를 고려해서 판단한 것으로 봐야 할 정도로 양형이 엄하다”고 했다.
 
선고 당일 재판장은 꽤 긴 시간을 들여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피해자가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을 강조하는 데서 재판장이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김 판사는 “이 사건은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행으로 선량한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이와 같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했다”며 “언론에 수차례 보도되며 주거침입 성범죄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을 한층 증폭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홀로 거주해 즉시 도움을 요청할 곳 없는 상황에서 느꼈을 피해자의 불안과 공포감 등에 비추어보면 법익 침해 정도를 가볍게 볼 수 없다”며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후 조씨의 강간미수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 국민의 법감정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비난 여론이 거셌다. ‘판사가 어떻게 그런 판결을 내릴 수 있냐’는 항의의 댓글이 어김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16일 법정에서는 강간미수와 주거침입 사이, 두려움과 우려가 늘어나는 사회에 대해 고심한 판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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