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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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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레이건·클린턴도 배신···쿠르드족, 美에 100년간 8번 당했다

중앙일보 2019.10.13 05:00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동북부 주둔 미군을 철수하면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시리아 쿠르드족이 미군에 협력해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물리친 혈맹이기 때문이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보호막이 사라지고 시리아 쿠르드족이 터키 공격 앞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터키와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손잡고 독립국가를 세울까봐 우려한 터키가 즉각 군대를 보내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하고 있다. 잔혹한 살육전이 벌어지고 피비린내 속에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트럼프의 ‘배신’이 전쟁과 학살을 불러왔다는 이야기다.    

1차대전 뒤 민족자결주의로 독립 국가 추진
영·미, 신생 터키공화국과 재협상해 백지화
석유 눈독, 아랍·쿠르드 묶어 이라크 건국
미, 이라크 독재·친소 정권 맞설 무기 주고
키신저, 후세인의 쿠르드족 학살엔 눈 감아
레이건, 독재자의 화학무기 인종학살 침묵
아버지 부시, 봉기 부추기곤 탄압 수수방관
터키, 클린턴 지원한 무기로 쿠르드 학살
아들 부시, 터키의 이라크 쿠르드 폭격 승인
트럼프, 혈맹 시리아 쿠르드에 대놓고 등돌려

쿠르드족 여성 민병대인 여성수호부대(YPJ) 소속 전투원. 중앙정부로부터 자치를 선언한 시리아 쿠르드족은 중동에선 드물게 남녀평등과 민주주의, 친환경을 추구한다. YPJ와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댜(YPG)는 시리아 파병 미군과 함께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IS) 격퇴에 기여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쿠르드족 여성 민병대인 여성수호부대(YPJ) 소속 전투원. 중앙정부로부터 자치를 선언한 시리아 쿠르드족은 중동에선 드물게 남녀평등과 민주주의, 친환경을 추구한다. YPJ와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댜(YPG)는 시리아 파병 미군과 함께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IS) 격퇴에 기여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3000만 넘는 쿠르드족 4개국에 걸쳐 살아   

쿠르드족은 어떤 민족인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BBC방송 등의 정보를 종합하면 이렇다. 전체 인구는 CIA 2015년 추정치로는 3000만 명이며, 프랑스 파리의 쿠르드 연구소의 2017년 추정치는 3640만~4560만 명이다. 쿠르드족은 인도·스리랑카·말레이시아 등에 거주하는 타밀족(7800만), 파키스탄의 신드족(4000만), 나이지리아 요류바족(3500만), 남아프리카공화국·레소토·짐바브웨·스와질랜드에 사는 줄루족(1215만), 파키스탄·인도·아프가니스탄에 사는 발루치족(1000만)과 함께 인구가 1000만이 넘는데도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민족의 하나다. 중세 아유브 왕조를 열어 중동 대부분을 지배하며 십자군과 싸워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 영웅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서양에는 살라딘으로 알려짐)도 현재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태어난 쿠르드족이다. 민족 영웅까지 있지만 독립국가는 없는 민족인 셈이다.      
터키,시리아, 이라크, 이란에 걸쳐 있는 쿠르드족 거주지역. [CIA 월드팩트북]

터키,시리아, 이라크, 이란에 걸쳐 있는 쿠르드족 거주지역. [CIA 월드팩트북]

쿠르디스탄으로 불리는 쿠르드족 밀집 거주지역은 터키(1430만~2000만)·이란(820만~1200만)· 이라크(560만~850만)·시리아(200만~360만)에 걸쳐 있다. 쿠르드족은 이 지역에 정착해 살지만, 거주지가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다 보니 유랑민족으로 오해를 받는다. 쿠르디스탄이 걸쳐 있는 4개국이 영토와 인구를 내놓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건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2017년 9월 25일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자치정부(KRG) 지역에서 분리·독립 찬반투표를 시행해 77.8%의 투표율에 91.8%의 찬성률로 마감했다. 하지만 쿠르드자치정부는 바그다드의 중앙정부와 협상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독일과 이스라엘 등 외국에도 200만 정도가 사는데 미국 거주자는 고작 1만5400명 정도여서 국제적 발언권이 약하다.  
지금의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태어난 쿠르드족으로 중세 중동에서 아유브 왕조(1171~1260년)을 열었던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1338~1193년)의 동상. 유럽에는 살라딘으로 알려진 그는 1187년 십자군이 88년간 점령했던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 세계의 영웅이다. 동상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성채 입구에 서 있는 이 동상은 시리아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가 1993년 건설했다. 아유브 왕조는 오늘날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라크 북부,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예멘에 걸친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지금의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태어난 쿠르드족으로 중세 중동에서 아유브 왕조(1171~1260년)을 열었던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1338~1193년)의 동상. 유럽에는 살라딘으로 알려진 그는 1187년 십자군이 88년간 점령했던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 세계의 영웅이다. 동상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성채 입구에 서 있는 이 동상은 시리아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가 1993년 건설했다. 아유브 왕조는 오늘날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라크 북부,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예멘에 걸친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100년간 미국에 8차례 배신당한 쿠르드족

이런 쿠르드족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강대국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특히 미국은 지난 100년간 쿠르드족을 최소한 8차례 배신했다고 미국 온라인 뉴스매체 ‘더 인터셉트’가 최근 보도했다. 여기에서 배신(Betray)이라는 용어는 쿠르드족을 사자의 입 안에 던져준 일, 쿠르드족에 대한 잔혹한 공격을 묵인한 침묵, 그리고 독립 가능성을 열었다가 이를 무산시킨 희망 고문을 모두 포함한다. 이 보도를 뼈대로 그간 미국이 쿠르드족을 배신해온 과정을 상세하게 알아본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자 북부 아르빌의 쿠르드족 남자들이 미국 국기인 성조기와 쿠르드족 깃발을 들고 진주하는 미군을 환영하고 있다. 성조기에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을 맡았던 할리우드 영화 '로키'의 사진이 그려져 있다.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구의 주도로 대한민국의 자이툰 부대가 2004~2008년 주둔한 인연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자 북부 아르빌의 쿠르드족 남자들이 미국 국기인 성조기와 쿠르드족 깃발을 들고 진주하는 미군을 환영하고 있다. 성조기에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을 맡았던 할리우드 영화 '로키'의 사진이 그려져 있다.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구의 주도로 대한민국의 자이툰 부대가 2004~2008년 주둔한 인연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차대전 뒤 쿠르디스탄 건국 희망 부풀어 

쿠르드족은 현재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에 걸쳐 살고 있다. 쿠르드족은 19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에 확산한 민족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독립을 추구했다. 당시는 오늘날 터키를 중심지로 하는 다민족 국가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편을 들었던 오스만 제국은 패전국이 되었다. 1920년 8월 20일 연합국과 맺은 세브르 조약에 따라 제국은 해체되었다. 터키가 아닌 영토는 모두 승전국이 점령했다. 지중해 동부의 중근동 지역은 오랫동안 눈독을 들이던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해 위임통치령으로 삼았다. 오늘날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은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으로, 오늘날 이라크인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 들어선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패전국인 오스만 퀴르크 제국을 상대로 1920년 맺은 세브르 조약의 결과 쿠르드족이 독립국가를 건설하도록 넘겨주기로 한 쿠르디스탄 영토(지도 오른쪽에 사선으로 그려진 부분).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이는 무효화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패전국인 오스만 퀴르크 제국을 상대로 1920년 맺은 세브르 조약의 결과 쿠르드족이 독립국가를 건설하도록 넘겨주기로 한 쿠르디스탄 영토(지도 오른쪽에 사선으로 그려진 부분).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이는 무효화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세브르 조약은 오스만에 가혹했지만, 쿠르드족에는 독립국가 건설의 희망을 안겼다. 오늘날 터키 영토의 상당 부분을 승전국에 넘겨주기로 했다. 이스탄불 주변의 유럽 영토인 동트라키아의 대부분, 아나톨리아 반도(오늘날 터키 본토에 해당) 서부의 스미르나(오늘날 이즈미르)를 그리스에 넘기기로 했다. 터키 동북부는 아르메니아에 할양하고, 동남부는 쿠르드 국가 건국을 위한 땅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더 많은 영토를 원한 그리스가 터키에 쳐들어갔다가 1922년 패전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터키 군부는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연합국과 재협상해 세브르 조약을 로잔 조약으로 바꾸었다. 로잔 조약은 서부의 동트라키아와 스미르나는 물론 아르메니아와 쿠르드족에게 주기로 했던 동부 영토도 터키에 돌려주기로 했다. 미국은 로잔 조약을 지지했다. 미국이 쿠르드족에게 상처를 준 첫 번째 사례다.    
지난 2017년 4월 29일 시리아 동북부 지역에서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YPG) 소속 지원 차량이 시리아 북부에서 작전을 펴는 미군을 따라가고 있다. YPG 깃발과 성조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EPA=연합뉴스]

지난 2017년 4월 29일 시리아 동북부 지역에서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YPG) 소속 지원 차량이 시리아 북부에서 작전을 펴는 미군을 따라가고 있다. YPG 깃발과 성조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EPA=연합뉴스]

 

쿠르디스탄 왕국·공화국 영국·터키가 해산  

쿠르드족은 영국이 위임 통치하던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라크) 중동부의 쿠르드족 거주지에 1922년 9월 쿠르디스탄 왕국을 세웠지만 1924년 7월 영국에 의해 무너졌다. 1927년 10월에는 터키 동부 지역에 아라라트 쿠르드 공화국을 선포했지만 1930년 9월 터키에 의해 재점령되고 나라는 사라졌다. 이웃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군은 터키를 압박할 수 있다고 여겨 이를 반겼지만, 쿠르드족보다 터키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는지 터키의 재점령을 방관했다.  
쿠르드족 여성 민볃대인 여성수호부대(YPJ) 군인들이 지난 3월 28일 시리아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인 카미시에서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축하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쿠르드족 여성 민볃대인 여성수호부대(YPJ) 군인들이 지난 3월 28일 시리아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인 카미시에서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축하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서방·독재 정권 대항했지만 배신당해

제2차 세계대전 뒤 강대국이 된 미국은 중동에서 영국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라크 내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공급해 그들을 무장시키고 이라크 중앙정부에 맞서도록 도왔다. 1932년 영국이 세웠던 이라크 왕국은 1958년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고 반영주의자 압둘카림 카심이 총리 겸 국방장관을 맡아 서방에 맞서며 독재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 지원은 1963년 이라크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바트당 군사쿠데타가 발생해 카심이 제거되자 즉각 중단됐다. 미국은 이라크의 새 정부에 네이팜탄 등 군수물자를 지원했으며 바트당 군사정권은 이를 쿠르드족에 사용했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왼쪽)이 지난 1월 9일 이라크 내 쿠르드족 자치지역 주도인 아브릴에서 쿠르디스탄 민주당 지도자인 마수드 바르자니를 만나고 있다. 바르자니는 2017년 쿠르드 독립 국민투표를 해서 통과시켜지만 중앙정부와 협상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왼쪽)이 지난 1월 9일 이라크 내 쿠르드족 자치지역 주도인 아브릴에서 쿠르디스탄 민주당 지도자인 마수드 바르자니를 만나고 있다. 바르자니는 2017년 쿠르드 독립 국민투표를 해서 통과시켜지만 중앙정부와 협상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친소정권에 맞서게 하곤 보복학살 방관  

세 번째 배신은 1970년대에 발생했다. 미국은 당시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군사정권이 친소정책을 펼치자 이라크 쿠르드족을 다시 무장시켜 중앙 정부에 맞서게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 행정부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당시엔 친미 국가였던 이란을 통해 국경을 맞댄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공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쿠르드족이 이란에도 상당수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을 맞댄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두면 독립을 추진하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이란 내 쿠르드족도 이란에서 분리해 쿠르드 국가 건설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란의 샤(군주)가 쿠르드족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하는 내용의 협정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맺는 것을 방관했다. 후세인은 협정에 서명한 직후 북부의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군대를 보내 쿠르드족 수천 명을 살해했다. 미국은 한때 미국의 동맹이던 쿠르드족의 절규에 귀를 닫았다. 의회에서 이 문제를 묻는 말에 키신저는 “은밀한 활동을 선교 활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1988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화학무기로 학살한 쿠르드족 1500명이 묻힌 할라브자의 공동묘지를 2003년 이곳을 점령한 미군 제25보병사단 소속 장교가 순찰하고 있다. [사진 미국 육군]

1988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화학무기로 학살한 쿠르드족 1500명이 묻힌 할라브자의 공동묘지를 2003년 이곳을 점령한 미군 제25보병사단 소속 장교가 순찰하고 있다. [사진 미국 육군]

레이건, 후세인 화학무기 학살 알고도 방치

4번째 배신은 1988년에 발생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정부는 국제사회가 금지하는 화학무기인 신경가스 살포를 포함해 잔혹한 방법으로 ‘인종학살’을 저질렀다.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을 절멸시키려고 했던 것처럼 쿠르드족을 말살하려는 시도였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88년 3월 이라크군이 이란 국경에 가까운 쿠르드족 마을인 할라브자에서 독가스를 살포해 3200~5000명이 숨지고 7000~1만 명이 신체 손상이나 상처를 입은 사건이다. 당시 이라크는 이란-이라크 전쟁(1980년 9월~1988년 8월)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은 이란 견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라크를 지원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샤의 군주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와 이슬람 시아파 율법학자들의 감독체제가 결합한 신정 체제가 들어섰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지면서 이란발 반미 이슬람 혁명의 중동지역 확산이 주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후세인이 신경가스를 사용하는 것을 알고도 눈감았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비난받고 타격을 입는 것은 이란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쿠르드족은 다시 한번 미국에 배신당했다. 미국의 책임 있는 당국자 누구도 사담 후세인의 쿠르드족에 대한 인종 학살을 비난하지 않았다.    

쿠르드족 깃발. 가운데가 '쿠르드의 태양'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쿠르드족 깃발. 가운데가 '쿠르드의 태양'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반후세인 봉기 부추겨 놓고는 보호는 나 몰라라

5번째는 1990~1991년 걸프전 당시에 벌어졌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미국과 서방 국가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상당수 중동국가는 연합군을 조직해 이라크를 공습했다. 당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군대와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슬람 수니파 중심의 후세인 정권에 맞서던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와 북부의 쿠르드족이 이에 호응해 봉기했다. 하지만 이라크군이 시아파와 쿠르드족의 진압에 나섰는데도 미국은 방관했다.    
NYT의 베이루트 지국장 출신으로 국제전문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부시 대통령은 쿠르드족과 시아파 반란군은 물론 이라크의 민주화 운동가들도 지원하지 않았다”며 “후세인의 철권통치는 이라크뿐 아니라 이웃한 미국의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의 철권통치도 합리화해주었다”라고 설명했다. 프리드먼은 “미국은 이라크에 민간 정부가 아니라 군사 정권을 원했다”며 “미국이 원하던 최선의 시나리오는 후세인 아닌 다른 군사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여론이 악화하자 미국도 뭔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이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보호에 나서다 미국은 이를 지원했다.  
 
시리아 쿠르드족 민명대인 인민수호부대(YPG) 군인들이 지난 3월 28일 시리아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인 카미시에서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축하하는 군사 행진을 하고 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5년간의 전쟁에서 1만10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시리아 쿠르드족 민명대인 인민수호부대(YPG) 군인들이 지난 3월 28일 시리아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인 카미시에서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축하하는 군사 행진을 하고 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5년간의 전쟁에서 1만10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터키의 이라크 쿠르드 공격에 눈감았던 미국  

6번째 배신은 1990년대에 있었다. 당시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에는 쿠르드족에 대한 2가지 시선이 동시에 존재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미국의 적인 사담 후세인 정권의 박해를 받기 때문에 미국에 ‘좋은 쿠르드족’이었다. 하지만 터키 동부의 쿠르드족은 터키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분리를 원하면서 미국의 나토 동맹국인 터키를 성가시게 했기 때문에 ‘나쁜 쿠르드족’이었다. 미국은 터키에 엄청난 무기를 지원했으며, 터키는 이를 사용해 수만 명의 쿠르드족을 살해하고 수천 개의 마을을 불태웠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의 민병대인 페슈메르가 대원들의 모습, 지난 2016년 11월 7일 이라크 북부 대도시 모술에서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세력을 몰아낸 직후의 모습이다. 이라크의 페슈메르가는 시리아의 인민부대(YPG), 여성수호부대(YPJ)와 함께 미국의 IS 소탕작전에 기여했다. [AP=연합뉴스]

이라크의 쿠르드족의 민병대인 페슈메르가 대원들의 모습, 지난 2016년 11월 7일 이라크 북부 대도시 모술에서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세력을 몰아낸 직후의 모습이다. 이라크의 페슈메르가는 시리아의 인민부대(YPG), 여성수호부대(YPJ)와 함께 미국의 IS 소탕작전에 기여했다. [AP=연합뉴스]

 

2003년 이라크전, 2014년 IS 대항전 참전 

7번째 배신은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동안에 이뤄졌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이 조직한 군대인 페슈메르가(죽음에 맞서는 사람이라는 뜻)는 미국의 편에서 사람 후세인의 이라크군에 맞섰다. 전쟁이 미국 측의 승리로 끝나고 사람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자 이라크 내 쿠르드족 자치지역의 주민들은 독립의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2007년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건설을 우려한 터키는 이라크 내 쿠르드족 지역을 폭격했다.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던 미국은 이를 승인했다. 
 
터키 동부와 아르메니아 서부에 걸쳐 있는 아라라트산.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가 끝나면서 도착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 모두가 신성하게 여기는 산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터키 동부와 아르메니아 서부에 걸쳐 있는 아라라트산.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가 끝나면서 도착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 모두가 신성하게 여기는 산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친구 아닌 산을 벗하라'라는 쿠르드 속담  

이처럼 미국은 지난 100년간 일관성 있게 쿠르드족을 배신해왔다. 이번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시리아 철군은 미국이 쿠르드족을 배반한 8번째이자 최신 사례다. 쿠르드족의 속담에 “친구가 아니라 산을 벗하라”라는 말이 있다. 배반의 역사 속에 살아왔던 쿠르드족의 역사와 지혜가 녹아든 속담이다. 누가 쿠르드족에게 이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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