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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던 NYT를 8년만에 디지털 제국으로···설즈버그의 비결

중앙일보 2019.10.17 16:07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타임스 본사. [AP=연합뉴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타임스 본사.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의 디지털 유료 구독자 수는 10월 현재 470만명이다. 종이신문이 보유한 최고 발행 부수 기록의 세 배에 달하는 숫자다. NYT는 2025년까지 디지털 유료 구독자를 1000만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향해 순항 중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10월21일자)에서 “1000만 유료 독자도 달성 가능해 보인다(not out of reach)”라며 “NYT는 스스로 길을 찾았을뿐 아니라 그 길에 빛을 밝혔다”고 호평했다.  

시사주간지 타임, 8개 면 할애해 집중 분석

 
타임지가 NYT 등 특정 매체에 집중해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발행인과 마크 톰슨 최고경영자(CEO)뿐 아니라 다양한 언론계 인사들을 인터뷰한 이 기사는 비즈니스 섹션 8개 면에 걸쳐 게재됐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 [AP=연합뉴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 [AP=연합뉴스]

 
타임지가 NYT 성공의 열쇠로 지목한 인물은 젊은 발행인 아서 그레그(A.G.) 설즈버거(39)다. 가업을 이어 NYT의 5대 발행인이 된 그는 NYT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했다. 2013년 착수해 이듬해 펴낸 혁신보고서(Innovation Report)도 그가 이끌었다. WP의 전 소유주였던 그레이엄 가(家)의 도널드 그레이엄은 타임지에 “A.G.(설즈버거의 애칭)는 최고(aces)”라며 “(아마존에 넘어간 WP와 달리) NYT는 살아남았다. A.G.를 생각하면 기쁘다”라고 말했다. 폴리티코의 칼럼니스트 잭 셰이퍼는 “NYT의 지난 8년은 최고의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설즈버거가 30대 초반의 나이로 NYT 디지털 혁신의 책임을 맡게 된 2010년대 초반은 NYT의 암흑기였다. 종이신문 발행부수는 NYT 전체 매출과 동반 하락했고, 인원 감축을 수차례 거치며 기자들 사기도 바닥을 쳤다. 당시 은퇴한 에디터였던 빌 켈러는 “우울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NYT는 1851년 창간 후 타사를 압도하는 127개의 퓰리처상을 타내며 언론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런 NYT의 침몰 혹은 재탄생 여부가 설즈버거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설즈버거는 어떻게 파고를 넘었을까. 타임지 기사에서 세 가지 비결을 추렸다.  
 
지난 4월 뉴욕타임스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퓰리처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금까지 127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AP=연합뉴스]

지난 4월 뉴욕타임스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퓰리처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금까지 127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AP=연합뉴스]

 

①콘텐트 아닌 저널리즘

 
설즈버거는 디지털 시대에 뉴스를 ‘콘텐트’라는 말로 부르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고 밝혔다. 저널리즘의 결과물인 뉴스와, 단순한 콘텐트는 달라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다. 그는 타임지에 “난 사실 콘텐트란 말을 싫어한다(hate). 콘텐트란 페이스북에 올리는 쓰레기(junk)”라며 “우리가 하는 건 저널리즘이다”라고 말했다. 타임지는 “소셜 미디어라는 플랫폼으로 인해 시민은 팔로워가 되고 뉴스는 콘텐트로 추락했다”며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주간지조차도 의식 있는 억만장자에게 넘어갔지만 NYT는 달랐다”고 핵심을 저널리즘에 충실한 자세에서 찾았다.
 
타임지는 NYT가 최근 뉴욕 택시기사의 연쇄 자살을 다룬 기획 기사를 예로 들었다. 평범한 취재 방식 대신 NYT는 시간ㆍ인력ㆍ재화를 들였다. “이 기사를 위해 450명의 택시기사를 인터뷰했다”는 한 줄은 짧지만 묵직하다. 타임지는 “NYT는 단순 속보에 취재력을 쏟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기사에 집중한다”며 “거의 매일 이런 방식의 완결성 높은 기사들이 나오는 게 힘”이라고 분석했다. 설즈버거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싶어할만한 저널리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 톰슨 NYT CEO는 “앞으로 돈 내도 아깝지 않을 저널리즘을 내놓지 못하는 언론사는 망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가운데) 뉴욕타임스 발행인이 지난 4월 편집국에서 퓰리처상 수상자 소식을 함께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가운데) 뉴욕타임스 발행인이 지난 4월 편집국에서 퓰리처상 수상자 소식을 함께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②돈, 쓸 땐 쓴다

 
NYT의 편집국 기자 숫자는 1100명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으며, 이는 인건비에 인색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타임지는 분석했다. 인력 삭감 당시에도 NYT는 우수 인력에 대한 보상 및 스카우트엔 예산을 들였다. 타임지는 “NYT는 인력 감축을 하면서도 경쟁력있는 기자들을 챙겼고, 그를 위해 자산도 매각했다”며 “내부 경쟁이 치열하긴 했으나 점차 뛰어난 기자들은 NYT만이 자신들을 진정으로 지원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썼다.    
 
설즈버거는 “나는 NYT에 큰 자부심과 애정을 가진 가족의 일원으로 자랐다”며 “NYT를 혁신하기 위한 중요하고 용기있는 조치들은 편집국의 힘을 항상 최우선 순위로 놓아야한다고 믿은 사람들이 이뤄내곤 했다”고 말했다. 인력에 대한 투자를 위해 NYT는 사옥 일부도 매각했으나 내년에 다시 사들인다고 타임지는 덧붙였다. 회사 재무 사정이 좋아진 덕이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동영상 및 디지털 특화 실험 기사들이 다양하다. [NYT 캡처]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동영상 및 디지털 특화 실험 기사들이 다양하다. [NYT 캡처]

 

③많이 실패하라

 
타임지는 “NYT는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마치 실패를 권장하는 스타트업과 같은 형태가 됐다”며 “NYT의 성공 뒤엔 수많은 실패와, 그 실패로부터 좌절하는 게 아닌 배우는 자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설즈버거는 디지털 혁신 책임을 맡았을 당시 페이스북 계정도 없었고 트윗도 한 두번 실험 삼아 해본 게 전부였다고 한다. 대신 디지털 혁신을 위한 인재들을 초청했다. 타임지는 “NYT는 이제 디지털 개발자부터 멀티미디어 프로듀서들을 끌어들이는 자석과 같은 존재가 됐다”고 표현했다. 딘 바케트 NYT 에디터는 “종이 신문에선 실험할 수 있는 게 한정돼 있지만, 디지털은 끊임없는 실험이자 시도”라고 밝혔다. NYT는 가상현실(VR)부터 증강현실 기술도 취재와 보도에 활용하고 있다.  
 
실패엔 돈이 든다. 그래서 NYT는 독자들에게 SOS를 쳤다. 타임지는 “NYT가 독자들에게 유료 구독을 요청하자 그때부터 물밀듯 구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미래의 디지털 혁신을 위해 과거의 구독자들에게 도움을 청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언론학자인 윤영철 연세대 미래캠퍼스 부총장은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특정 포털사이트가 강력한 (무료 제공) 플랫폼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NYT의 사례가 한국에 단순 적용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NYT가 다양한 실험을 해온 과정은 한국 언론과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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