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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합의했다"는데, 중국은 아니라는 무역협상

중앙일보 2019.10.15 08:05
류허 중국 부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말을 들으며 미소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류허 중국 부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말을 들으며 미소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은 워싱턴에서 이틀간 무역협상을 진행한 결과 일부 의제에 합의했다고 지난 11일(현지시간) 발표했습니다.

미·중 무역협상 뒤 트럼프 "1단계 합의"
류허 부총리, 中 상무부는 "실질적 진전"
탄핵 정국 속 성과 위해 '과장' 측면도
"中, 12월 관세도 유예하라 요구" 보도

 
엄밀히 말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하고, 중국 측 협상 대표인 류허 부총리는 묵묵히 들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류 부총리와 중국 협상단을 초대한 자리에서 “실질적인 1단계 합의(substantial phase one deal)에 이르렀다”고 발표했습니다.  
 
합의 내용을 설명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백이 끝난 뒤 발언 기회를 얻은 류 부총리는 “실질적인 진전(substantial progress)을 이뤘다”고 말했습니다. ‘합의’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겁니다. 류 부총리의 중국어 발언을 현장에서 통역이 영어로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전쟁 종식에 가까이 있다”고 말했지만, 중국 상무부는 “양측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고, 최종 협정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신화통신 역시 '합의'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쪽 얘기만 들으면 지난 5월 협상이 결렬되기 직전 상황과 달라진 게 없습니다.
 
합의(deal)와 진전(progress), 같은 뜻일까요? 다른 뜻일까요? 트럼프 대통령과 류 부총리는 각각 왜 이런 표현을 선택했을까요?
 
중국이 이번 협상 결과를 왜 ‘진전’이라고만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이번 달 추가 협상 개최를 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류 부총리가 이끄는 협상단을 워싱턴으로 보낼 수 있다고 14일 보도했습니다.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합의를 위해서는 대화가 더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후속 협상에서 추가 요구사항을 내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소식통은 블룸버그통신에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12월 15일부터 새롭게 부과할 예정인 관세를 취소해 줄 것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15일부터 집행하려던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 인상은 철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2월 관세 취소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12월에는 중국산 스마트폰ㆍ장난감 등 소비재 1600억 달러 규모에 대해 새로운 관세가 예고된 상황입니다.
 
한 전직 중국 관료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미국은 11월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중국과 무역 합의안에 서명하고 싶으면 12월 관세 위협을 거둬야 한다”면서 “무역협상이 다시 한번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라는 표현을 선택한 게 성급한 감이 있어 보입니다. 트럼프는 1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마침내 끝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겁니다.  
 
무역전쟁 장기화로 미 경제가 오랜 호황을 접고 성장 둔화에 접어들 수 있다는 전문가들 경고가 심심찮게 나옵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탄탄한 경제가 가장 자랑할만한 업적인데, 자칫하면 무역전쟁이 그 성과를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 정계 흐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말 미 하원의 탄핵 조사가 시작된 이후 매일 탄핵 추진 세력과 ‘전쟁’ 중입니다.  
 
워싱턴포스트ㆍ뉴욕타임스 등 언론이 트럼프의 권력 남용을 암시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하원이 백악관과 국무부 관리에게 소환장을 발부하는 날엔 수세에 몰리고, 잠잠한 날엔 ‘트위터 폭탄’으로 반격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탄핵 조사 시작 일주일 뒤인 지난 5일 트럼프는 하루 59번의 트윗을 보냈는데, 재임 기간 중 세 번째로 많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탄핵 관련 결백을 주장하거나 민주당을 공격하는 내용입니다. 
 
탄핵 정국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미ㆍ중 무역협상 결과를 과장했을 수 있다는 게 미국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미국 측 협상단 대표인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14일 백악관 회견에서 1단계 합의가 완료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기자의 질문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면서“건물을 매입하기로 합의했다면 이제 계약을 위해 협상해야 한다”고 비유했습니다.  
 
부동산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추가 요구사항이 오가면서 계약 자체가 접히는 경우도 있는데요, 미ㆍ중 무역협상 앞날은 다음 주 양측 협상 대표 간 전화 접촉이 이뤄진 뒤 조금 더 명확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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