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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홉스 맥주를 다 여기서? 시골 작은 양조장의 놀라운 경쟁력

중앙일보 2019.10.10 15:00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27)

국내에 120여개의 맥주 양조장(브루어리)이 생겨나면서 전국 어디에 가도 맥주가 발효되고 있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방에 일이 있을 때도 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해당 지역에 있는 맥주 양조장에 방문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양조장에 가면 가장 신선한 상태의 맥주를 맛볼 수 있다. 또 양조장의 분위기를 탐색하고 직원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회사가 가진 맥주에 대한 철학을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전국의 맥주 양조장은 규모나 구조가 모두 다르다. 투입된 자본, 만드는 맥주의 종류, 외부 유통 여부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국내 양조장들뿐 아니다. 전 세계 양조장들은 모두 저마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늘 아래 똑같은 양조장이 없다. 그래서 어떤 양조장에 가도 늘 새롭다.
 
최근 지방에 있는 두 맥주 양조장에 방문했다. 두 곳은 규모, 분위기 등에서 완전히 대조적이었지만 양쪽 모두 매력이 넘쳐났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이천 공장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이천 공장은 지난 4월 문을 열었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서울 성수동에서 공장을 개조한 브루펍(맥주 양조장+펍)으로 시작한 후 잠실, 송도, 건대 등으로 매장을 늘려왔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가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에 이어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독일의 명품 크로네스(KRONES) 장비를 들여놨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여러모로 이천 공장이 궁금해 브루어리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넘게 달려 이천 공장에 도착했다. 주변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고 아직 조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 위에 우뚝 맥주 공장이 서 있었다. 투어 프로그램은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에 대한 소개와 맥주의 재료, 양조 과정 설명으로 시작됐다.
 
설립 초기부터 맥주 ‘스타트업’을 표방했던 만큼 비전 역시 뚜렷했다. 2020년까지 케그 맥주 유통을 확대하고 2021년부터 병, 캔 생산을 늘려 2023년부터 해외로 진출한다는 그림이었다.
 
설명이 끝나고 공장 견학이 시작됐다. 규모가 상당했다. 연 500만 L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했다. 국내 수제맥주 업계에서 규모로 5~6위권에 들 것 같다. 성수동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가 생겼을 때 맥주 생산 장비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홈브루잉 장비보다 약간 큰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규모로 시작해 일부 맥주를 다른 양조장에서 만들기도 하다가 이제 멋진 양조장을 갖게 된 것이다.
 
이천 공장에서는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의 대표 맥주 6종을 생산해 케그에 담아 전국에 유통한다.
 
견학이 끝나고 하이라이트인 무제한 시음시간이 왔다. 안내를 해준 직원은 센스 있게도 15분 정도 일찍 설명을 마친다. 미국의 맥주 전문가 자격(Certified Cicerone)을 취득했다는 그 직원은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온몸으로 맥주에 대한 열정과 애사심을 뿜어냈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맥주(좌).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이천 공장 펍에서 바라본 풍경(우). [사진 황지혜]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맥주(좌).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이천 공장 펍에서 바라본 풍경(우). [사진 황지혜]

 
펍에서는 1시간 동안 맥주가 제공되고 안주는 별도 비용으로 주문할 수 있다. 제한 시간 안에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많이 마시기 위해 그동안 쌓은 맥주 음주 노하우를 총동원했다. 결과는 만족할 만했다. 과일 주스 같으면서도 쌉쌀한 맛도 강한 ‘첫사랑’이 가장 입에 잘 붙었다.
 
최근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공유 주방을 활용해 맥주와 음식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몇 년 전 배달 전문 매장을 열었다가 주류 배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주세법의 제도적 장벽에 막혀 접은 바 있다. 누군가는 용기있게 내디뎌야 할 걸음을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가 한 발씩 가고 있다.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 서산 공장

충남 서산의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는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와 규모, 운영방식 등에서 대조적인 곳이다. 지난 2016년 맥주 양조장을 열고 맥주를 만들어왔다. 현재 서울의 펍에도 일부 유통된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가 설립 이래 지속적으로 외형을 넓혀 갔다면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는 한 자리에서 브루펍(브루어리+펍)을 운영해왔다.
 
각각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서산에 와 영어를 가르치던 두 남자가 의기투합해 양조장을 만들었다. 그들의 행보에는 배우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어에 서툰 남편들을 도와 손님을 맞고 외부와 소통했다. 남편들은 맥주와 영어에 능통하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맥주 재료를 직접 수입해 원가를 절감하기도 했다.
 
벌초를 하러 지방에 내려간 길에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에 들르기로 했다. 새벽 같이 일어나 선산을 향하는 길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차례상에 절을 하고 나서도 의식적으로 음복을 자제했고 점심 먹으면서 술 권하는 작은아버지도 적당히 맞춰드렸다.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 외부 전경. [사진 황지혜]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 외부 전경. [사진 황지혜]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는 서산시 석남동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을 두 바퀴쯤 헤매다가 겨우 건물 1층의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를 찾았다. 생산 장비는 단출했다. 규모로 보면 전국 맥주 양조장 중 가장 작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서울에서 마셔본 칠홉스 맥주가 모두 여기서 탄생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양조 규모가 작다는 것은 여러 맥주를 실험적으로 생산해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메뉴판에는 자체 생산 맥주와 함께 다른 맥주 양조장들과 협력해 한정 수량으로 생산한 맥주도 눈에 띄었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에선 마케팅 담당 직원이 소개해줬던 것과 달리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에서는 부부가 함께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다른 일도 하고 있기 때문에 목,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에만 문을 연다. 칠홉스는 ‘호주식’ 수제맥주를 지향한다고 했다. 쨍하게 도드라지는 맛과 향보다는 모든 재료의 특성을 은은하게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오픈 시간 전부터 기다려 맥주를 포장해 가는 사람, 가족 단위로 방문하는 사람, 주인장 부부와 한없이 수다를 떠는 단골…. 작은 매장 안에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들락 거렸다.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 맥주. [사진 황지혜]

칠홉스 브루잉 컴퍼니 맥주. [사진 황지혜]

 
부부는 한정된 인력과 자본으로 양조장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확신에 찬 어조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쉬다, 놀다, 릴렉스하다’는 의미의 ‘칠 아웃(chill out)’을 양조장 이름에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큰 공장을 지어 세계를 지향하는 맥주도 자랑스럽지만, 작게 만들어 우리끼리 즐기는 맥주도 소중하다.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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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혜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필진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맥주는 짝으로 쌓아놓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맥주 덕후. 다양한 맥주를 많이 마시겠다는 사심으로 맥주 콘텐츠 기업 비플랫(Beplat)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 스타일, 한국의 수제맥주,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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