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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프리카돼지열병인데 북한과 ‘전염병 협력’ 예산 1400억 중 집행 ‘0원’

중앙일보 2019.10.17 05:00
정부가 북한과 전염병 유입 및 확산방지 협력을 위해 1000억 원대 예산을 편성하고도 전혀 집행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남북 대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지난해 남북 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이 체결됐다. 두 선언에는 이산가족 상봉, 문화예술 교류, 철도‧도로 건설 등 사업 공동추진 방안이 담겼다. 정부는 해당 사업들을 이행하기 위해 2018‧2019년에 걸쳐 수천억대 예산을 편성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16일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 예산 중 상당 액수가 불용예산이 됐다.  
 
특히 ‘전염병 질병의 유입 및 확산방지를 위한 보건‧의료분야 협력 강화’ 예산은 1406억5900만 원이 편성됐음에도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최근 국내에서 확산 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경우, 북한이 유입경로로 추정되고 있지만 북한의 묵묵부답으로 공조 자체가 되지 않는단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달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은 올 5월 ASF 발생을 처음으로 세계동물보건기구에 신고한 뒤 현재는 “평안북도의 돼지가 전멸했다”고 할 정도로 그 수준이 심각한 상태다.  
 
이에 정부가 5월부터 북한 측에 수차례 발생상황 공유 및 확산방지를 위해 공조를 요청했으나, 북한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북측과 공조가 되지 않아 책정된 예산도 한 푼도 쓰지 못했다. 이 가운데 지난 15일에는 환경부가 경기 연천군 민간인통제선 근처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야생 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히면서 정부가 민통선 인근 멧돼지에 대한 대대적 포획에 나서기도 했다. 박주선 의원실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전염병 방지를 위한 예산조차 한 푼도 쓰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산 멧돼지

북한산 멧돼지

2020년 여름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대회에 공동 진출하기 위해 책정된 예산도 비슷한 상황이다. 평양 공동선언에 명시된 ‘2020 여름 올림픽 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 공동 진출, 2032년 여름 올림픽 공동 개최 유치 협력’ 사업 이행을 위해 2018‧2019년 책정된 예산 259억8200만 원 중 집행된 예산은 1억2600만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판문점 선언의 ‘국제경기 공동 진출 등 각계각층의 다방면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 활성화’ 이행을 위해 책정된 예산 334억7200만 원 중에서도 6억3600만 원만 집행됐다. 올해 해당 분야에 책정된 판문점 선언 이행 예산 205억 원의 집행률은 0%였다.
 
외신에서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경기’라고 평한 15일 남북 축구 맞대결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저녁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남북한 남자 축구대표팀의 맞대결로 열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은 취재진과 응원단, 생중계 없이 진행됐다. 이날 경기를 두고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한에 정치적 불만을 제기한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금강산 상설면회소 설치(155억7400만원), 이산가족화상상봉 영상편지 교환(46억1700만원) 등을 위해 책정된 예산도 전혀 집행되지 못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들어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노무현 정부 이래 최저 수준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박주선 의원실이 통일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 정부에서 8월 현재까지 2년 3개월 동안 대북 인도적 지원 예산은 총 288억 원이 편성됐다.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 4년 반 간 총 671억 원, 이명박 정부에서 5년간 2577억 원이 편성된 것과 비교해도 낮은 숫자다. 이와 관련, 통일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강력하다 보니 조금 줄었다가 올해 들어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해명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북한이 세계식량계획(WFP)를 통한 한국 정부의 쌀 지원을 거부하기도 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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