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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퍼스펙티브] 앞날의 기대 빼앗긴 개인, ‘부의 추월차선’ 올라타려 해

중앙일보 2019.10.09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베스트셀러로 드러난 한국 사회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정보화 사회가 심화하고 SNS 도구가 늘어나면서, 우리 영혼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졌다. 미국 법학자 팀 우의 표현을 빌리면 사흘만 지나도 잊히는 정보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게 유도하는 ‘주의력 장사꾼들’ 탓에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진정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를 잊어버리고 있다.
 

서민들의 투기적 욕망 보여주는
부동산과 주식 투자 책 대유행
평등하게 소통하는 세계 원하고
한없이 자기 위로하는 책도 인기

실시간 이슈로는 우리 자신을 알 수 없다. SNS 화제와 검색은 이성을 빼앗긴 채 방황하는 우리의 신경증을 표현할 뿐이다. 우리한테는 또 다른 화살표가 필요하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면서도 숙고된 사유와 심오한 욕망이 담겨 있는 나침반이…. 책이다. 개별 주체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소수자 가치를 집약하면서도 욕망의 집합적 연대를 표시하는 정신의 도구는 여전히 책밖에 없다. 책은 인간에게 깊은 사유를 가르치고, 섬세한 감정을 교육하며, 행동에 나서도록 욕망을 충격한다. 한 문명이 이룩한 사유와 감성과 욕망의 극한이 정련된 언어의 형태로 책에 담겨 있다.
  
독서 통해 시대 흐름 읽고 헤쳐나가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독자의 주관적 도서 구매 요인에는 심리적 만족, 지인 및 매체 추천, 콘텐츠 가치 등이 주로 작용한다. 한 해 8만 종 이상 신간이 발행되는 현실 때문에 도서 마케팅의 입김이 갈수록 거세지는 중이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도서 구매를 통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실현하거나, 지식과 지혜를 얻어 시대 흐름을 파악하고 닥쳐온 여러 문제를 해결하며 자기 향상을 꾀하거나,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기만족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 이를 고려하면 여전히 우리가 읽는 베스트셀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다.
 
2016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교보문고와 예스24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든 도서는 238종이다. 시리즈물의 경우 1종으로 세고, 외국어·학습서·어린이·만화 분야 도서들은 콘텐츠 특성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정판·기념판 등 특정 서점에 독점 공급되어 마케팅 베스트셀러를 유발한 책들도 고려하지 않았다. 『자존감 수업』부터 『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에 이르는 책들을 분류·정리한 후, 책의 내용, 관련 기사나 분석 자료, 인터넷 서평 등을 일일이 살피자, 우리 정신의 흔적이 드러났다. 우리 영혼의 양치기는 지금 누구인가. 우리의 이성과 감성의 소리굽쇠는 도대체 어떤 책과 공명하면서 떨리고 또 울리는 걸까.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저자는 히가시노 게이고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등 모두 8종이었다. 유시민, 김난도, 기욤 뮈소가 4종, 김영하, 이기주,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7명이 3종으로 뒤를 이었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공지영, 김훈, 유발 하라리 등 21명이 2종, 강원국, 박상영, 정재승 등 157명이 1종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다. 쏠림 현상은 아주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바일 시대에 진입해 서적의 시장 접근성이 개선된 덕분인지 독자의 높은 평판을 획득한 작가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곤 했다.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저자를 기준으로 살펴볼 때, 저자의 연령대는 20대 5명(2.0%), 30대 38명(15.0%), 40대 43명(17.0%), 50대 32명(12.6%), 60대 18명(7.1%), 70대 11명(4.3%), 기타 6명(2.0%)이었다. 성별은 남성 181명, 여성 47명으로 남성 비율(82.0%)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출판시장에서 여성 독자 비율이 60%를 넘어서는 것을 고려할 때, 베스트셀러의 경우 주로 남성이 쓰고 여성이 읽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전에는 작가나 교수 등 직업적 작가군이 중심이었다면, 블로그 활동 등이 활발해지면서 전문 직종에서 경험을 쌓은 저자들이 온라인 연재를 통해 이름을 알린 후 베스트 작가군에 진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내물이 153종, 해외물이 85종으로, 국내물 비중은 64.4%다. 요즈음 도서시장에서 저자 인지도, 사회적 영향력, 미디어 활동이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증가했는데, 이를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분야로는 가정 11종, 건강 2종, 경제·경영 34종, 과학 3종, 소설 44종, 시 3종, 에세이 50종, 역사 6종, 예술 2종, 인문 34종, 자기계발 34종, 정치·사회 8종 등이다. 소설·시·에세이 등 문학 범주에 들어가는 책들과 경제·경영·자기계발 등 직장 업무에 필요한 책들이 상대적으로 높다. 마케팅 편의상 인문서로 분류된 심리 관련 서적들에도 전통적으로 자기계발에 속하는 책들이 상당하다. 이는 베스트셀러의 중심 독자들이 주로 성장 욕구를 가진 30~40대 여성 직장인들임을 알려준다.
  
개인은 작은 습관으로 자기 변화 꾀해
 
책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엇보다 서로를 주인으로 모시면서 평등하게 소통하는 세계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갈망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일터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민주주의는 번번이 소멸하고 좌절된다. 말하는 법을 연습하고 단어를 택하는 방법을 바꾸고 싶지만, 우리는 아직 명령과 복종은 버리고 권위와 자존은 살리는 소통 방식을 충분히 모른다. 격려하고 존중하는 ‘언어의 온도’를 향한 파토스가 이로부터 범람한다. 타자로부터 나를 지키고 상처받은 일상을 위무하는 에세이와 취향에 근거를 둔 ‘작은 사치’를 고무하는 책은 짤막한 글 몇 줄과 사진·그림 등이 어우러진 형태 자체가 내용을 이룬다. 이념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지나치게 팽팽히 당겨진 신경 줄이 어느 순간 잘리지 않도록 사람들은 한없이 자신을 위로하는 중이다.
 
촛불의 열망은 아랑곳없이 양극화가 여전히 심화하고 계급 사다리가 유지되는 흐름은, 이 시대의 쥘리앵 소렐을 만들어낸다. 배반에 대한 여러 차례 학습을 통해 사람들은 이미 안다. 제 이익을 양보하지 않는 소수 엘리트가 쏟아내는 입바른 말들이 세상을 별로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실제로 삶이 변화하는 기적을 보고 싶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 습관이 우리의 도구다.  
 
『아주 작은 습관』을 바꾸어 미래를 바꿀 수만 있다면…. 그래서 우리는 생각의 습관을 바꾸고, 일하는 습관을 바꾸고, 말하는 습관을 바꾸려 한다. 하지만 작심삼일이 대부분. 실제 행동 습관은 바꾸지 못하고 습관을 바꾸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을 읽는 습관이 생겼을 뿐이다.
 
우리는 어쨌든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이대로 성실해서는 아이를 낳을 수도, 집 한 칸 얻을 수조차 없다. 이 마음이 블록체인, 가상화폐 등 미래 흐름을 미리 추적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명견만리』 하고 싶고, 『90년대생이 온다』는 것을 남보다 먼저 알고 싶다. 저출산·저성장 등이 앞날의 기대를 빼앗고, 적절한 사회적 대안이 제시되지도 않는 것이 『예견된 미래』일 때, 한 개인의 혁명은 전면적 투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어떻게든 『월급 독립』을 이룩해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고 싶다. 부동산과 주식 부자 책들의 대유행은 서민들의 투기적 욕망을 보여준다. 설령 그 끝이 대부분 파멸로 이어질지라도 다른 건강한 대안이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억압된 소수들이 사회 모순 폭로
 
하지만 가능성이 모조리 닫힌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 『82년생 김지영』들과 그 친구들은 문학에서, 사회에서, 정치에서 끝내 미래로 열린 틈을 생성한다. 차별적 시선에 피 흘리면서도 머리를 부딪쳐 벽을 문으로 만든다. 퀴어문학, SF문학, 추리소설 등이 우리의 진짜 무의식이다. 또 다른 길이 분명히 있다. ‘알려지지 않은 눈물을 흘리’지만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언어의 새로운 주체가 존재한다. 억압된 소수들이 입술을 열기 시작하자, 멀쩡한 듯 운영되었던 세계의 흐름이란 완전히 어색하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언제나 그렇듯, 반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반일종족주의』 같은 것도 한 움큼 남아 있다. 이들은 노예가 밥 굶지 않으니 좋았다고 여기고, 여성이 직장 안 다녀도 먹고사니 행복하다고 어리석게 생각한다.
 
책이 인간을 기록한다. 책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끝내 알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책은 있다. 당신의 눈앞에,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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