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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시시각각] 도쿄 이낙연 총리의 ‘미션 파서블’

중앙일보 2019.10.15 00:22 종합 30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방일을 일주일 앞둔 이낙연 총리의 어깨는 천근만근일 것이다. 지일파 이 총리가 십여년전부터 소주잔을 기울이며 친분을 쌓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나 한·일 갈등의 돌파구를 찾아 오리라는 기대가 한껏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꼬일대로 꼬인 실타래를 단 한 번에 풀라는 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에 가깝다.
 

문제는 돌고돌아 강제징용 해법
“정부 대책 한계” 기존 화법 버리고
과감한 ‘이낙연 해법’ 역제안 기대

방일 당사자가 이 총리로 결정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만만치 않은 사정을 짐작케 한다. 총리실 관계자의 말을 빌면 정부는 막판까지 총리와 대통령 중 누가 갈 지를 고민했다. 한·일이 각각 경제보복조치와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 철회에 합의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방일하는 방안을 타진했다고 한다. 서훈 국가정보원장 라인이 움직였다는 전언도 있다. 그러나 강제징용 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란 일본 입장에 변화가 없어 이 총리의 방일로 낙착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돌고돌아 강제징용이다.
 
7월 중순 현지에서 만난 일본측 인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 기업에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일본 입장과 사법부 판결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한국 입장에 양보가 없다. 그럼 (미쓰비시·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이 원고들에게 먼저 돈을 지급하고, 그 후에 한국 정부가 보전해 주면 된다는 논의가 일본 내에 있다. 한국 측에서 받아들일만 한가.” 필자는 “애초 일본 기업을 상대로 재판을 제기해 승소한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 원고들이 안 받아들이는 것은 둘째치고 국민 여론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즉답했다. 그 이후 진행된 협의 내용을 알진 못하지만 도쿄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실제로 그런 논의가 양국 간에 오가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 정부도 일본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판결을 이행하는 모양새지만, 자금 출처가 결국 한국의 돈이고 후속 조치 없이 끝난다면 실질적으로는 판결의 취지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의 안은 단계별 해결책의 한 과정이 될 수는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과감한 ‘이낙연 해법’을 마련해 역제안을 해보면 어떨까. ①우선, 일본 안대로 판결 이행 절차를 밟아 이미 확정판결이 난 소송 3건을 매듭짓는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이 지켜진다. ②한국 정부가 돈을 보전해 줌으로써 일본의 명분도 살린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피해자들과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③ 따라서 기존 한국 정부 안인 ‘1+1+α’ 안과 결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기업 위주의 기금을 설립해 나머지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돈을 내고 성의를 표시하면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양국 지도자가 나서 관계 개선 조치를 취하고 얼어붙은 국민 감정이 누그러지면 일본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이낙연-아베의 짧은 만남에서 구체적 해법을 논의하고 결론까지 내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양국 지도자의 결단과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만 실무자들이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총리가 해야 할 일은 관계 개선의 의지를 확고하게 전달하고, 이대로 한·일 관계를 갖고 갈 수는 없다고 아베 총리를 설득하는 것이다.
 
이 총리는 지난 5월 “정부 대책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사안에 대해 행정부가 나설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일본은 이를 핑계로 한국이 청구권협정 3조에 따른 협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해석하고 다음 단계인 중재요구로 더 나아갔다. 뒤이어 경제보복조치까지 질주했다. 이 총리는 이제 화법을 바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인 아베 총리로부터 그런 약속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이낙연 총리에 주어진 ‘불가능하지 않은’ 미션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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