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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대상 3억 상금마저도 방글라 병원 승강기 설치에 쓴다는 슈바이쩌 의사

중앙일보 2019.10.15 15:52
제31회 아산상 대상 수상자인 이석로 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 원장(왼쪽)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31회 아산상 대상 수상자인 이석로 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 원장(왼쪽)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원래는 3년만 있으려고 했는데 봉사 하다 보니 계속 머무르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의사로서의 삶을 계속 사는 것보다 이곳 사람들 가난과 질병을 해결하는 게 보람이 큽니다. 용기를 내서 떠나지 않았다면 개업의나 봉직의로 남았겠지만 몇십년 뒤에 후회했을 거 같아요."

 
이석로(55) 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 원장은 25년 전 한국을 떠났다.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광주기독병원을 거쳐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그는 편한 생활을 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 돕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부인, 생후 18개월 된 큰아들과 함께 방글라데시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낯선 나라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른 살의 젊은 의사가 어느새 병원을 총괄하는 중년의 원장이 됐다. 방글라데시 빈민 의료를 위해서 애쓴 공로를 인정받아 이 원장이 제31회 아산상 대상을 받게 됐다.

이석로 꼬람똘라병원 원장, 아산상 대상 수상
열악한 환경서도 무료 수술·여성 교육에 힘써
상금을 병원 엘리베이터 설치에 쓰기로

"자립 가능하다 판단되면 새로운 곳에서 봉사"
다음달 시상식, 상금은 병실 확충 등에 쓰기로

 
상금은 3억원이다. 이 원장은 "병원 엘리베이터 설치, 병실 확장 등에 상금을 쓸 예정"이라고 말한다. 상금마저도 빈민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병원 환경은 열악하다. 2층 수술실과 1층 입원실을 오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장정 4명이 환자 침대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병실이 모자라서 환자에게 제대로 된 침대 대신 시멘트 바닥에 매트리스만 깔아주는 일이 허다하다. 전기와 물도 늘 모자란 상태다.
 
사실 이석로 원장은 의대보다는 공대가 체질에 더 맞았다. 의사로서 사람을 매일 만나서 치료하고 이야기하는 삶이 쉽지 않아서 늘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9년 광주기독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의료봉사 모집 안내판이 전환점이 됐다. 인턴 수련을 마친 뒤 곧바로 떠나려 했지만 전문의는 따고 가야 한다는 병원장 만류에 5년을 참았고, 결국 그 날이 왔다. 그는 1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소 관심 있던 봉사도 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면 의사 생활하기 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러 경험을 해보자는 뜻으로 용기를 냈는데 마침 방글라데시에서 의료 봉사를 원한다고 하니 떠나게 됐다”라고 말했다.
 
꼬람똘라병원이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환자는 늘 몇달씩 밀려있다. 한 해 8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찾아온다. 병원 안과는 다른 현지 병원의 30~50% 수준인 한국 돈 4만5000원 정도로 저렴하게 백내장 수술을 해준다. 그 돈도 없다고 하면 무료로 해준다. 치질, 맹장, 제왕절개 등 외과 수술이나 다른 내과 진료도 계속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돈이 없는 가난한 환자는 최대한 편의를 봐준다.
제31회 아산상 대상을 수상하는 이석로 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 원장.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31회 아산상 대상을 수상하는 이석로 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 원장.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처음엔 하루 60~70명씩 환자 진료를 봤던 이 원장도 병원이 커지면서 치료 대신 부족한 부분 메우는 데 집중하게 됐다. 병원 자립을 위해 현지 의료진을 꾸준히 채용, 교육하면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여러모로 국내보다 힘든 생활이지만 호전된 환자를 보면 즐겁다고 했다. 그는 "백내장 때문에 시야가 깜깜하던 할아버지가 무료 수술로 눈을 뜨고 빛이 들어오니 너무나 기뻐했다. 그 순간 미소가 번지면서 얼굴 자체가 확 변했다. 아이처럼 좋아하며 집에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병원 체계를 갖추고 환자를 고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교육 기회가 없어 직장을 갖기 힘든 방글라데시 여성들을 위해 간호 학교를 설립했다. 장학 사업과 임산부 대상 산전 진찰이나 교육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단순한 의료 봉사를 넘어 사회 환경 개선에 역할을 맡는 셈이다. 이 원장은 "2년, 3년 단위로 봉사 활동을 계속할지 말아야 할지를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 사람들이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내 능력을 쓸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아가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처음 떠날 때는 첫 아이만 데리고 나섰지만 이제는 다섯 식구로 늘었다. 세 자녀는 미국으로, 한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둘째 딸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방글라데시에서 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다. 그는 "봉사하는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이들도 나를 많이 지지해준다. 딸도 나중에 어려운 나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31회 아산상 의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혜심 약학 박사.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31회 아산상 의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혜심 약학 박사.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상 의료봉사상에는 42년간 한센인, 아프리카 빈민층 등을 돌보는 데 헌신한 김혜심(73) 약학 박사가 선정됐다. 사회봉사상은 1973년부터 서울 강서구, 경기 수원, 전북 완주, 전남 담양 등 4곳에서 무의탁 노인들을 챙기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대표 이상옥 헬레나 수녀)가 받는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이 수여하는 아산상은 1989년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의 뜻에 따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거나 효행을 실천한 개인ㆍ단체를 찾아 격려하자는 뜻에서 제정됐다.

제31회 아산상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사진 오른쪽 둘째가 대표인 이상옥 헬레나 수녀.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31회 아산상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사진 오른쪽 둘째가 대표인 이상옥 헬레나 수녀.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시상식은 다음 달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대상·의료봉사상·사회봉사상·복지실천상·자원봉사상·효행가족상 등 6개 부문 수상자 12명(단체 포함)은 상금 7억7000만원을 받는다. 이석로 원장에겐 가장 많은 상금 3억원이 주어진다. 그는 "뜻밖에 뜻깊은 상을 받게 돼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간 미뤄왔던 여러 숙원 사업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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