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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레이건·클린턴까지…미국, 쿠르드족 100년간 8번 배신

중앙일보 2019.10.14 00:04 종합 14면 지면보기
쿠르드족이 통제하는 시리아 북부에 대한 터키의 공습이 시작된 지 나흘째인 12일(현지시간) 친터키 성향의 시리아 반군들이 터키 접경도시인 텔아비야드에서 무장한 채 이동하고 있다. 이날 터키 국방부는 시리아 내 쿠르드 요충지인 라스알아인 시를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쿠르드족이 통제하는 시리아 북부에 대한 터키의 공습이 시작된 지 나흘째인 12일(현지시간) 친터키 성향의 시리아 반군들이 터키 접경도시인 텔아비야드에서 무장한 채 이동하고 있다. 이날 터키 국방부는 시리아 내 쿠르드 요충지인 라스알아인 시를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일 시리아 동북부 주둔 미군을 철수하면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군 철수로 시리아 쿠르드족이 보호막을 잃고 이웃 터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2014년부터 미국에 협력해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물리치면서 1만1000명 이상이 희생된 혈맹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인 터키는 시리아와 자국의 쿠르드족이 서로 손잡고 독립국가를 세울까 우려해 9일 공격에 나섰다. 트럼프의 ‘배신’이 잔혹한 살육전을 부르고 있다.
 

트럼프, 혈맹 시리아 쿠르드 외면
미국, 봉기 부추기곤 탄압엔 침묵
키신저, 후세인 학살극 나몰라라
레이건, 화학무기 인종청소 방관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에 걸쳐 사는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이 지난 100년간 적어도 8차례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을 돕거나 믿다가 배신당했다고 미국 온라인 뉴스매체 ‘더 인터셉트’가 최근 보도했다. 미국이 이라크·시리아·테러조직 등에 대항하려고 쿠르드족을 이용했다가 상황이 바뀌자 이들에 대한 탄압·공격·학살을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이 보도를 뼈대로 그간 미국이 쿠르드족을 배신해온 과정을 알아본다.
 
첫 사건은 1920년대에 벌어졌다. 16세기 이래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속했던 쿠르드족은 19세기 후반 확산한 민족주의 영향으로 독립을 꿈꿨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편을 들었던 오스만 제국은 패전국이 됐고, 20년 8월 20일 승전국과 맺은 세브르 조약으로 상당수 영토를 포기했다. 쿠르드족이 많이 사는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라크)는 영국이, 시리아는 프랑스가 각각 차지했지만 아나톨리아 반도 동남부는 쿠르디스탄 건국을 위한 땅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수립한 터키 군부는 영국·미국 등 승전국과 재협상해 세브르 조약을 22년 로잔 조약으로 바꾸고 아나톨리아 동부를 다시 차지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19년 파리 강화회담에서 내세운 민족자결주의는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32년 영국이 세운 이라크 왕국은 58년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고 압둘카림 카심 장군이 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맡아 서방에 맞서며 철권통치를 했다. 미국은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중앙정부에 맞서게 했지만 63년 미국 지원을 받은 바트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카심을 제거하자 지원을 즉각 중단했다. 이라크 새 정부는 미국이 지원한 네이팜탄 등 군수물자를 쿠르드족 진압에 사용했다. 두 번째 배신이다.
  
도덕·신뢰 아닌 이익 중심 외교에 희생
 
트럼프. [신화통신=연합뉴스]

트럼프. [신화통신=연합뉴스]

세 번째는 70년대에 발생했다. 미국은 당시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군사정권이 친소련으로 돌아서자 이라크 쿠르드족을 다시 무장시켜 중앙정부에 맞서게 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행정부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당시 친미 국가였던 이란을 통해 국경 넘어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공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족이 중앙정부를 누르고 독립을 추진하면 자국의 쿠르드족도 동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란의 샤(군주)는 오히려 무기 공급을 중단하는 협정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맺었으며 미국은 이를 수수방관했다. 후세인은 그 직후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에 공격해 수천 명을 살해했다. 미국은 한때 동맹이던 쿠르드족의 절규에 귀를 막았다. 의회에서 이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키신저는 “은밀한 활동을 (도덕을 앞세운) 선교 활동과 혼동해선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네 번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발생했다. 이란-이라크 전쟁(80년 9월~88년 8월)이 한창이던 88년 3월 후세인의 이라크 정부는 이란 국경 근처 쿠르드 마을인 할라브자에 신경가스를 살포해 3200~5000명을 살해하고 7000~1만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레이건 행정부는 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반미정권이 들어선 이란을 견제하려고 국제사회가 금지한 화학무기로 인종학살을 저지른 이라크를 제재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원했다. ‘적의 적’인 후세인 정권이 흔들리면 이란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도왔는데 독립 대신 터키 공습 받아
 
다섯 번째는 90~91년 걸프전 당시 벌어졌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습했다. 당시 조지 H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 군대와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슬람 수니파 중심의 후세인 정권에 맞서온 남부 시아파와 북부 쿠르드족이 이에 호응해 봉기했다. 하지만 정작 이라크군이 진압에 나서자 미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여섯 번째는 90년대에 벌어졌다.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나토 동맹국인 터키에 무기를 지원했으며 터키가 이를 사용해 수만 명의 쿠르드족을 살해하고 수천 개의 마을을 불태우는 데도 가만히 있었다.
 
일곱 번째 사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7년 12월 벌어졌다. 이라크 쿠르드족 민병대인 페슈메르가(죽음에 맞서는 사람이라는 뜻)는 미국이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미국이 승리하고 후세인이 몰락하자 이들은 독립의 꿈에 부풀었다. 그러자 터키가 2007년 12월 국경을 넘어 쿠르드 지역을 폭격한 데 이어 지상군까지 투입했다. 이라크를 점령 중이던 미국이 승인한 폭격이었다.
 
이번에 트럼프 정권이 시리아에서 철군해 터키에 공격로를 열어준 것은 미국이 쿠르드족을 배반한 8번째이자 최신 사례다. 이처럼 미국은 지난 100년간 일관성 있게 쿠르드족을 배신해왔다. 독립을 얻기 위해 강대국의 힘을 빌리려 했던 쿠르드족의 비극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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