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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노규태 역을 맡은 오정세. 차기 군수를 노리는 야심가다. [사진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노규태 역을 맡은 오정세. 차기 군수를 노리는 야심가다. [사진 KBS]

“나는 사장님 존경하는데.”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향미(손담비)의 한 마디에 노규태(오정세)는 사르르 녹아내린다. 옹산 바닥에서 혼자만 고급 양주를 시켜먹을 수 있는 재력가에 차기 옹산군수를 꿈꾸며 부지런히 마을 대소사를 쫓아다니는 야심가지만 평소 ‘존경’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받아본 적 없는 탓이다. 집에서는 잘난 변호사 아내(염혜란)에 눌려 기도 못 펴고, 밖에서는 술집 카멜리아 사장인 동백(공효진)이에게 무시당하는 서글픈 신세다. 그런데 카멜리아 알바생 향미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니 마음을 뺏길 수밖에.

[민경원의 심스틸러]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노규태
차기 군수 꿈꾸지만 현실은 ‘노땅콩’
‘극한직업’ 테드창 잇는 코믹 캐릭터
악역까지 못하는 것 없는 미드필더

 
하지만 사람 팔자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 마을 내 노규태가 활개 칠 수 있는 ‘노규태존’은 점점 좁아지고, 노규태는 발을 디딜 수 없는 ‘노(No)규태존’은 점점 넓어진다. 덴마크로 탈출을 꿈꾸며 1억을 모으고 있는 향미에게 코가 꿰여 눈에 띄기만 하면 모텔비도 내주고 비행기 표도 대줘야 하는 ‘현금인출기’ 신세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오고 간 것은 아이크림과 수상스키 티켓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혼전문변호사인 아내에게 바람 피운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으니 안 그래도 작은 마음이 더욱 쪼그라들고 있는 상황이다.  
 
극 중 노규태(오정세)는 카멜리아에서 유일하게 양주를 시켜먹는 VIP지만 공짜 안주를 요구하는 진상 손님으로 사장인 동백(공효진)과는 앙숙이 되어간다. [사진 KBS]

극 중 노규태(오정세)는 카멜리아에서 유일하게 양주를 시켜먹는 VIP지만 공짜 안주를 요구하는 진상 손님으로 사장인 동백(공효진)과는 앙숙이 되어간다. [사진 KBS]

극 중 노규태의 입지와 달리 연기 판에서 오정세(42)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가 얼마나 다채로운 얼굴을 지니고 있는지를 매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옹산 투박이 순경 황용식(강하늘)이 연쇄살인범 ‘까불이’로 노규태를 의심할 때면 “설마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젓다가도 그의 미심쩍은 행적이 드러날 때마다 “설마 진짜 까불이 아니냐”며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게 된다.  
 
지난달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차영훈 PD는 ‘동백꽃 필 무렵’을 축구로 치면 4-4-2 포메이션으로 비유했다. “넷 만큼의 멜로, 넷 만큼의 휴머니즘, 둘 만큼의 스릴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옹산 FC의 미드필더는 단연 오정세가 아닐까. 그는 멜로ㆍ휴머니즘ㆍ스릴러에 모두 지분이 있을뿐더러 이 드라마에서 가장 공수전환이 빠른 인물이니 말이다. 한순간에 멜로를 코믹으로 만들고, 코믹을 스릴러로 전환하는 것은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네이버TV에 올라온 메이킹 영상을 보면 동료들의 고백도 쏟아진다. 촬영 도중 애드립을 쏟아내는 오정세의 모습을 보며 한 스태프가 “실생활이랑 연기가 별로 차이가 없다”며 칭찬하자 강하늘은 “그게 진짜 최고의 연기다. 연기를 잘 한다는 말도 안 나오는 경지”라고 맞장구친다. 그가 순발력이 뛰어나서일까. 아니다. 쉴 새 없이 캐릭터를 분석하며 철저하게 준비한 덕분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안면인식장애와 무대와 카메라 공포증이 있음을 고백한 그는 “순간의 감정으로만 연기하기엔 겁이 나서” 먼저 준비하는 쪽이다.
 
올 초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에서 테드 창 역을 맡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올 초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에서 테드 창 역을 맡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덕분에 등장하는 신이 많지 않아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올 초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의 주인공인 마약반 형사들의 극 중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마약계 거물 이무배 역할을 맡은 신하균의 라이벌로 등장한 테드 창은 모두가 기억한다. 노란색 선글라스에 헤어밴드, 화려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시선을 끈 그는 이내 창식이에서 테드 창이 된 얼토당토않은 사연으로 관객들의 마음마저 사로잡는다. 마치 동남아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법한 핍진성이 그가 빠르게 보는 이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나왔다 하면 웃음을 유발하는 덕에 ‘코믹 전문 배우’로 오인당하기도 하지만 실은 스릴러에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하는 ‘악역 장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OCN 드라마 ‘미스트리스’를 본 시청자라면 그의 사람 좋은 웃음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기억할 터. 극 중 치밀하게 보험사기를 계획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 ‘조작된 도시’(2017)에서 선보인 악역 민천상과도 결이 다르다. 전자가 생활감이 물씬 묻어나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거세된 감정을 한순간에 폭발시킨다. 두 작품 모두 그가 배우로서 가진 잠재력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엿보기에 충분하다.  
 
2017년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인상깊은 악역 연기를 선보인 오정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2017년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인상깊은 악역 연기를 선보인 오정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2001년 영화 ‘수취인불명’으로 데뷔 이후 지난 20여년 가까이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는 충분히 존경스럽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조작된 도시’도, 첫 주연작 ‘남자사용설명서’(2013)에서도, 그에게 처음부터 주인공 역할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놓치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해냈다. 배우에게 역할의 크고 작음은 없을지언정 ‘맞는’ 역할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다작 비결을 묻는 말에 우스갯소리로 “(출연료가) 싸니까”라고 답한 적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들 ‘존경심’에 오정세라는 배우를 모셔가지 않을까. 존경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며 어떤 역이든 찰떡같이 소화할 것임을 알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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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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