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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때 치매 아저씨 집 찾아줘…그리고 26년 만에 데자뷔

중앙일보 2019.10.12 07:00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35)  

중학교 때가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오래 전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였다. [중앙포토]

중학교 때가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오래 전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였다. [중앙포토]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 도덕 과목을 가르치는 여자 선생님이 있었다. 남학생만 득실거리는 중학교에 여자 선생님 숫자는 몹시 적었다. 게다가 이 여선생님은 미혼일뿐더러 수업 시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해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한참 기온이 떨어진 겨울 아침이었다. 교실에 들어선 도덕 선생님은 수업보다 목격담을 먼저 털어놓았다. 어제 퇴근길에서 한 노숙자를 보았다는 것이다. 추위에 몹시 떨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그냥 지나가는 와중에 한 여학생이 노숙자 앞에 쭈그리고 앉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가 끼고 있던 벙어리 털장갑을 벗어 온통 손이 더러워져 있는 노숙자에게 천천히 끼워주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숙자에게 이번에는 여학생 본인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도 벗어서 노숙자의 목에 직접 둘러주었다. 노숙자가 “나에게 이렇게 다 주면 너는 어떻게 해?”라고 묻자 “저는 괜찮아요. 집에 가면 또 있어요”라며 조용히 일어나 다시 갈 길을 가더라는 것이다.
 
장갑과 목도리를 주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의 돈을 적선하기는 더 쉽다. 그러나 여학생이 사람의 이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숙자에게 장갑을 끼워주고 목도리를 벗어 둘러준다는 것은 적지 않은 용기이다. “선행에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생각지 않는 용기가 더 중요할 수 있다”며 도덕 선생님은 목격담을 마쳤다.
 

버스 안에서 만난 50대 치매 아저씨 

우리는 모두 선생님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나의 마음을 더 설레게 했던 것은 그 여학생이 눈매가 선하고 예뻤다는 것이다. ‘얼굴도 예쁜데 저렇게 마음씨마저 착한 여학생이라니, 언젠가 우연이라도 한번 만나 보았으면….’
 
도덕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벙어리장갑과 목도리를 두른 여학생이 지나가면 한 번씩 더 쳐다보았다. 그러던 중 학교 도서관에 머물다 느지막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를 탔는데 내 옆에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버스를 타기 전 집을 찾아 헤매느라 여기저기 넘어졌는지 옷이 지저분했고 얼굴에도 진흙이 묻어 있었다. 옆에 바짝 같이 서 있기가 좀 부담이 갈 정도였다.
 
버스에서 한 아저씨가 비틀거리시는 걸 본 적이 있다. 아버지냐고 묻는 사람에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왜인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앙포토]

버스에서 한 아저씨가 비틀거리시는 걸 본 적이 있다. 아버지냐고 묻는 사람에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왜인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앙포토]

 
버스가 정지할 때마다 아저씨가 중심을 못 잡고 위태롭게 흔들리더니 급기야 넘어졌다. 마침 내가 가까이 있었던 터라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승객이 “아버지 되시니? 잘 돌봐드려야겠다”라고 하자 나는 창피한 마음에 “아니요. 저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저도 잘 모르는 아저씨예요”라고 조그맣게 대답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는데 왜 그렇게 옆에 서 있던 아저씨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며칠 전 장갑과 목도리를 벗어주었다는 여학생도 생각났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내 옆의 아저씨가 중심을 잡지 못해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넘어질까 싶어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누가 보면 영락없이 서로 아는 사람처럼 되었다. 새로운 승객이 올라탔는데 손을 꽉 쥐고 있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신 모양이구나. 착한 아들이네”라며 말을 건넸다. 이번에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몇 정거장을 가는 동안 어찌어찌 말을 시켜 아저씨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같이 내렸다. 아예 집까지 바래다줄 작정이었다. 아저씨에게 차근차근 집 가는 길을 물어보고 손을 잡고 부축해 주느라 삼십 분이 넘게 걸려 집에 도착했다. 둘이서 걸어가는 동안 횡설수설하던 아저씨가 나에게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답하자 이제 겨우 중 3인 나에게 “그럼 우리 집에 와서 우리 딸하고 같이 살자”는 황당한 말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였다. 놀란 식구들이 모두 현관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마도 아저씨를 많이 찾았던 모양이다. 아저씨의 부인인 중년 여성 뒤로 딸인 여학생과 오빠로 보이는 아들이 서 있었다. 식구들이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동안 아저씨는 다짜고짜 내 팔을 잡고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고 떼를 쓰면서 자기 딸의 이름을 불렀다. 나를 데릴사위로 삼고 싶었던 것 같다. 당황스러운 와중에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눈매가 선하고 예쁘장했다.
 
나의 아버지는 15년 전 급성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15년 전 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나이로도 돌아가시기에는 아직 이른 73세였다. 돌아가시기 전에 1년이 넘게 치매로 고생했다. 한 번은 집을 나가 찾을 수가 없어 난리가 났다. 아침부터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찾아 식구들이 온 동네를 뒤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녁때가 되어 모두 낙심해 경찰서에 치매 노인 실종 신고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났다. 

 

치매 아버지를 집에 데려다준 중년 여성  

현관 밖으로 나가보니 나와 나이가 비슷한 어느 중년 여성이 아버지 팔을 부축하고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여러 번 넘어졌는지 옷에 흙이 많이 묻어 있었고 얼굴에도 넘어진 흔적이 역력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치매가 분명한 노인이 버스 안에서 초등학교에 등교해야 한다고 횡설수설하고 있어 차근차근 말을 걸어 주소를 알아내 모시고 왔다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와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라는 청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돌아서는 중년 여자의 얼굴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선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왠지 낯설지 않았다. 인생은 베푼 대로 거두게 되는 것 같다. 중3 때 치매 아저씨를 집에 데려다준 후 26년이 지나 누군가 치매에 걸린 나의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다준 것처럼 말이다.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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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세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대표 필진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 10여년 전 치매에 걸린 부친을 어디에 모셔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시기를 놓친 경험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연로해지는 부모님이 어느날 집에서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때가 온다. 향후 똑같은 상황이 되는 베이비부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집 이외의 대안에는 무엇이 있고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부양, 돌봄에 관한 대안을 상황별로 소개해 독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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