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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스런 제주 여성 책읽기로 유혹했죠”

중앙선데이 2019.10.12 00:20 656호 21면 지면보기

책읽는 사람들 

제주시 오라동의 주부 독서 모임을 12년째 이끄는 문명숙 회장. ’책을 읽으면 잡념이 없어진다“고 했다. 전민규 기지

제주시 오라동의 주부 독서 모임을 12년째 이끄는 문명숙 회장. ’책을 읽으면 잡념이 없어진다“고 했다. 전민규 기지

지난 8일 낮, 제주 공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공설로 마을회관 건물. 2·3층 재단장 공사가 한창이다. 20, 30년 묵은 낡은 책, 탈탈거리는 선풍기가 장식하던 새마을도서관이 북카페를 곁들인 깔끔한 활동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생기 있는 눈빛으로 작업과정을 지켜보던 주부 문명숙(59)씨.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실제로도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라 주부 모임 문명숙 회장
2008년부터 독서, 책읽기 봉사
도내 백일장 열어 문집도 제작

문씨는 제주시의 명물이라면 명물인 ‘오라책읽는주부들의모임’의 만년 회장이다. 2008년 결성 때부터 지금까지 모임을 이끌고 있다. 이달 말 끝나는 공사는 이 모임을 위한 것이다. 책마을 조성·지원 사업.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제주시가 3억원 가까운 돈을 들여 독서 동아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돌·바람·여자가 많다는 제주. 건조한 지원사업이, 여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제주를 만나 역설적인 활기를 띠고 있다. 남성들보다 생활력 강하기로 소문난 제주 여성들의 힘이 빛나는 현장이다.
 
문씨는 부산 태생이다. 결혼하며 제주로 건너왔다. 손에서 책이 떨어지는 일이 없게 하자.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책을 읽던 시기도 있었지만 결코 독서광은 아니었다고 했다. 책의 메시지나 전체적인 내용보다 문장에 끌리는 편이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그 책은 끝까지 읽었다.
 
오라동 주민자치위원으로 동지(洞誌)를 만들다가 덜컥 주부 독서모임을 이끌게 됐다. 2008년 제주의 33개 읍·면·동마다 하나씩 독서 모임이 만들어져 독서 분위기를 띄울 때다. 대부분 한두 해 만에 사라지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문씨가 이끄는 모임이 유일하다. 모임 이름은 물론 행정동 이름인 오라동에서 따왔다.
 
비결을 묻자 문씨, 아니 문 회장,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어떻게 보면 리더의 관심이죠. 독서에 대한 관심과 이웃에 대한 관심 말이에요.”
 
“제주도 주부들이 진짜 먹고 살기 바빠 타고난 재능들이 있는데도 이쪽에 정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런 게 참 안타까웠고, 그래서 그분들 능력을 좀 끄집어내자, 그렇게 시작한 게 독서토론이고 글쓰기였죠. 그러다 보니 등단하는 분도 생기고, 아이들 방과 후 독서지도를 나가는 분도 있고요.”
 
문씨는 모임 회원들에게 몇 차례 원고를 청탁했다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말 잘하고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어 보이는데 하나같이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하더라는 것. 독서토론뿐 아니라 서너 달짜리 시창작 교실, 글쓰기 교실을 도입한 이유다.
 
모임은 자족적인 독서에 그치지 않는다. 해마다 제주도 전역의 초·중·고생과 주부를 대상으로 백일장을 열어 입상작 문집(『오라의 꿈』, 올 초 열한 권째를 냈다)을 발간하고, 1년에 200차례 이상 지역아동센터·장애인 시설 등에 책 읽어주기 봉사를 나간다. 전체 회원은 현재 33명.
 
독서의 좋은 점을 묻자 문씨는 “잡념이 없어진다”고 했다. 또 같은 책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젊어서 읽은 『어린 왕자』의 감동이 나이 들어 읽을 때 다르고, 지금 읽으면 또 다르다는 얘기다. 그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독서 모임 활동을 한다는 얘기였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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