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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까짓 것 가지고” 봉사자가 버려야할 지나친 겸손

중앙일보 2019.10.09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33)

푸르메재단 걷기봉사모임인 한걸음의 사랑 걷기모임중 길 옆에 써 있는 슬로건. 작은 것이라도 함께함의 소중함을 얘기해준다. [사진 한익종]

푸르메재단 걷기봉사모임인 한걸음의 사랑 걷기모임중 길 옆에 써 있는 슬로건. 작은 것이라도 함께함의 소중함을 얘기해준다. [사진 한익종]

  
조금 겸연쩍기는 하지만 자양강장 음료 한 박스 들고 지역에 있는 파출소를 찾았다. 오래전부터 가끔 해 온 일이고, 스스로 어떤 의미 부여를 하고 하는 행위이긴 하지만 아직도 겸연쩍은 이유는 이것도 의미 있는 봉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일까?
 
어떻든 나는 가끔 파출소나 소방서, 환경미화원에게도 고마움을 전달하곤 한다. 그건 내가 봉사하고 있는 모 재단의 직원들에게 가끔 음식 대접을 하는 이유와도 통한다. 그 이유는 봉사와 희생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봉사도 의미 있는 봉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봉사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음을 확신시켜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음지에서 사회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며 사회에 빛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네 실정은 어떤가? 봉사, 희생이 수반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인 대우나 인정에서 소외되고 평가절하되는 사회다. 소위 돈 되고 빽 되는 일에 함몰돼 정작 사회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기까지 한다. 
 

중국이 초일류국가가 못 되는 이유

오래전 미국의 저명한 인류사회학자가 내게 들려준 얘기가 생각난다. 중국은 아무리 굴기를 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그 이유 중 하나가 빈부, 권력의 격차이며 그 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점점 비등해지기 때문이란다. 상대적으로 덜 가졌거나 권력과 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니 사회적 갈등이 심화함은 당연한 일이다.
 
덜 가진 축에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포함돼 있고 그들이 대우받지 못하는 한 중국은 초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우리네 현실과도 같으니 결국 우리가 아무리 경제적 부를 누린다 해도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얘기로 인식돼 씁쓸하기까지 하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이 소방관과 군인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우리네 현실과의 현격한 인식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봉사에는 직접봉사와 간접봉사가 있다. 나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경제적, 육체적 혜택을 공여하는 행위가 직접봉사라면, 기부행위는 대표적인 간접봉사다. 그 간접봉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일도 포함됨은 당연한 일이다.
 
간접봉사의 장점은 적은 희생과 노력으로 더 많은 행위를 유도하고 작은 힘을 합쳐 큰 것을 이뤄내는 데 있다. 우리에게는 십시일반의 자세, 두레, 향약, 품앗이라는 좋은 전통이 있다. 이런 풍습의 기반에는 여럿이 힘을 합치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사실 그런 마력을 발휘해 왔다. 마부작침이고 우보천리가 이루어져 왔었다. 그런데 그런 미풍양속이 급격한 경제발전과 부의 획득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로 인해 사라진 건 아닌지. 
 
푸르메재단이 펼치는 도네이션 369 캠페인 포스터의 일부. [사진 한익종]

푸르메재단이 펼치는 도네이션 369 캠페인 포스터의 일부. [사진 한익종]

 
얼마 전 푸르메재단의 한 직원이 ‘도네이션 369 캠페인’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너무 적은 액수의 기부캠페인이라고 수줍어하는 일이 있었다. 도네이션 369 캠페인은 첫 한해는 매달 3000원, 둘째 해에는 매달 6000원, 마지막 해에는 매달 9000원을 장애아동의 치료·재활에 기부하겠다는 약정을 맺고 이를 실천하는 프로그램이다. ‘에계~ 그까짓 거 한 달에 3000원 내는 거 가지고 무슨 생색이람?’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달을 보라고 했더니 내 손가락 끝만 쳐다보고 있더라”라고 한탄한 모 그룹의 총수가 떠오른다. 적은 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고, 작은 씨앗이 큰 나무를 이루는 이치를 모르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일확천금을 노리는 우리네 행태가 반영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푸르메재단의 그 직원에게 `네 시작은 비록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의 말씀을 인용해 칭찬과 격려를 한 생각이 난다.

 
우리는 얼마든지 이웃을 위해 적은 노력으로도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다. 엄청난 금액의 기부나 살신성인의 희생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봉사나 기부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뭘 이까짓 거 가지고 하는 필요 이상의 겸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과감하게 그런 생각을 버려라.
 
아무리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 내가 직접 하지 않더라도 그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격려해 보자. ‘뭘 겸연쩍게~’ 하면서 작은 실천이라도 해 보지 않는 것은 걸어 보지도 않고 쓰러질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같다. 비치코밍하면서 나 혼자, 또는 학생들과 함께 바닷가의 쓰레기를 줍는다고 ‘그까짓 거’ 했었던 마음을 버리고 나부터라도 하는 마음을 갖는 것과 같다. 
 

파급효과 큰 간접봉사  

해양 쓰레기를 줍는 행위가 비록 사소해 보이지만 나아가서는 버리는 행위를 줄이거나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자. 봉사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작은 봉사를 베푸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행동을 넘어 더 큰 봉사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내가 못한 것을 그들이 용기를 내어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까.
 
오래전 평창동의 한 노인이 환경미화원만 보면 불러서 음료수를 건네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결과? 상상해 보라. 다음번에는 주위의 양로원이나 복지관에 봉사 나온 이들과 점심이라도 한 끼 해야겠다. 불철주야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안녕을 담보하고 있는 소방대원들에게 음료수라도 사 들고 가야겠다. 
 
한익종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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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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