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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정례 협의기구 구성” 비건 제안…김명길 “필요 없다”

중앙일보 2019.10.15 00:21 종합 1면 지면보기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5일 스웨덴에서 열린 북·미 협상에서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에게 “양국의 실무협상을 정례화하는 협의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김 대사는 이를 거부했다고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이 13일(현지시간) 밝혔다.  
 

북한 거부 뒤 “협상 결렬” 발표

소식통 “정례 협의기구 제안은
비건 창의적 아이디어 중 하나”

요미우리 “미, 영변+ α 요구하며
석탄·섬유 수출규제 유예 제안”

소식통들은 “지난해 5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가운데 북·미 관계와 평화 구축 및 완전한 비핵화 3개항의 진전 방안을 체계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명길 대사는 “협상을 위한 협상은 필요없다”며 거부했다. 스웨덴 북·미 협상에서 미국 측은 실무협의 정례화를 통한 비핵화 목표 설정과 이행 단계의 확정에 주력한 반면 북한 측은 협의 정례화에 앞서 북한의 기존 핵실험 및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에 상응하는 조치부터 먼저 내놓으라며 충돌했음을 보여준다.
 
워싱턴 소식통은 ‘협의 기구 정례화’와 관련해 “비건 대표가 스웨덴 협상 때 제안한 창의적인 아이디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협의 기구 정례화는 지난해 11월 비건 대표 제안으로 비핵화와 남북협력, 제재 이행 등을 한·미 간에 조율해 온 한·미 워킹그룹이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김명길 “천번 봐도 대화 무의미” 비건의 협상안 걷어차

 
비건. [AFP=연합뉴스]

비건. [AFP=연합뉴스]

한·미 워킹그룹처럼 정례 협의기구를 만들어 북한이 요구하는 관계 개선, 체제 보장과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를 동시에 진전시킬 로드맵을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협상하자는 뜻이다.
 
다른 소식통은 “정례 협의기구는 우선은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합의를 하기 위해 집중적인 협상이 필요하기 때문이지만,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 경우 양측이 서로 이행을 점검하고 검증할 수 있는 기구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싱가포르 합의 중 마지막 4항인 한국전 미군 유해 발굴·송환 문제는 미 국방부와 북한 인민군이 별도로 실무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소식통들은 비건 대표가 이번 실무협상에서 이른바 ‘새로운 계산법’과 관련해 김명길 대사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싱가포르 합의안 1·2항과 관련해 북·미 연락사무소 상호 설치와 종전선언, 인도적 지원과 교류 확대 등을 제시하고, 핵물질 생산을 동결하는 영변 및 ‘+α’를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신 북한이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조치에 상응하는 미국의 선제적 조치를 요구한 데 대해선 “논의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고 한다.
 
김명길. [연합뉴스]

김명길. [연합뉴스]

김명길 대사는 비건 대표의 협의기구 정례화 제안에 대해 미국의 시간끌기식 협상에는 응하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그가 당시 현지 북한대사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이 독선적이고 일방적이고 구태의연한 입장에 매달린다면 백번, 천번 마주 앉아도 대화가 의미가 없다”고 한 건 이 대목에 대한 입장이었다. 김명길 대사는 그러면서 “협상을 위한 협상을 하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미국에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협상을 위한 협상 거부’ 발언은 김명길 대사가 오후 협상을 마친 뒤 북한대사관에 돌아와 “미국이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 오지 않았다”며 준비된 결렬 선언을 읽으면서 나왔다.  
 
이날 김명길 대사의 결렬 선언은 평양의 훈령을 받은 후 내놓은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협상 정례화 기구 거부’ 발표 역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재가를 거쳐 등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미국이 제시한 창조적 아이디어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고 우라늄 농축 활동까지 중단하는 실질적인 조처를 할 경우 대북제재 가운데 석탄·섬유 수출 금지를 일시 유예하는 안이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이에 “조건이 너무 엄격하고 일방적”이라며 거부했다는 것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도 앞서 실무협상 사흘 전인 지난 2일 “트럼프 행정부가 영변 폐쇄와 우라늄 활동 종료의 대가로 유엔의 석탄·섬유 수출 금지 제재를 36개월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단 당시 미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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