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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캄보디아댁' 피아비, "못하면 놀림감 될까봐…"

중앙일보 2019.10.08 09:24
2년 연속 세계 여자3쿠션 세계선수권대회 3위에 오른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 장진영 기자

2년 연속 세계 여자3쿠션 세계선수권대회 3위에 오른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 장진영 기자

“난 이 곳에서 유일한 캄보디아인이다. 잘하지 못 하면 놀림감이 될까봐 더 잘하고 싶더라.”
 

세계3쿠션선수권 2년 연속 공동 3위
한국인과 결혼해 당구로 인생역전
스페인 비자발급, 한국이 도와줘
"한국과 캄보디아 위해 뛴다"

세계 여자3쿠션 세계선수권대회 3위에 오른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29)가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피아비(세계랭킹 2위)는 지난 2일 스페인 발렌시아 아테네오 메르칸틸에서 열린 2019 세계캐롬연맹(UMB) 여자3쿠션 세계선수권대회 공동 3위에 올랐다. 
 
캄보디아가 개발도상국이다보니 이번 대회 주최국인 스페인이 비자발급 조건을 까다롭게했다. 한국과 여러단체가 도와준 덕분에 피아비는 극적으로 비자를 받아 출전할 수 있었다. 
 
피아비는 16강전에서 요크 브루어(네덜란드)를 30-16으로, 8강에서 에스텔라 카르도소(스페인)를 30-13으로 꺾었다. 그러나 4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 1위 테레사 클롬펜하우어(36·네덜란드)에 14-30으로 졌다.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여자3쿠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기록한 피아비(오른쪽). [사진 대한당구연맹]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여자3쿠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기록한 피아비(오른쪽). [사진 대한당구연맹]

캄보디아 출신 피아비는 한국으로 시집와서 당구로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피아비는 2010년 충북 청주에서 인쇄소를 하는 김만식씨와 국제 결혼했다. 이듬해 남편을 따라 찾았던 당구장에서 처음 큐를 잡았다. 하루 20시간 이상 연습하는 등 열정을 쏟은 끝에, 한국대회를 휩쓸었고 지난해 11월 아시아 여자스리쿠션선수권에서 우승했다.

 
당구로 이름을 알린 피아비는 지난 3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캄보디아 국빈 방문 행사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자양강장제 박카스와 후원협약을 맺었고,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도 출연했다.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출연한 피아비가 남편 김만식씨와 음식을 함께 만들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KBS 캡처]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출연한 피아비가 남편 김만식씨와 음식을 함께 만들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KBS 캡처]

어린 시절 의사가 되고 싶었던 피아비는 가난 탓에 꿈을 포기해야 했다. 7학년을 졸업한 뒤 캄보디아 캄퐁참에서 아버지의 감자 농사를 거들며 지냈다. 캄보디아는 월급이 25만원, 1인당 국민소득이 150만원대로 넉넉하지 않다.

 
피아비는 한국이 자신에게 베푼걸 고향에 전하고 싶어한다. 지난 1월 캄보디아를 찾아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1000원짜리 한국산 구충제 1만개를 나눠줬다. 그간 모은 돈으로 지난 3월 캄퐁톰에 학교부지 1헥타르(약 3000평)을 매입하기도했다.  
피아비는 지난 1월 캄보디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1000원짜리 한국산 구충제 1만개를 나눠줬다. [사진 피아비]

피아비는 지난 1월 캄보디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1000원짜리 한국산 구충제 1만개를 나눠줬다. [사진 피아비]

-지난해 세계선수권 첫 출전(4강)에 이어 2년 연속 세계선수권 출전이다. 아쉽게 이번에도 결승 진출엔 실패했는데.
“아직 국제 무대에서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물론 (4강전 상대인) 클롬펜하우어는 세계 최정상의 선수다. 경기하면서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더라. 다만 스스로 그저 즐겁게 치자는 마음을 가졌는데 생각만큼 스트로크가 잘 되지 않았다.” 
 
- 경기 중 샷 실수가 나온 뒤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장면도 있었는데.
“‘내가 못 치는 게 아닌데 왜 그럴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는 것 자체로도 행복한 일인데 슬픈 감정이 교차했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반면 클롬펜하우어는 냉정하게 치더라. 정말 배울 게 많았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제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을 때 느낌은 어떠한가.
“아무래도 캄보디아 국가 대표로 세계 무대에 출전하기에 마음가짐이 다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연습했던 게 실전에서는 잘 발휘가 되지 않는 것 같다.”
 
- 2년 연속 세계선수권 출전을 통해 가장 얻은 게 있다면.

“당구는 자신만의 리듬이 중요하다. 한국 당구장에서 경기를 할 땐 각을 판단한 뒤 나만의 감각을 믿고 즉각적으로 샷을 하는 스타일이다. 다만 국제 무대에서는 40초 룰이 있다. 내 리듬대로 치면 잘 맞을 공 포지션임에도 순간 ‘시간이 길어서 더 생각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다. 내 감각을 믿고 쳐야 하는데 불필요한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당구 코리안 드림을 펼친 캄보니아 댁 스롱 피아비. [중앙포토]

당구 코리안 드림을 펼친 캄보니아 댁 스롱 피아비. [중앙포토]

-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려면 자국 연맹이 존재해야 한다. 캄보디아가 지난해 본인을 위해서 연맹을 창설했다. 그런 점에서 더욱 부담을 느끼나.
“캄보디아 대표로 이런 대회에 출전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국의 배려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이번에도 (개발도상국에 대한 비자 발급 조건을 까다롭게 해) 스페인 비자를 받는 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한국과 여러 단체에서 도움을 주셨다. 스롱피아비,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신경을 써주셔서 부담도 느끼지만 이렇게 조국을 대표해서 나온 것에 더욱 큰 자부심을 느낀다. 난 이 곳에서 유일한 캄보디아인이다.(눈시울 붉히면서) 잘하지 못 하면 놀림감이 될까봐 더 잘하고 싶더라. 캄보디아에서 나를 바라보는 분이 많고 당구를 하고 싶어하는 유망주가 많다. 나로 인해서 연맹도 창설된만큼 더 잘해서 캄보디아를 알리고 당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
 
- 동남아시아에 베트남이 당구 강국으로 발돋움했는데, 캄보디아의 잠재력을 평가한다면.
“정말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나 역시 당구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매일 직장을 잘 다니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도와주는 게 내 길인 것 같다. 최근 캄보디아 연맹에도 ‘내가 한국에서 도움 받은것처럼, 조국에서 유망주를 돕는다면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늘 캄보디아에서도 세계 챔피언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 피아비가 생각하는 당구의 매력은.
“재미보다 멋있는 스포츠다. 잘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나를 표현할 도구가 된다. 당구를 배우면서 생활 태도와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 여러 나라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사람들의 다양한 사고와 매력을 느끼면서 세상을 배웠다.”
 
- 남편 외조가 화제가 됐는데.
“‘내가 주목받으면서 잔소리도 심해졌다.(웃음) 이번에 스페인에 오기 전에도 난 잘 할 수 있는데, 남편 눈엔 부족한 점이 많이 보였나 보다. 여러 잔소리에 서운했다. 그래도 내게 늘 좋은 조언을 해주는 버팀목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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