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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초한지·삼국지의 무대…고대 중국을 만나다

중앙일보 2019.10.16 01:11
 문득 중원(中原)을 걷고 싶었다. 고백건대, 중국 역사를 책으로 배웠다는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춘추전국 시대를 다룬 『열국지』와 항우와 유방의 쟁패를 다룬 『초한지』 사마천의 『사기』 위오촉(魏蜀吳) 삼국시대 군웅을 그린 『삼국지』 당나라 시절 불경 전래를 현실과 환상을 조합해서 쓴 『서유기』가 그 책이다. 고대문명의 중심 무대는 언제나 중원이었다. 그렇게 중원 도시인 정저우(鄭州)·뤄양(洛陽)·시안(西安)으로 훌쩍 떠났다. 여행사 뚜르디메디치의 일정에 참가했다.

중국 정저우·뤄양·시안 여행
400여 년 걸려 빚은 룽먼 석굴
양귀비 러브 스토리 무용극 감탄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룽먼 석굴. 2100여개 동굴에 10만 위가 넘는 석불이 있는데 봉선사동의 대불이 가장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채인택 기자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룽먼 석굴. 2100여개 동굴에 10만 위가 넘는 석불이 있는데 봉선사동의 대불이 가장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채인택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룽먼(龍門) 석굴이 일행을 맞았다. 허난(河南)성 뤄양 남쪽 강변 언덕에 위치한 동굴 사원은 방문자를 압도했다. 특히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인 672~675년 만들었다는 봉선사동(奉先寺洞)의 대불은 눈은 물론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1500년 전 중국인은 절박한 신앙을 돌 깊숙이 아로새겼다. 2100여 개 동굴에 10만여 위 석불과 3600여 개 비석은 비원을 표현하는 형식이었을 것이다. 4세기 북방민족인 선비족의 북위(北魏·386~534년) 때 시작해 당나라를 거쳐 북송 때까지 400여년간 축조했다니 마르지 않은 신앙심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시안에 있는 진시황릉 병마용갱. 진시황의 막강한 정치권력을 보여준다. 채인택 기자

시안에 있는 진시황릉 병마용갱. 진시황의 막강한 정치권력을 보여준다. 채인택 기자

 또 다른 문화유산은 산시(陝西)성 시안에 있는 진시황릉 병마용갱이었다. 살아생전 지휘하던 엄청난 군대의 형상을 진흙으로 구워 무덤까지 가져간 힘은 정치권력이었다. 신앙과 권력은 역사의 뼈대다.
정저우에 있는 중원 복탑. 채인택 기자

정저우에 있는 중원 복탑. 채인택 기자

 정저우에선 황허(黃河) 문명을 낳은 황허와 그 넓은 중원의 지리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3500년 전 상(商) 왕조의 도읍이었던 이곳은 오늘날 인구 1013만 명의 초현대 도시로 변모했다. 338m 높이의 중원 복탑에 올랐더니 눈을 씻고 봐도 산은 찾을 수 없었다. 지평선 끝까지 사방에 평원이 펼쳐진 그곳이 바로 중원이었다. 차로 2시간을 달려서 처음 만난 산이 소림사가 있는 숭산(嵩山)이었다. 탑림(塔林)이 일행을 맞았다. 수행과 깨달음의 삶을 살다 떠난 고승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부도다.
정저우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소림사. 채인택 기자

정저우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소림사. 채인택 기자

 고대 수도인 뤄양과 시안을 잇는 중원의 길도 의외로 매력적이었다. 가도 가도 벌판밖에 보이지 않아 사람을 상념에 잠기게 했다. 『삼국지』에서 원소가 쳐들어오자 동탁이 뤄양에 불을 지른 뒤 황제와 주민을 끌고 장안으로 도망친 바로 그 길이다. 주나라가 기원전 771년 견융의 공격을 받자 시안을 떠나 뤄양으로 옮겼는데, 이 길의 반대 방향이었다. 한나라도 왕망에게 나라가 망하기 전인 전한(기원전 202년~기원 8년) 때는 지금의 시안인 장안(長安)을, 후한(25년~220년) 때엔 뤄양을 각각 수도로 삼았다. 뤄양에서 출발한 열차는 무심하게도 이 역사 가도를 최고 시속 300㎞로 달려 1시간 32분 만에 시안에 도착했다.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하고 보관했다는 대안탑이 일행을 맞았다. 한나라부터 근대에 이르는 4000여 개 비석을 모아둔 시안 비림(碑林)은 한문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의 메카다. 2000년 전 필체가 생생하게 눈앞에서 살아났다.
시안사변의 현장인 오간청.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가 구금당한 뒤 어쩔 수 없이 제2차 국공합작을 합의한 역사적 장소다. 채인택 기자

시안사변의 현장인 오간청.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가 구금당한 뒤 어쩔 수 없이 제2차 국공합작을 합의한 역사적 장소다. 채인택 기자

 당나라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던 온천 휴양지 화청지(华清池)에 갔더니 1936년 12월 12일 중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시안사변의 현장인 오간청(五間廳)이 보였다.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張介石)가 이곳을 찾았다가 부하인 군벌 장쉐량(張學良)에 구금돼 공산당 토벌 중지를 약속하고 제2차 국공합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장이다.
시안 화청지에서는 양귀비와 현종의 러브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무용극 '장한가'를 볼 수 있다. 채인택 기자

시안 화청지에서는 양귀비와 현종의 러브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무용극 '장한가'를 볼 수 있다. 채인택 기자

 화청지에 밤이 오니 양귀비와 현종의 사연으로 만든 무용 음악극 장한가 공연이 시작됐다. “사랑하는 여인도 지키지 못한 내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까. 그대가 보고 싶다”라는 현종의 절규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시안·뤄양·정저우(중국)=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여행정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시안 직항편을 운행한다. 3시간 20분 소요. 대한항공·이스타항공·중국남방항공은 인천~정저우 직항편을 운행한다. 약 2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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