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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조국 덕분에 우리가 성취한 것들

중앙일보 2019.10.09 00:27 종합 23면 지면보기
고정애 정치팀장

고정애 정치팀장

4주 전 이 자리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조국 정국’에 대해 다시 쓰려니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일한 글감을 또 택했는데, 8·9 개각 이후 이어져 온 ‘울혈’ 속에서도 우리가 이룬 적지 않은 성취를 상찬하기 위해서다. ‘어려운 상황 속 희망’(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겠다.
 
우선 100만 명에의 성찰이다. 사실 『삼국지연의』의 100만 대군은 실로 100만은 아니었다. ‘대단히 많다’와 동의어였다. 대체로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얻게 된 건 현대에 이르러서였다. 대부분 이들에겐 1987년 여의도가 떠오를 거다. 노태우·YS·DJ가 유세했는데 각각 100만 명 이상 모였다고 했다. 한 명을 두세 명으로 셌다는 설도 있으나 어쨌든 그랬다. 그러다 지난달 28일 서초동 집회가 10만 명이었던 게 순식간에 200만 명으로 늘었고 닷새 뒤엔 광화문에선 “서초동이 200만 명이면 우린 2000만 명”이란 외침이 있었다. 전자가 텔레포트의 대중교통 수단화 가능성을 시사한다면 후자는 광화문 일대 14만㎡에 남한 사람의 40%가 들어서는 신공(神功)을 의미할 수 있다. 양쪽 다 지금은 세 과시를 안 하는 겸양지덕을 발휘 중이다.
 
문 대통령이 두 집회에 대한 언급은 이견에 대한 관용 폭을 드러낸다. ‘조국 수호’와 ‘조국 구속’ 사이엔 장강이 흐르는 듯한데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광화문을 향해 “내란 선동” “폭력집회”라고 드잡이하는 정당 소속인가 싶다.
 
‘검찰개혁’의 의미 확장도 주목할 만하다. 문 대통령 스스로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하나로 모아지는 국민의 뜻은 검찰개혁”이라고 했는데 검찰개혁의 뜻(정확하겐 방향)이 하나로 모아진 건 아니어서다. 오히려 반대다. 지난해 1월 “직접 수사는 축소하겠다. 이미 검찰이 잘 하고 있는 특수 수사 등에 한해 검찰의 직접 수사를 인정하겠다”던 조국 장관이 이제 와 특수부를 없애겠다고 하는 걸 떠올려보라. 검찰이 권력을 추종하니 개혁하겠다고 하다가, 검찰이 권력에 맞서니 개혁하겠다는 데서 오는 변이다. 국회에서 조속히 입법하라는 주문인데 전자의 법인지, 후자의 법인지 애매할 따름이다. 국회 충돌 과정에서 확인될 것이다.
 
비로소 무죄 추정의 원칙이 뿌리내릴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는 데 쓰이는 기준이 좋은 자리로 보내는데도 쓰이는 게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정당하나, 유죄 추정의 유구함도 감안해야겠다.
 
진보의 진화도 있다. 2012년 한 진보 학자는 이렇게 호언했다. “섹스, 대통령 권력, 어느 것이든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은 진보 진영에서 존경받기 어렵다. ‘권력’은 얻고 싶어도 ‘권력 의지’는 숨겨야 한다. 욕망을 감추고 살다 보니, 남의 숨겨진 욕망이 자꾸 눈에 밟혀서 상대방의 욕망을 들춰내고 난도질하는데 귀신같은 능력을 보여준다. 진보 대 진보의 논쟁이 진보 대 보수의 논쟁보다 훨씬 더 살벌할 수밖에 없다.”
 
요즘 진보의 ‘귀신같은 능력’은 같은 편 봐주기에 쓰인다. “PC 빼돌린 게 증거 보전”이란 논리가 그 예다. 이런 진화에 난감해하는 이도 있으나 아직 소수다.
 
어쩌면 진정한 성취는 살벌한 진영 대결에도 불구하고 ‘상식선’ 또는 ‘공감대’란 게 있을 수 있다는 걸 드러내는 짧은 순간이다. 검찰을 향해 “야당 의원을 대상으로 한 패스트트랙 수사를 자제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야당 소속 법사위원장을 감싸며 야당 의원들이 “법사위원장의 말이 조 장관과 뭐가 다르냐. 내로남불”이라고 하자 한 민주당 의원이 외쳤다는 말이다. “내가 조국이냐?”
 
고정애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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