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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이씨 시조가 영천 최씨 땅에 묻힌 아름다운 사연

중앙일보 2019.10.17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59)

경북 영천에는 영천 최씨와 광주(廣州) 이씨 두 가문의 아름다운 우정이 전하는 묘역이 있다. 대구 도산우리예절원은 지난 12일 가을 답사로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 광릉에 들렀다. 묘역 입구 표석에는 ‘광주 이씨 시조 묘소’라 새겨져 있다. 시조 묘가 광주 아닌 영천에 세워진 건 무슨 까닭일까. 시조 이당(李唐)은 고려 생원으로 적혀 있다. 인터넷 두산백과에는 광주 이씨 시조가 신라 내물마립간 시기 내사령 이자성(李自成)으로 나온다. 이당은 중시조로 보인다.
 

도산우리예절원 회원들이 12일 경북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 광주(廣州) 이씨 시조 묘소를 답사하고 있다. [사진 권효섭]

 
회원들은 묘소를 둘러봤다. 명당이란 소문 그대로 주변 풍광이 빼어났다. 동행한 이동후 예절원 설립자는 “뒤로 주산과 앞으로 안산이 놓였고 소나무 병풍림이 묘역을 둘러싼 안온한 터”라고 설명했다. 후손들 정성으로 광주 이씨 시조 묘는 봉분이며 조경이 왕릉에 못잖을 정도였다. 시조 묘소 바로 위에 또 하나 큰 묘가 보였다. 비석에는 ‘고려숙부인영천이씨지묘’라 돼 있다. 영천 최씨의 부인 묘소다.


신돈의 화 피해 친구 집 찾은 이집

광주 이씨 시조 이당의 묘. [사진 송의호]

광주 이씨 시조 이당의 묘. [사진 송의호]

광주 이씨 시조 묘의 바로 위쪽에 자리한 영천 최씨 최원도의 어머니 묘. [사진 송의호]

광주 이씨 시조 묘의 바로 위쪽에 자리한 영천 최씨 최원도의 어머니 묘. [사진 송의호]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려 공민왕 시기 영천 최씨 최원도(崔元道)와 친구인 광주 이씨 이집(李集)이다. 승려 신돈이 득세해 세상을 어지럽힐 때다. 사간 최원도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영천으로 내려왔다. 친구 이집도 신돈의 전횡을 신랄하게 비판한 뒤 둔촌동(서울) 집에 머물렀다. 어느 날 밤 이집은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해 아버지를 업고 영천으로 친구 최원도를 찾아 나선다.
 
1368년 어렵사리 도착한 최원도 집에서는 마침 그의 생일을 맞아 주민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집은 최원도의 집 문간방에 아버지를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최원도가 달려왔다. 반가워 손을 잡으려는 이집을 향해 최원도는 뜻밖에 불같이 화를 냈다. “망하려면 혼자 망하지 어째 우리 집안까지 망치려 드나!”
 
최원도는 다짜고짜 이집 부자를 동네 밖으로 쫓아냈다. 그리고는 이집 부자가 앉았던 문간방을 역적이 머문 곳이라며 여러 사람 앞에서 불태웠다. 이집은 주변을 떠돌았다. 그래도 친구의 진심은 그렇지 않으리라 굳게 믿었다. 며칠 뒤 이집은 한밤중 동네 사람 모르게 최원도 집 주변 덤불에 몸을 숨겼다. 최원도도 이집이 다시 찾아올 것을 생각하며 어두울 무렵 혼자 주위를 서성이다 둘은 재회한다.
 
이집은 그때부터 최원도의 집 다락방에 숨어 지낸다. 최원도는 혼자만 알고 가족에게도 비밀로 했다. 고개를 갸웃거린 건 몸종이었다. 주인에게 밥을 고봉으로 담고 반찬을 늘려도 언제든 다 비웠기 때문이다. 몸종은 하루는 주인이 그 음식을 다 먹는지 직접 문틈으로 살폈다. 깜짝 놀란다. 주인은 처음 보는 두 사람과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 몸종은 안주인에게 알렸고 부인은 남편에게 까닭을 물었다. 최원도는 부인과 몸종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이 사실이 새나가면 두 집안이 멸문의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몸종 ‘제비’는 자칫 자신이 실수할지 몰라 고민 끝에 자결한다.


광주 이씨, 이수성 전 국무총리도 배출

최원도의 몸종으로 당시 자결했다고 전해지는 연아의 무덤. [사진 권효섭]

최원도의 몸종으로 당시 자결했다고 전해지는 연아의 무덤. [사진 권효섭]

 
몸종이 죽은 뒤 1369년 이집의 아버지가 다락방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때 최원도는 자신의 수의를 내주고 주위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자기 어머니 묘 부근에 장사 지내게 했다. 광주 이씨 시조 묘가 영천에 자리 잡은 내력이다. 다락방 생활 4년 만에 승려 신돈은 맞아죽고 세상은 바뀌었다.
 
광주 이씨는 이곳에 시조를 모신 음덕 때문인지 정승‧판서가 잇따라 나오고 오늘날도 이수성 국무총리 등이 배출됐다. 광주 이씨 시조 묘소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는 최씨 집안 몸종의 무덤이 있었다. 비석에는 ‘연아총(燕娥塚)’이라 새겨져 있다. 일대 묘역은 현재 영천 최씨에서 광주 이씨로 소유가 바뀌어 있다. 영천 최씨 한 후손은 “광주 이씨들은 지금도 시조 묘제를 지내면서 최 사간 어머니와 몸종의 제물까지 준비해 같이 제사를 올린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곳 묘역에 임금이나 왕후에 붙이는 능을 써 ‘광릉’이라 부르는 건 좀 거슬린다”고 덧붙였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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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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