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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 조국부터 베고 검찰을 베라

중앙일보 2019.10.09 00:08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친문 쪽은 조국 사태를 ‘언론 참사’로 몰아가고 있다. 근거 없는 과잉보도로 조국 법무장관 가족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 사회에선 진실이 무엇인지 판명 난 지 오래다. 지난달 24일 기자협회가 ‘이달의 기자상’에 한국일보·동아일보 기사를 뽑은 게 그 상징적 장면이다. 한국일보는 “조국 딸, 두 번 낙제하고도 (부산대) 의전원 장학금 받았다”고 첫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그 다음날 “고교 때 2주 인턴 조국 딸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라는 특혜 의혹을 보도했다. 숨겨진 진실을 밝혀낸 특종으로 공식 인정 받은 것이다. 최순실 사태 때 태블릿 PC를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정서법으론 이미 유죄
검찰 개혁이 조국 보호막 안돼
문재인 정치의 복원도 시급
지지층 아니라 전 국민 보길

길거리에선 ‘조국 구속’과 ‘조국 수호’의 구호가 맞부딪히지만 국민정서법 상 조 장관은 이미 유죄다. 다음은 지난 칼럼에 달린 댓글이다. “우리 서민들은 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공직자와 그 가족들이 우리보다 좀 더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양심과 수치를 아는 사람이어서 존경받는 자들이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가 국민을 화나게 하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서적으로 조 장관 일가의 특권과 반칙에 크게 실망한 것이다.
 
서초동 집회에 대한 분석은 진보 신문들이 더 예리하다. “정국의 향배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조 장관의 도덕성에 실망해 의견 표출을 꺼리던 범여권 지지층이 ‘검찰 개혁’이란 명분이 나오자 적극 행동에 나선 것”이라거나 “이번 싸움에서 밀릴 경우 문 대통령이 후폭풍을 직접 맞을 수도 있다는 범여권 지지층의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검찰 개혁=조국 구하기’ 프레임은 오히려 검찰 개혁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지금 검찰이 청와대와 맞짱 뜨는 풍경을 그대로 믿는 것은 순진하다. 불과 석 달 전 한 진보신문의 칼럼은 “법무부 검찰국장과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수부장)은 모두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들이다. 그 연줄로 최고 실세로 군림하는 이는 ‘내가 노무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유일한 검사잖아’, ‘세월호 사건 수사하느라 (당시 정권의 외압 때문에) 고생했지만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며 호가호위에 공치사를 한다는 소문이 서초동에 자자하다…”고 썼다. 그 검찰이 지금의 검찰이다. 단지 조 장관의 비리를 어디까지 수사할지를 놓고 청와대와 입장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서초동 집회에서 “왜 특수부 검사 20명이나 달라붙어 한 가족을 탈탈 터느냐”고 따지는 것은 단세포적이다. 거꾸로 왜 그렇게 많은 검사를 투입해야 할 만큼 조 장관 일가의 비리 의혹이 쏟아지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왜 걸핏하면 해외로 도피하고 컴퓨터 하드를 바꾸는 등 증거인멸과 훼손을 일삼는지 따져야 할 것이다.
 
청와대가 뒤늦게 검찰 개혁을 들고나온 것도 염치없다. 지난 2년간 적폐 청산 과정에서 검찰과 밀월을 즐겼다. 진보진영이 처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은 지난해 12월 말 검찰이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을 수사하고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조사하면서부터다. 진보 매체들은 일제히 “지금 검찰개혁 못 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촛불 시민들이 검찰을 ‘우리 편’으로 여기는 것은 큰일”이라고 채찍을 꺼냈다. 하지만 이런 호들갑도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검사들이 모두 쫓겨나면서 잠잠해졌다. 집권 세력이 그렇게 묻어버린 불씨를 조국 수사가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윤 총장과 교감해온 한 전직 검찰총장은  전했다. “윤 총장은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는 저돌적으로 치받지만 참모들의 합리적 건의는 따르는 스타일이다. 이번 건도 대검 참모들이 ‘인사청문회가 아니라 수사 대상’이라고 의견을 모으자 ‘내가 책임지겠다’며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는 “윤 총장은 이번 수사를 검사로서 마지막 책무로 여기는 모양”이라고 했다. 이미 마음을 비운 분위기다.
 
청와대는 여전히 사법절차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시간’은 이미 돌아가는 중이다. 두 달째 조국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은 피로감과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시라도 바삐 조 장관을 베고 그 다음에 검찰을 베는 게 제대로 된 수순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치의 복원도 시급하다. 한때 큰 울림을 주던 정치적 리더십이 32.4%(한국리서치)로 추락한 지지율처럼 어느새 형편없이 왜소해져 버렸다. 그제 대통령이 “국론분열이 아니라 국민의 뜻은 검찰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라 서둘러 결론내려 버린 것도 마찬가지다. 전체 국민 대신 지지층만 바라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참고했으면 하는 연설이 있다. “우리 민주당에는 두 그룹의 애국자가 있습니다.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애국자, 그리고 이라크전을 찬성하는 애국자입니다.” 이렇게 미국의 오바마는 반대진영의 애국심까지 끌어안았다. 몇달 뒤 그와 맞선 공화당의 존 매케인도 큰 정치가였다. 그는 한 여성 지지자가 “흑인인 오바마가 당선되는 게 두렵다”고 하자 이렇게 다독였다. “오바마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훌륭한 미국 시민이며 안심해도 좋습니다. 저와 몇 가지 사안에서 의견이 다를 뿐입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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