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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물폭탄 '수퍼태풍'은 온난화 경고…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2019.10.15 05:00
제 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지나간 뒤 14일 일본 나가노현의 전경. [연합뉴스]

제 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지나간 뒤 14일 일본 나가노현의 전경. [연합뉴스]

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을 휩쓸었다.
 

[현장에서]
日, 하기비스로 130명 사망·실종
韓, 하기비스 피한 건 순전히 '운'
수퍼 태풍 갈수록 늘어나지만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기만

일본 전역에 물 폭탄을 퍼부었고, 사망 58명, 실종 72명, 부상 211명 등 큰 인명 피해를 냈다.
피해 집계는 아직도 늘어나는 중이다.
 
하기비스는 지난 6일 오전 3시 괌 동쪽 1450㎞ 부근 해상에서 발생해 일본열도 동북쪽을 강타한 뒤 13일 오전 9시 일본 삿포로 남동쪽 440㎞ 해상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변질해 소멸했다.
 
그사이 수도 도쿄를 포함하는 간토 지방, 후쿠시마를 포함하는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연 강수량의 1/3에 달하는 비가 쏟아졌다.
 
도쿄 남쪽 가나가와 현에는 48시간 동안 1100㎜가 넘는 폭우가 내려, 하수도가 역류해 길거리에 오수가 가득 찼다.
 

올해 가장 강한 태풍…최고 단계 경보

제 19호 태풍 하기비스의 이동경로. 수도 도쿄를 포함한 동일본 지역을 강타해 큰 인명피해를 냈다. [자료 일본 기상청]

제 19호 태풍 하기비스의 이동경로. 수도 도쿄를 포함한 동일본 지역을 강타해 큰 인명피해를 냈다. [자료 일본 기상청]

하기비스는 괌과 일본 사이 해상에서 이동하면서 중심기압이 915헥토파스칼(㍱)까지 내려가고, 중심 부근 최대 풍속이 시속 198㎞(초속 55m)에 달했다.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회전하는 힘이 강해져, 풍속도 빨라지고 강한 태풍이 된다.
 
하기비스는 일본 열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2일 오전까지도 중심기압 945㍱, 최대풍속 시속 162㎞(초속 45m)의 ‘매우 강한’ 태풍의 규모를 유지했다.
 
일본 기상청은 하기비스 접근 전부터 ‘상당히 강한’ 태풍이 예상된다며 대피 권고를 내리는 등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일본 기상청은 태풍을 ‘강한(최대 풍속 초속 33~44m)', '상당히 강한(최대 풍속 초속 44~54m)', '맹렬한(최대 풍속 초속 54m 이상)'으로 분류하는데, 하기비스는 1991년 이후 역대 4번째로 ’상당히 강한‘ 규모를 유지한 채 일본에 상륙한 태풍이 됐다.
 
상륙 후 폭우로 기상청 경보 5단계 중 가장 높은 '폭우 특별 경보'를 내리기도 했다.
 
폭우 특별 경보는 "목숨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행동을 취해야 하는" 수준이다.
 
도쿄 인근 지역에선 시민들이 식량을 쟁여두는 통에 편의점의 매대가 텅 비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진짜 '수퍼 태풍'은 더 강해

'하기비스'가 12일 일본 열도에 접근하면서 일본 기상청은 가장 높은 경보단계인 '폭우 특별 경보'를 수도 도쿄(東京)도와 가나가와(神奈川)현, 사이타마(埼玉)현, 군마(群馬)현, 시즈오카(靜岡)현, 야마나시(山梨)현, 나가노(長野)현 등 7개 광역 지자체에 발령했다.   [자료 일본기상청]

'하기비스'가 12일 일본 열도에 접근하면서 일본 기상청은 가장 높은 경보단계인 '폭우 특별 경보'를 수도 도쿄(東京)도와 가나가와(神奈川)현, 사이타마(埼玉)현, 군마(群馬)현, 시즈오카(靜岡)현, 야마나시(山梨)현, 나가노(長野)현 등 7개 광역 지자체에 발령했다. [자료 일본기상청]

피해가 막심했던 큰 태풍 하기비스는 일본에 도달했을 때는 '수퍼태풍'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으로 접근할 때 한동안은 수퍼 태풍이었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에서는 태풍 중심 풍속이 초속 67m(130노트, 시속 241㎞) 이상이면 수퍼태풍으로 분류한다.
다만, JTWC에선 최대 풍속을 1분 동안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한다.  

 
강남영 경북대 지리학과(기후학) 교수는 "태풍 중심 부근 최대 풍속에서 10분 평균값과 1분 평균값을 환산하는 정확한 계산 식은 없지만, 대체로 한국이나 일본 기상청에서 측정하는 10분 평균 풍속이 초속 50m가 넘어가면 수퍼태풍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일본 인근으로 접근하는 강한 태풍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쓰보키 가즈히사 일본 나고야대 지구물순환연구센터 교수는 "지구 온난화가 진행하면 60년 후에는 이른바 '수퍼 태풍'이 14년에 12번 꼴로 일본에 접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케미 데쓰야 교토대 방재연구소 준교수도 아사히 신문을 통해 "기후 변동으로 태풍의 강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하기비스와 같은) 태풍은 평생 한 번이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두 번 세 번 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기비스 피한 건 순전히 '운'… 기상청 베테랑도 긴장  

태풍 하기비스의 경로. 기상청은 발생 초기부터 "한반도로 올 가능성이 적지만 지켜봐야 한다"며 긴장한 채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자료 기상청]

태풍 하기비스의 경로. 기상청은 발생 초기부터 "한반도로 올 가능성이 적지만 지켜봐야 한다"며 긴장한 채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자료 기상청]

일본으로 향하는 태풍이 많아질수록 한국으로 태풍이 올 확률도 커진다.
 
한국 기상청도 태풍 발생 전인 5일부터 미리 태풍 발생 가능성을 알리며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하기비스가 29~30도의 높은 수온대에서 긴 시간 이동하며 많은 에너지를 흡수하며 북진했기 때문에, 기상청은 ‘북서쪽의 찬 대륙고기압이 우리나라 부근에 자리 잡고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간 수축할 것으로 예상해 일본 남단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올해 들어 발생한 태풍 중 이번 태풍이 가장 강하고 크게 발달할 것으로 보인다“며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상청의 예측대로 북측의 찬 고기압대의 확장으로 하기비스는 우리나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일본을 지나갔지만, 직전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큰 피해를 본 남해안과 동해안 지방 사람들은 태풍의 진로가 확정되기까지 가슴을 졸였다.
 
‘운 좋게’ 찬 공기가 한반도 위까지 내려오지 않았다면, 하기비스의 피해자는 우리 국민이 될 수도 있었다.
 

더 많이, 강하게 오는 태풍… '온난화'의 경고

하기비스가 지나간 뒤 물에 잠긴 일본 후쿠시마 현 타마카와 지역. [AP=연합뉴스]

하기비스가 지나간 뒤 물에 잠긴 일본 후쿠시마 현 타마카와 지역. [AP=연합뉴스]

올해 한국에 영향을 미친 태풍은 7개로,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다 기록을 따라잡았다.
 
하기비스가 조금만 더 북쪽으로 치우쳤다면 ‘8개’로 최고기록을 경신할 뻔했다. 

 
7개 중 링링‧타파‧미탁 3개가 9월 태풍이었다.
 
9월까지도 열기가 식지 않은 태평양에서 크게 만들어진 태풍이 예년과 다르게 한반도 인근까지 세력을 유지한 채 올라온 것이다.
 
하기비스도 북상하면서 29~30도의 따뜻한 해역을 지나면서 세력을 강하게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후데야스 히로노리 요코하마 국립대 준교수는 "해수 온도가 높아 에너지를 머금은 수증기가 대량 공급됐다"고 설명했다. 
 
지구의 평균 온도는 지난 100년간 0.74도 상승했다.
2015년 파리 기후협정에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2도로 제한하는 등 전 세계 정상들이 모여 ‘지구 온난화 방지’,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논했다.
 
하지만,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현재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1도 올랐고, 21세기 말에는 산업화 이전보다 3.4도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결과 데워진 바다는 풍성한 열에너지를 둥지 삼아 크고, 강하고, 멀리 가는 태풍을 만들어 북반구로 올려보내고 있다.
 
‘온난화’가 단순히 ‘더워지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형태의 ‘태풍’으로 인간에게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열 받는 지구, 국내 온실가스 배출 오히려 늘어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그래프. 1960년대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자료 세계기상기구]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그래프. 1960년대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자료 세계기상기구]

한국은 온실가스 감축 면에선 실천이 더 더디다.
 
환경부 소속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7일 "2017년 국가 온실가스배출량은 2016년 6억9257만t(이산화탄소 환산 톤)보다 2.4% 증가한 7억914만톤"이라고 밝혔다.
 
처음으로 7억톤을 돌파한 동시에, 2015~2016년 0.04% 증가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셈이다.
 
올해 여름 환경부가 지금과 같은 기세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21년 이후 국민의 20%가 '폭염 위험' 지역에 살게 될 것이란 분석을 한 바 있지만, 위험 감지가 실천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제17호 태풍 ‘타파’ 발생 전인 지난달 19일, 기상청은 사상 최초로 ‘태풍 발생 전 태풍 예보’를 했다.
 
태풍이 강한 세기를 유지한 채 제주와 남부지방에 영향을 미칠 적으로 예상돼, 해당 지역에 미리 대비를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유례없는 ‘태풍 사전 브리핑’에 나선 기상청 관계자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숱하게 태풍 예보를 했을 기상청 내 전문가들도 “9월 들어 오는 태풍들이 다 강하고 변동성이 커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며 입을 모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퍼 태풍',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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