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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용의 한반도평화워치] 한·일 정상, 지금이 역사적 결단 내릴 절호의 기회다

중앙일보 2019.10.11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한·일 갈등 해결책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금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대의 위기다. 위기의 원인으로는 중국의 부상, 대국 내셔널리즘, 냉전 후 국제 정치의 구조적 변화와 한·미·일, 한·중·일, 남북한과 일본 등 3각 관계의 변화, 수평적 한·일 관계, 한·일 역사 쟁점의 연속성 등 다양한 요인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한·일 관계를 거시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시간 싸움으로 치닫는 한·일 갈등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느냐, 아니면 위기의 늪에 빠지느냐는 결국 최고 지도자의 결단에 달렸다.
 

‘징용 배상금 안받겠다’ 결단하면
도덕적 우위와 국가 자존심 확보
아베도 진정성 있는 역사반성으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가야

지금 한·일 간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강제 징용 피해자의 배상 문제다. 한국의 기본 입장은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으므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핵심 쟁점에 대한 법 해석에 매달리는 법률주의로는 접점을 찾기 어렵다. 양국은 협상 테이블에 올릴만한 제안들을 각각 내놨으나 서로 거부해버렸다. 한·일 정상 간 소통이 없는 상황에서 10월 22일 새 천황의 즉위식과 11월 22일 지소미아 파기 여부 결정 등 분수령이 될만한 시간이 닥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 운동 백 주년 기념사에서 “이웃 나라와의 외교에서 갈등 요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친일 잔재 청산도, 외교도 미래 지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할 것이다” “힘을 모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할 때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한·일 정상, 징용 문제 유연성 발휘해야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에 참석해 정상회담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중앙포토]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에 참석해 정상회담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중앙포토]

문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외교, 한반도 평화 협력, 마음이 통하는 친구로 일본을 생각한다면 지금이 통 큰 양보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가 먼저 일본을 상대로 강제 징용 피해자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결단이 된다. 우리의 도덕적 우위와 국가적 자존심도 견지할 수 있다. 이웃 중국에서도, 전임 노무현 정권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도 문 대통령의 피해자 중심의 진정성을 알고 있고 우리 국민도 피해자에 대한 대통령의 설명과 설득을 귀담아들을 것이다.
 
여기에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은 아베 정부의 진정성 있는 역사 반성이다. 이미 아베 정부의 국토교통 장관이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 준 한국을 ‘은인의 나라’라고 공언했고, 아베 총리도 역대 최장수 총리로서의 경륜에서 나올 수 있는 유연성을 기대해 볼 만하다.
 
우리 국민이 기억하는 일본 지도자들의 과거사 반성 사례는 다음과 같다. 1990년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통석(痛惜)의 염(念)’으로 반성을 했다. 그는 또 94년 김영삼 대통령 방일 때 한국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전해져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천황은 내가 주일대사로 재임 중이던 2001년에는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임을 확인해 주었다.
 
일본 정부 최초의 과거사 인정은 한국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한계는 있지만, 95년 무라야마 담화다. 사회당 위원장 출신인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다. 2010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한국 병합 100년 총리 담화에서 강압적인 병합으로 식민 지배의 깊은 상처를 준 데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일본 정부는 천황을 숭배하고 있으나, 천황은 헌법상 국정에 관한 권능이 없는 상징적 존재다. 따라서 과거사 반성은 국민의 의사로서 일본 정부가 하는 것이 마땅하다. 과거사 반성과 그에 대한 화해 협력을 확인하는 협정의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 선례가 98년 10월 도쿄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서명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다. 공동선언은 11개 항목의 핵심 내용과 43개 항목의 행동 계획으로 구성돼 있다.
  
민주평화·경제평화·문화평화의 한·일
 
김 대통령은 당시 일본 국민을 대표하는 중·참의원 600여명 앞에서 공동선언에 바탕을 둔 미래 비전을 정중히 설명했다. 김 대통령의 일본 국회 연설은 NHK 생중계로 일본 전역에 방송됐다. 공동선언과 일본 국회 연설문에는 역사와 외교, 국가 이익과 국민감정 등 지난한 쟁점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21세기 한·일 관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어떻게 장애 요인들을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뇌와 사려가 담겨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인권·민주주의·시장경제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두 나라 국민에 대한 신뢰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본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포함돼 있다.
 
공동선언과 일본 국회 연설 작성에 참여한 나는 한·일 평화와 번영을 위한 3가지 문제의식과 접근 방법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는 민주평화론이었다. 민주평화는 민주주의가 평화의 토대라는 관점이다. 정치체제가 민주적일수록 평화적이고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일본은 150년 넘게 민주주의를 학습한 선진 민주 국가이고 한국은 아시아에서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유일한 나라다. 아시아 28개 국가 중 한·일 두 나라의 평화와 번영에 가장 안성맞춤인 이론이 바로 민주평화론이다.
 
둘째는 경제평화론이었다. 경제적 상호 의존을 평화의 핵심 조건으로 보는 이론이다. 냉전 시대에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이데올로기의 공존이 아니라, 냉전 이후 평화 공존의 특징은 평화적인 경제 상호의존이다. 정치학에서는 민주평화와 경제평화의 철학적 뿌리가 칸트의 공화제 평화와 통상 평화에 있다고 본다.
 
셋째는 내가 70년대부터 주장해온 문화평화론이었다. 문화 교류가 왕성한 국가 간에는 갈등과 전쟁의 가능성이 작고 공공외교의 꽃인 문화 외교가 갈등을 푸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다. 다만 민족 문화가 강력한 정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국가 정체성이 과도하게 표출되는 경우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간의 지속적 문화 교류는 문화의 배타성과 폐쇄성을 스스로 거부하는 상호 학습(mutual learning)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향한 윈-윈의 시너지가 될 수 있다.
 
놀랍게도 현대사에서 문화국가의 지표로 평화문화를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김구 선생이다(『백범일지』). 21세기 출발점인 2000년은 유네스코가 평화문화(peace culture) 개념을 제시한 원년이기도 하다.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상호 공유는 앞으로 한·일 평화의 토대가 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드라마 연출해야
 
이런 점에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한 것은 경제평화론 측면에서 대단히 부적절한 선택이었다. 다행히 한·일은 상호 문화 교류로 화해와 협력을 이룩한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98년 두 나라가 반성과 화해를 상호 인정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80%에 달하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중문화를 한국 시장에 개방했다. 이는 한류의 출발점이 됐다.
 
98년 김·오부치 공동선언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아베 총리가 지난해 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한국 대표의 한 사람으로 현장에 있었던 내 기억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그때는 젊었고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너무 양보하는 것 같아 반대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도자의 결단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아베 총리는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내용으로 하는 평양선언 서명식에 참가했다. 그는 지금도 아무런 조건 없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공언한다.
 
이제 김·오부치 공동선언은 역사 문제에서 두 나라 정치권과 전문가 집단, 국민 대부분이 지지하는 협정으로 자리 잡았다. 만약 강제 징용 문제가 김·오부치 공동선언의 역사 반성과 화해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전후 세대인 두 정상의 새로운 공동선언을 만들어 낸다면 과거로 인한 위기를 미래를 위한 기회로 바꾸는 역사적 드라마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전 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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