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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민심 안 읽는 대통령

중앙일보 2019.10.10 00:04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저잣거리의 뜬소문과 말, 가담(街談)과 항어(巷語)야말로 촌철살인의 민심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는 따로 패관(稗官)이라는 채집관을 뒀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는 “패관이 저잣거리의 가담항어를 모아 소설(小說)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이게 소설의 기원이다. 임금은 소설을 통해 민간의 풍속과 정사를 살폈다. 소설에는 시시콜콜한 염문 행각부터, 세리(稅吏)와 독한 정치(苛政)에 시달리다 젊은 목숨 끊은 규수의 사연은 물론, 임금님 원망까지 담겼다. 중문대사전은 “가담항어가 곧 여론”이라고 적고 있다. 구중궁궐 임금님에겐 그야말로 민심을 재는 척도였을 것이다.
 

골목 떠돌던 말이 분을 못 이기면
뭉쳐서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권력의 타워를 기어코 뒤집는다

골목을 떠돌던 말이 분을 못 이기면 뭉쳐서 광장으로 나온다. 한번 광장으로 나오면 기어코 세상을 바꾸고 권력의 타워를 뒤집는다. 니얼 퍼거슨은 이를 ‘네트워크의 광장과 위계의 타워간 권력 투쟁’(『광장과 타워』)으로 해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과 서초동의 맞불 집회를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직접민주주의의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도 했다. 국민이 둘로 갈려 극대극, 강대강 대치에 생업을 미룰 지경인데, 대통령의 인식이 이렇게 한가로워도 되나. 광장의 민심을 제대로 보고받았다면 이런 말이 나올 리 없다. 골목의 말을 낱낱이 채집해 올리는 이가 아무도 없음이 틀림없다. 청와대에 패관이 없거나 있어도 직무를 유기했다면, 대신 언론이 할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요즘 회자되는 몇 가지 대통령 유머로 가담과 항어를 전해 올린다.
 
첫째는 사자성어다. 역대 대통령 중 최다다. 평범한 것 몇 개만 추리면 이렇다. 동문서답:문 대통령이 동쪽을 가리키면 서쪽이 답이다. 전대미문:역사상 문 대통령 같은 이는 없었다. 두문불출:문 대통령 같은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와선 안 된다. 사자성어는 주로 대통령의 불통을 꼬집고 있다. 차마 지면에 못 옮길 것들도 꽤 된다.
 
둘째는 오래된 유머의 리메이크, ‘대통령과 밥솥’이다. 밥솥은 골목의 언어로 경제다. 2년 전까진 ‘이승만: 미국의 도움을 받아 큰 가마솥을 장만했다.’로 시작해 ‘박근혜:최순실이란 식모에게 밥솥을 통째로 맡겼다’에서 끝났다. 지난해부터 문 대통령이 추가됐다. 문재인:촛불로 밥을 지으며 기다리라 한다. 밥솥째 김정은에게 넘겨줄까 걱정이다.
 
‘밥솥’이 경제에 방점이 찍혔다면, ‘운전’은 통치력 평가다. 노무현 정부 때 등장한 유머 ‘대통령과 운전’의 초기 버전은 이랬다. ‘이승만:국제면허 운전, 박정희:모범 운전, 최규하:대리운전, 전두환:난폭운전, 노태우:초보, 김영삼:무면허, 김대중:음주운전, 노무현:역주행.’  
 
이 비유는 2012년 이후 크게 바뀐다. ‘이승만 초보, 박정희 과속, 최규하 대리, 전두환 난폭, 노태우 졸음, 김영삼 음주, 김대중 안전, 노무현 모범, 이명박 역주행, 박근혜 무면허.’ 모범 운전사가 박정희에서 노무현으로 뒤집히고, 음주 운전이던 DJ는 안전운전으로 바뀌었다. 보수 우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박해지고, 진보 좌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후해졌다. 우파의 실패로 골목 언어(SNS)의 헤게모니를 좌파가 차지한 결과다.
 
아직 문 대통령은 없다. 아마 곧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실패한다면, 역주행 운전이란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DJ와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도 덩달아 다시 폄훼될 것이다. 공정과 도덕은 진보의 핵심 가치다. 이런 가치를 잃은 진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나. 불공정과 파렴치의 상징 조국 장관을 끌어안고 성공을 바라는 건,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결과는 진보의 자폭이다. 보수가 길을 잃은 지금, 진보의 자폭은 곧 대한민국의 자폭으로 이어질 것이다. 부디 문 대통령은 자신이 서 있는 역사의 좌표, 진보의 좌표를 다시 확인하기 바란다. 광장으로 터져 나온 가담과 항어를 새겨들으시라. 그래서 역주행 대신 베스트 드라이버로 남으시라. 시작은 당연히 조국과의 결별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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