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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의 시시각각] 이상하다, 너무 조용하다

중앙일보 2019.10.17 00:19 종합 34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두 달 넘게 끌어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파문에 묻혀서일까. 2년 전엔 난리가 아니었는데 이번엔 이상하리만치 잠잠하다. 움직임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하다. 손 놓고 있는 건지, 아니면 공개하기 껄끄러워 몰래 물밑에서만 작업하는 건지. 현행법상 정부는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2년마다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15년 동안 전기를 이만큼 쓸 것이니 어떤 발전소를 언제 어디에 몇 개 세운다’하는 계획이다.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 2년마다 고쳐 수립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올해가 그 아홉 번째를 만들 차례다.
 

2년 전 시끄럽던 탈원전 전력 계획
수요 예측·요금 예상 모두 빗나가
국민 앞에 문제점 솔직히 고백해야

앞서 2017년 12월에 나온 8차 계획은 발표 여러 달 전부터 시끌시끌했다. 탈원전을 못 박아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많았다. 무엇보다 근거와 논리가 기괴했다. 미래 전력수요 예측과 전기요금 부분이 특히 그랬다. 당시 정부는 미래 전력수요 예측량을 갑자기 확 줄였다. “경제성장률이 꺾였다”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해도 전력수요를 지나치게 적게 잡았다는 지적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비판에는 ‘전력수요-GDP 탄성치’란 날카로운 분석까지 동원됐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듬해부터 예상이 빗나갔다. 지난해 최대전력수요 예측치는 8610만㎾였으나 실제는 9248만㎾로 무려 638만㎾ 초과했다. 원전 4~5기가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다. “유례없는 무더위”란 변명거리는 있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역시 실제가 예측보다 321만㎾ 많았다. 경기 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산업 전력수요가 감소했는데도 이렇다. “원전을 멈추려고 미래 전력수요 예상치를 무리하게 낮춰 잡았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는 이유다. 이대로 가면 전기가 모자라 2011년 같은 정전 사태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마저 나온다.
 
전기요금은 또 어떤가. 8차 계획을 세우며 정부는 호언장담했다. “신재생을 늘려도 문재인 정부 동안은 사실상 인상 요인이 없다. 2030년까지도 10.9%만 올리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비싼 신재생을 잔뜩 늘리면서 전기요금은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건 논리가 빈약했다. “2030년께면 태양광 패널값이 뚝 떨어져 인상 요인이 사라진다”는 정부 설명은 비웃음마저 샀다. 태양광 발전소를 하나도 짓지 않고 있다가, 패널 가격이 상당폭 하락한 2030년에 한꺼번에 지어야 “전기요금에 영향 없다”는 계산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뿐이 아니다. 정부가 태양광·풍력 발전소 땅값 등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까지 드러났다. 도처에 산재한 인상 요인을 애써 외면한 셈이다.
 
이젠 이런 식의 논리 타박조차 불필요한 상황이 됐다. 한국전력이 적자로 전락했다. 지난해 2조2000억원, 올해는 상반기에만 2조1500억원 영업 손실을 냈다. 정부는 “탈원전이 아니라 오른 연료비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그러나 애꿎은 월성 원전 1호기를 멈추지만 않았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터다. 여기저기서 “요금 올려야 한다”는 소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2년 전 만든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났다. 이번 9차 계획에서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뚝딱뚝딱 고치는 소리가 요란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고요하다. 수상하기 짝이 없다. 에너지 학계와 업계에서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더는 전기요금 인상 압력을 견디기 어렵다. 9차 계획에는 인상을 담아야 한다. 그러나 총선 전에 인상론을 꺼내기는 부담이다. 9차 계획 발표를 총선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직 조용하다.”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전력수급 계획이 정치 일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건 씁쓸하다. 그래도 오류로 얼룩진 8차 계획을 그대로 밀고 가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어쨌든 일부는 바로잡는 것 아닌가. 정부가 정말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전기요금뿐 아니라 다른 부분들도 이참에 제대로 검토하자. 이젠 국민 앞에 솔직해질 때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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