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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으로 급서 문덕호 대사 '순직' 여부, 다음달 결정

중앙일보 2019.10.11 13:40
지난 4월 임지에서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문덕호 전 주핀란드 대사의 순직 여부가 11월 인사혁신처 공무원 재해보상 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사무직 공무원’의 경우 업무 중 백혈병으로 사망해도 순직으로 인정받기 힘든 전례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외교가에서 나온다.

건강하게 부임 5개월 만에 사망

문 전 대사는 지난해 11월 주핀란드 대사로 부임했다. 당시만 해도 건강했다. 하지만 올 2월 들어 독감 등 증세를 보였고, 4월 22일 병원에 입원했지만,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8일 뒤인 4월 30일 사망했다. 핀란드에는 6월 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 또 국내 인사들의 방문, 주변국 출장 등의 일정이 겹쳐 사망 직전까지 해당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문 전 대사를 아는 외교관들은 말한다.

사무직 공무원은 희귀병 발병해도
업무 연관성 인정 전례 드물어
"격무중 쓰러졌는데..." 외교가 우려

문덕호 주핀란드 대사. [연합뉴스]

문덕호 주핀란드 대사. [연합뉴스]

조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 것도 급서의 원인이 됐다. 문 전 대사는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을 때 현지 병원을 두 차례 내원했지만, 의사가 내린 진단은 축농증. 문 전 대사는 금세 나을 줄 알고 돌아가 다시 임무에 열중했다고 한다. 핀란드의 겨울철 일조량 급감과 기온 하강 등은 비타민 D 부족과 독감 등으로 이어지기 쉽고, 이는 급성 백혈병의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병원 갔더니 첫 진단 ‘축농증’

의료비 부담도 문 전 대사가 적극적 진료를 받지 못한 원인이 됐다. 외교관들에 대한 의료 서비스 비용 지원에 따라 재외공관은 ‘의료보험 공관’과 ‘실의료비 공관’으로 나뉘는데, 핀란드는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의료비 공관이었다. 문 전 대사가 마지막 8일 동안 입원했을 때 든 병원비만 8만 유로(약 1억 471만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문덕호 주핀란드대사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문덕호 주핀란드대사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희귀 암이나 백혈병 등 특수질병으로 사망 때는 순직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발병과 업무 간 연관성을 공무원 당사자 측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직 공무원 백혈병 ‘순직’ 인정 드물어

실제 지난 2014년 고 김범석 소방관(당시 31세)이 혈관육종암으로 숨졌을 때도 공무원연금공단은 유족의 순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김 소방관이 8년간 화재 현장을 누빈 뒤 갑자기 희귀 암이 발병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이 최근에야 김 소방관의 순직을 인정했다.  
고 김범석 소방관. [중앙 포토]

고 김범석 소방관. [중앙 포토]

사무직 공무원은 상황이 더 어렵다. 사무직으로 일하다 백혈병 등으로 숨졌을 때 순직이 인정된 사례 자체가 통계적으로 많지 않다는 게 인사혁신처의 설명이다. 외교관은 기본적으로 모두 사무직인 만큼 해외에서 치명적인 급성 질환이나 특수질병에 걸려도 공상이나 순직으로 인정받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헌 기계적 해석에만 의존 곤란”

문 전 대사의 순직 인정 여부는 의사, 변호사, 전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공무원재해보상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순직 인정은 공무와 인과 관계가 있는지가 중요하고, 선례와 근무환경 등 업무 특수성을 고려해 판단하게 된다”고 원칙을 설명했다. 순직으로 인정받으면 유족은 ‘순직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 공무상 재해 판정은 엄격해야 하지만 조문의 기계적 해석에만 의존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로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에게 국가보훈처가 처음 전상이 아닌 공상 판정을 내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보훈처 측은 “문헌적으로 법률을 해석한 결과”라고 주장했지만, 문 대통령이 재검토를 특별지시하고 비판 여론이 일자 전상을 인정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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