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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난했던 룩셈부르크가 세계 최고 부국 된 까닭

중앙일보 2019.10.15 00:24 종합 29면 지면보기
권용원 금융투자협회 회장

권용원 금융투자협회 회장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는 어디일까? 다름 아닌 유럽의 소국(小國) 룩셈부르크다. 인구 60만명, 제주도 보다 조금 큰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2만달러다. 19세기 가난한 농업 국가에 불과했던 룩셈부르크가 세계 최고 부국이 된 것은 펀드에 특화된 금융정책을 국가적으로 추진하면서 독보적 금융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금융허브로 성장한 데 따른 것이다.
 

펀드 특화로 글로벌 금융허브 돼
한국, 자본시장법 빨리 개정해야

한국 금융의 국제경쟁력은 어떠한가? 얼마 전 서울과 부산의 금융 국제경쟁력 순위가 각각 36위, 43위라는 암울한 소식이 있었다. 핀테크 경쟁력 역시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판 골드만삭스’ ‘금융의 삼성전자’에 도전해보자는 진취적 기운이 자본시장에서 꿈틀대고 있어 희망을 갖게 한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우리 증권사의 자산 규모는 491조원이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말 대비 약 4배 증가했다. 국내 1위 증권사의 자기자본 규모는 10년 전 골드만삭스의 40분의 1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7분의 1로 추격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자산운용업 역시 운용자산 규모가 2030년 4000조원 이상으로 성장해 세계 6위권에서 경쟁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본시장의 발전과 국제 금융경쟁력 강화는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자본시장은 주력 제조업과 신산업에 혁신금융을 공급하는 핵심 인프라이자, 국민 재산의 증대 및 노후대비를 위한 금융상품 공급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역량을 집중하여 추진해야 할 중요 과제들이 있다.
 
우선 ‘한국 자본시장의 빅뱅’이라 일컬어지는, 자본시장혁신 12대 과제의 차질 없는 추진이다. 원칙 중심의 차이니즈 월 규제 전환 등 대부분의 과제에 대해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과연 한국에서 이런 변화가 실현 가능한가 여길 정도로 개혁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실질적 속도를 낼 수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도 중요하다. 국민 노후대비의 핵심과제이면서 동시에 한국 금융의 국제적 위상도 강화할 수 있는 제도다. 안정적이고 적정한 수익을 위한 해외투자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미국·호주의 경우 401K, 슈퍼애뉴에이션이라 불리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 이후 금융경쟁력이 점프업했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본시장 세제도 글로벌 정합성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금융투자상품의 손익 통산과 손실이월공제, 장기투자 세액공제는 미국·일본·홍콩 등 금융 선진국 모두 도입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한국이 이런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여길 정도다.
 
‘국경 간 거래’ 인프라의 발전 역시 중요하다. 아시아 펀드패스포트의 조기 정착을 통해 역내 회원 국들 간의 원활한 펀드 판매를 유도해야 한다. 룩셈부르크가 국제 금융중심지로 도약하는 기반이 됐던 회사형 펀드 규제개선, 엄브렐러 구조 펀드 허용, 국경 간 펀드 운용·등록·판매의 총괄 관리역할을 수행하는 맨코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투자회사의 국경 간 거래 영업규제 개선, MSCI 선진국지수 편입 등도 검토돼야 한다.
 
런던의 Level39, 팩토리 베를린, 선전(深?), 이노베이션 노르웨이로 대변되는 핀테크 혁신기지는 사실 세계 주요 도시 모두가 도전하는 과제다.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제정까지는 시의적절했으나 이제 신용정보법 개정을 통해 빅데이터 기반 혁신금융 구현이 시급하다.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려면 금융투자회사·정부·국회가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 금융투자회사들은 양적 성장뿐 아니라 리스크 관리, 내부통제, 금융소비자 보호 등 질적 성장을 위한 혁신에 나서고, 정부는 규제를 개선하며, 국회가 신속하게 입법에 나선다면 서울·부산이 글로벌 금융 도시가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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