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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의 의학노트] 노벨상이 갈라놓은 사제지간

중앙일보 2019.10.16 00:22 종합 27면 지면보기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학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도 부러워했던 놀라운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우리가 평화상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 조금 겸연쩍다. 그러나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노벨상 수상자 선정은 자주 시빗거리에 올랐으며, 노벨상 수상의 기반이 된 연구 결과가 나중에 틀린 것으로 드러난 경우도 있었다.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이 함께 이룬 성과에 대한 노벨상 수여가 결국 스승과 제자의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은 적도 있었다. 최초의 결핵약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다.
 
지난 2세기 동안 약 10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처음 개발한 이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유대인이었던 셀만 왁스만 박사였다. 미국 뉴저지의 럿거스 대학에서 미생물학자로 일하던 그는 흙 속에서 항균(抗菌) 물질을 찾으려는 오랜 노력 끝에 1943년, 결국 최초의 항결핵제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분리해냈다. 사람들은 이제 결핵은 정복됐다고 믿었으며, 왁스만 박사는 195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그런데 왁스만 박사의 지시로 이 연구를 맡아 ‘스트렙토마이신’을 직접 찾아낸 사람은 대학원생이었던 앨버트 샤츠였다. 럿거스 대학을 수석 졸업했을 만큼 총명했던 그는 연구를 맡은 후 실험실에서 먹고 자며 연구에 몰입했다. “나는 보통 새벽 5~6시 사이에 실험을 시작했고 대개 자정 무렵에, 가끔은 자정을 넘어서 실험을 마쳤다”고 말했던 그는 “나는 곧 내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회고했는데, 그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겨우 몇 달 만에 흙 속에 사는 곰팡이가 분비하는 항균 물질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 막 연구를 시작한 대학원생이 짧은 시간에 이런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그의 능력과 의지가 얼마나 초인적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의학노트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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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노벨상이 결핵약을 개발한 사람에게 수여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샤츠는 자신과 지도교수였던 왁스만 박사의 공동 수상을 확신했는데, 결국 자신은 배제되고 왁스만 박사가 단독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노벨상 위원회는 물론 당시 스웨덴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6세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맹렬히 호소하여 과학계는 한동안 떠들썩한 논쟁에 휩싸이게 되는데, 수상자 선정에 대해 전례 없이 격렬하게 항의하는 그에게 과학자들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였던 왁스만 박사와 관계가 틀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결국 구스타프 6세는 노벨상 수상자의 정정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상황을 정리한다. 그러자 그는 특허권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왁스만 박사와 럿거스 대학은 특허권 일부를 그에게 양도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우리는 연구의 시작은 반드시 ‘호기심’ 때문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연구에 사심이 개입하는 순간 연구 결과의 왜곡이나 조작의 유혹에 노출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가난한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고, 사촌 중 자신 이외에는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던 샤츠가, 성공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연구하여 이룩한 업적에 대한 영예가 스승에게만 주어진 것을 평생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과연 소인배였기 때문일까?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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