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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우크라이나 스캔들'…표정 관리중인 '승자' 푸틴

중앙일보 2019.10.09 05: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굴까.
 
언뜻 차기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적수로 거론되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흡족히 웃고 있을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놓칠 수 없는 푸틴, 절호의 기회 잡았나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 당시 조 바이든의 차남 헌터 바이든의 뒷조사를 요구했다는 내부 고발이 나오며 시작됐다. 헌터 바이든은 2014년부터 약 5년간 우크라이나 부리스마 홀딩스의 이사로 재직했다.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라이벌의 약점을 캐내달라고 외국 정상에게 부탁한 것이 된다. 현재 트럼프 탄핵 공방은 점점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달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정상회담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연합뉴스]

지난달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정상회담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연합뉴스]

이 상황이 왜 푸틴에게 유리한 것일까.
우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오래된 애증 관계부터 살펴봐야 한다.  
 
동유럽 국가 우크라이나는 “냉전 이후 새로운 베를린 장벽”(뉴욕타임스)으로 불리며, 서방과 러시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이다.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놓여 ‘완충 국가’ 역할을 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탓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와 서구 국가들의 지정학적 야심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러시아가 절박하다. 냉전 종식 후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데다, 독일 통일 당시 동유럽으로 세력을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역시 점차 동진하며 러시아를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며 마침내 그 야심을 드러냈다. 이후 서구 국가들의 대대적인 제재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이 나라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친러시아 성향의 동부 지역(돈바스 지역)에서 정부군과 반군(친러시아)의 군사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가까워지고, 나아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이 지역 전체에서 영향력을 급속히 잃게 될 것이란 푸틴의 우려 때문이다.  
 
지난 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열린 시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친러시아 성향의 동부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항의하는 시민 수천명이 쏟아져나왔다. [AP=연합뉴스]

지난 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열린 시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친러시아 성향의 동부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항의하는 시민 수천명이 쏟아져나왔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친서방 성향이다. 이는 “EU(유럽연합)와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노선”이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식적인 입장에서도 확인된다. 그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반군과의 싸움에서 미국의 지원 없이는 사실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같은 상황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러시아 측에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란 뜻밖의 호재가 나타난 것이다.
코미디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EPA=연합뉴스]

코미디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EPA=연합뉴스]

 
미국의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이 스캔들의 가장 큰 수혜자는 크렘린궁”이라며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단 한 번의 완벽한 스캔들로 ‘무책임한 미국과 부패한 우크라이나’의 모습을 보여줬고, 이는 푸틴에게 커다란 선물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서구 세계에 통합되려 노력하는 일이 허황된 꿈이란 걸 알리려 부단히 애써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도와준 셈"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가 스스로 우크라이나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했다는 뜻이다. 폴리티코는 또 “러시아는 이번 스캔들을 적극 이용해 '서구 세계는 분열돼있고 무책임하며 부도덕하다'는 오래된 선전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이번 스캔들은 서구 민주주의 제도를 비방해 온 푸틴 대통령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며 “푸틴 대통령은 웃고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부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 지역 자치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러시아에 굴복하는 행위"라며 수천명의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연일 시위를 벌이고는 있지만, 앞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은 변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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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트럼프 비방할 이유 없다” 일단 두둔

유리한 패를 쥔 푸틴 대통령은 일단 트럼프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국제포럼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방할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며 “그는 단지 이전 행정부 직원들의 부정 거래가 있었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정부 직원에 의한 비리가 있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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