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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 살상, IS 재창궐, 난민…트럼프 ‘배신’의 후폭풍

중앙선데이 2019.10.12 00:29 656호 6면 지면보기

[최익재의 글로벌 이슈 되짚기]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 이후

지난 10일(현지시간) 터키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국경 도시 탈 아비아드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터키군은 이날 장벽 너머 시리아 지역에 박격포 공격을 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터키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국경 도시 탈 아비아드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터키군은 이날 장벽 너머 시리아 지역에 박격포 공격을 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이익을 얻기보다 미국은 외톨이(America Alone)가 될 것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을 적극 도왔던 쿠르드족을 배신하는 행태를 보고 동맹국들이 어떻게 미국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터키군, 쿠르드 마을 10여곳 장악
민간인 희생자 늘어 7만명 피란길
대규모 난민 발생 땐 유럽도 타격

“미군 적극 도와준 쿠르드족 배신”
미 공화당 인사들도 트럼프 비난

앵거스 킹 미 상원의원은 지난 9일(현지시간) CNN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에 대해 이렇게 비난했다. 그의 말처럼 트럼프의 독불장군식 정책 결정으로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중동 정세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11일 외신들에 따르면 시리아 국경을 넘은 터키군과 쿠르드 민병대 간 교전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은 “터키군이 전개하고 있는 ‘평화의 샘’ 작전을 통해 쿠르드 대원 228명을 사살 또는 생포해 무력화시켰다”고 보도했다. 쿠르드족 인민수비대(YPG)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은 BBC에 “터키군 22명을 제거했다. 터키군 공습 등으로 민간인 9명도 숨졌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11일 현재 터키군은 쿠르드 마을 10곳 이상을 장악했다. 터키 공군기와 지상군의 공격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7만 명 이상의 쿠르드 주민이 피란길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AP=연합뉴스]

국제사회는 중동의 새로운 화약고로 떠오른 이번 사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리아 내전 수습 과정에서 미군 철수 결정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자칫 중동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유럽연합(EU)·이란·이라크·터키·쿠르드족 등 중동 정치의 핵심 플레이어 대부분이 직접 관여돼 있다.
 
특히 터키 공격의 타깃인 쿠르드족은 터키·시리아·이란·이라크 등에 4000여만 명이 흩어져 살면서 독립국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비운의 민족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국가(IS) 격퇴에 나선 미군을 적극 도운 이유도 향후 독립국가 건설에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터키 정부에겐 미군의 무기와 자금 지원 속에 갈수록 강해지는 시리아 내 쿠르드 세력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1500만 명이나 되는 자국 내 쿠르드인들과 연계해 독립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터키군이 각국의 비난에도 불구, 시리아 국경을 넘으면서까지 쿠르드족을 공격한 이유다.
 
국제사회는 터키의 군사 행동을 일제히 비난하면서 빠른 사태 수습에 나서는 분위기다. 이번 사태가 몰고올 후폭풍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터키군의 공격에 따른 막대한 인명 피해 가능성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터키는 두 번째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쿠르드족의 군사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쿠르드 민병대뿐 아니라 민간인의 대량 희생도 우려되고 있다.
 
둘째는 IS 세력의 부활이다. 1만7000명 이상의 IS 대원들은 현재 쿠르드 민병대가 관할하는 국경지대 구금 시설에 수용돼 있다. 터키군의 공격으로 쿠르드족이 통제권을 상실해 이들이 풀려날 경우 시리아 북동부는 또다시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셋째는 대규모 난민의 발생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이 이번 군사작전을 침략으로 규정한다면 터키에 있는 36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유럽으로 보낼 것”이라며 엄포를 놨다. 그만큼 유럽에서 난민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이번 사태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경우 그 여파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시리아 내 미군 철수가 가져올 공백에 따른 지역 내 역학관계 변화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던 러시아와 이란이 중동에서 크게 득세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미 공화당 주요 인사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족을 버린 것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중동의 이스라엘은 물론 독일·일본·한국 등 유럽과 아시아의 미 동맹국들도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런 역학 구조 속에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통해 국제적 비난을 헤쳐나가겠다는 속셈이다. 중동의 강국인 터키와의 대립을 꺼리는 미·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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