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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벡에 푹 빠져서" 스코틀랜드 작은 섬으로 간 한국인

중앙일보 2019.10.15 11: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38)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크라이겔라키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하이랜더 인(Highlander Inn)’이라는 호텔은 ‘위스키 우주의 중심(Malt Whisky Universe)’으로 불린다. 호텔 안에 작은 bar가 있는데, 위스키 증류소 오너를 비롯해 전 세계 위스키 관계자와 위스키 팬들이 찾는 장소기 때문이다.
 
현재 이 호텔의 오너는 일본인이다. 위스키를 공부하러 20대 후반에 스코틀랜드에 갔다가 이 호텔에 자리를 잡고, 지금은 오너가 된 그. 현재는 일본과 스코틀랜드의 가교 역할을 하며, 스코틀랜드를 찾는 일본 위스키 팬들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아드벡 증류소 방문객 센터의 오수민 씨. 위스키 테이스팅과 칵테일 개발을 맡고 있다. [사진 오수민]

아드벡 증류소 방문객 센터의 오수민 씨. 위스키 테이스팅과 칵테일 개발을 맡고 있다. [사진 오수민]

 
부러웠다. 일본의 바텐더나 위스키 팬들과 만나면, 늘 그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스코틀랜드에 갈 때면 그가 있어 늘 든든하다고. 그래서 스코틀랜드 위스키 업계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최근에 스코틀랜드로 여행 가는 지인이 스코틀랜드에서 일하는 한국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 아드벡 증류소 방문객 센터에서 일한다는 오수민 씨. 2012년부터 바텐더로 서울, 제주, 멜버른, 런던 등 국내외에서 경험을 쌓던 그가 아드벡 증류소까지 간 이유는 뭘까. 너무 궁금해서 서면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Q. 어떻게 지금 일을 하게 되었나?
A. 바텐더로 일하며 창작한 대부분의 칵테일이 아드벡 위스키를 베이스로 했을 만큼, 오래전부터 아드벡의 열성적인 팬이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아드벡 증류소를 방문했던 날, 증류소를 떠나며 '한 번만 방문하고 떠나기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런던으로 돌아가자마자 모든 짐을 정리하고, 무작정 아일라 섬으로 이주했습니다. 처음에는 집도 없이 카라반에서 생활하며, 아일라 섬의 한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했습니다.
 
조금씩 지역 주민들과 친해지며 자리를 잡아 가던 어느 날, 호텔에서 우연히 아드벡 증류소의 매니저, 재키 톰슨 씨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아드벡을 향한 열정을 어필하며, 아드벡으로 만든 칵테일을 자신 있게 권했습니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그는 “그렇게 아드벡을 좋아하면, 이번 주말에 증류소로 와서 칵테일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는가”라고 하더군요.
 
저는 들뜬 마음에 주말까지 잠도 잊고, 주말에 선보이게 될 칵테일들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 칵테일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아드벡에 대한 사랑을 이토록 훌륭한 칵테일에 담아 여러 사람에게 전파했던 그간의 노력에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아드벡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아드벡 증류소에서 위스키 테이스팅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점심 서비스를 돕거나, 아드벡을 이용한 칵테일 개발도 합니다.
 
오수민 씨가 아드벡 위스키로 만든 칵테일, 쓰나미. 아드벡에 약간의 민트 리큐르를 차갑게 스터해 두 개의 강한 맛이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오는 느낌을 표현했다.

오수민 씨가 아드벡 위스키로 만든 칵테일, 쓰나미. 아드벡에 약간의 민트 리큐르를 차갑게 스터해 두 개의 강한 맛이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오는 느낌을 표현했다.

 
Q. 가장 좋아하는 아드벡 위스키는?
A. 주저 없이 '아드벡 롤러코스터'라 답하겠습니다. 실제로 맛보는 기회는 적었지만, 아드벡 롤러코스터가 저를 아드벡까지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처럼, 여러 번 생산이 중단되었던 비운의 증류소 역사를 유쾌하게 표현한 위스키입니다. 바텐더란 직업을 선택하면서 고비가 많았던 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고비가 있든, 아드벡처럼 자신의 길을 끝까지 따라서 가라'는 훌륭한 영감을 준 존재입니다. 방문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를 물으면, “아드벡을 마시는 것은 단순히 위스키를 마시는 것을 넘어, 한 모금의 꿈을 마시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아일라 섬 영주의 성터.

아일라 섬 영주의 성터.

 
Q. 아일라 섬 생활은 어떤가.
A. 아일라 섬에서의 생활은 황홀할 뿐입니다. 2019년 기준, 작은 아일라 섬에 위스키 증류소만 10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일라 섬은 천국입니다. 위스키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섬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절경들이 낙원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늪지와 산을 헤쳐 가다 보면, 아일라 섬 영주가 살았다는 고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마을 해변 근처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해안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바다표범도 볼 수 있습니다. 새벽녘 집 근처에서 울리는 요상한 소리에 화들짝 놀라 불을 켰더니, 창문 밖에서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사슴에 가슴이 철렁했던 적도 있습니다.
 
아일라 섬 주민은 3000여 명인데, 서로 잘 알고 지냅니다. 아일라 사람들은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하고, 곤란한 일은 서로 도우며 정겹게 살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약혼했습니다만, 외국인임에도 아직 축하 카드를 받을 정도입니다.


Q. 아드벡 특유의 피트 냄새가 온종일 풍길 거 같은데 어떤가?

A. 증류소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강한 피트 향이 후각을 혼미하게 합니다. 특히, 비 오는 날 아침이면 피트향이 한층 더 강해지는데, 이러한 향을 온몸으로 느끼며 출근하는 일은 황홀합니다. 좋아하는 피트 향과 함께하기에 증류소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일 아침 출근하러 집을 나서는 것이 기대될 정도입니다.
 

온종일 피트향이 가득한 아드벡 증류소.

 
Q. 아드벡 증류소엔 어느 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나? 한국인은 많이 오는지?
A. 스웨덴,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 방문객이 가장 많습니다. 미국과 호주에서도 많이 옵니다. 특히 미국과 호주는 크래프트 디스틸러리가 성행하고 있어, 증류업자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증류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위스키 샘플을 선물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국가별 위스키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시아에선 중국인과 일본인이 주로 방문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을 읽고, 무작정 아일라 여행을 왔다는 일본인이 가끔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지금껏 일하며 만났던 한국인 방문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아쉽습니다. 아일라 섬에서 어쩌다 한국인을 만나면, 오래간만의 한국어 사용으로 마음이 들뜹니다. 잘 아는 로컬 레스토랑까지 확실히 안내해 드릴 테니, 아일라 섬에 많이 놀러 오세요!
 
아드벡 증류소 방문객 센터의 오수민 씨. [사진 김유빈]

아드벡 증류소 방문객 센터의 오수민 씨. [사진 김유빈]

 
Q. 앞으로의 계획은?
A. 위스키 경험을 더 늘리기 위해, 아일라 섬을 떠나 크래프트 증류소 열풍이 불고 있는 뉴질랜드로 떠날지 고민 중입니다. “언젠가 마스터 디스틸러나 블렌더가 되고 싶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사실 저는 그런 웅장한 야심가는 못됩니다. 인종과 지역을 넘어, 이 행성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소박한 모험가입니다. 바텐더와 증류 업자로서의 길이, 제가 할 수 있는 세상을 한 눈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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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필진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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