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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돈·기업 한국 떠난다] “대통령 연일 친기업 행보? 새 규제 법령은 왜 만드나”

중앙일보 2019.10.17 05:00 종합 4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일주일 새 삼성과 현대차를 찾아 재계 1,2위 그룹 총수를 잇따라 만났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상조 청와대 청책실장은 15일 언론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한 달 평균 다섯 차례 경제 현장을 찾는 것은 엄중한 경제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본시장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재계 “기업 경영 압박” 철회 요구

하지만 재계는 대통령의 현장 이벤트보다 정부가 내놓는 각종 규제 법령에서 현 정부의 진짜 경제 인식를 느낀다고 말한다. 16일로 입법예고가 끝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가 만든 시행령 개정안에는 그동안 단순투자 명목으로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에게 금지해온 '경영 개입' 행위를 내년부터 대폭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는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의 임직원에 대해 직무정지ㆍ해임을 요구할 수 있고 배당을 요구하거나,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정관 변경도 추진할 수 있다. 이런 행위는 상위법인 자본시장법에서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행위’로 보고 단순투자자에게 금지한 것이어서 논란이다. 정부가 국회를 거쳐야 하는 상위법 개정 대신 국무회의만 통과하면 되는 시행령 개정으로 기업을 옥죄려 한다는 지적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사실상 국가기관 성격이 강한 국민연금이 사기업의 경영을 통제하거나 관리하려고 하는 행위여서 헌법 126조 위헌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현재도 노조는 회사의 적법한 경영 활동에도 국민연금의 개입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며 회사를 압박한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민연금 눈치를 더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런 우려를 담아 정부에 "시행령을 철회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ㆍ현대차ㆍSKㆍLGㆍGSㆍ현대중공업 등 주요 10대 그룹 주식을 각 5% 이상씩 보유하고 있다. 10대 그룹 임원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 고 조양호 회장이 국민연금의 반대로 이사에 재선임되지 못했을 때 재계의 충격이 컸다”며 “임원 해임요구가 경영에 주는 활동이 아니라는 근거가 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노동조합법 개정안도 재계는 전면 반대했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기준에 맞춰 낸 개정안은 해고자와 실직자도 기업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경총ㆍ대한상의 등 경제5단체는 “노조 파업시 대체근로를 금지한 현행법에 따라 기업이 별다른 방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해고자마저 노조 가입을 허용하면 노사 관계는 더욱 대립적ㆍ투쟁적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고경영자(CEO)의 ‘관리 책임’을 형사처벌로 따지는 법 조항도 기업을 옥죄는 규제로 꼽힌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정거래법ㆍ산업안전보건법ㆍ화학물질관리법 등 10개 경제ㆍ노동ㆍ환경법을 분석해보니 벌칙조항 357개 가운데 88%가 대표이사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나 주52시간제 등도 위반시 대표이사가 형사 처벌을 받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지금은 대기업이 국내에서 이런 형사처벌 위험을 무릎쓰고 적극적으로 경영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모든 책임을 대표이사에게 묻는 처벌 우선주의는 기업을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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