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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춘재, 화성8차 때 유력 용의선상…음모 형태 달랐다

중앙일보 2019.10.08 09:07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범인이 잡힌 8차 화성 살인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해 논란이다. 이 사건으로 20여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당시 22세)씨도 "경찰의 강압수사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8차 사건 당시 이춘재가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 조사 선상에 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이 이춘재의 음모도 뽑아 조사했는데 결과는 이춘재가 아닌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1988년 9월 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의 한 가정집에서 A양(당시 13세)이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다른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달리 피해자의 옷가지로 결박하거나 재갈을 물리지 않았고 야외가 아닌 집 안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하지만 피해자가 성범죄를 당했고 목이 졸려 사망했다는 공통점 등으로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분류됐다.
 

이춘재 음모, 용의자 것과 일치 안 해

A양의 살해 현장에선 남자의 음모 8개가 발견됐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수거한 음모 8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보냈다.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으로 정밀감식한 결과 용의자의 혈액형은 B형이고 중금속인 티타늄(13.7ppm)이 다량 검출됐다는 결과를 받았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티타늄을 사용하는 용접공이나 생산업체 종업원 중 B형 혈액형을 가진 460명의 음모를 취합해 감정을 의뢰했다. 
또 A양이 집안에서 살해된 만큼 A양 집안을 잘 아는 면식범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진안리 남성들의 음모도 함께 채취했다고 한다. 이때 이춘재의 음모도 채취됐다.
실제로 진안동에 오래 거주한 한 70대 남성은 "당시 경찰들이 범인을 잡는다고 동네 남자들의 음모를 다 뽑아갔었다"고 말했다. 
8차 화성 연쇄살인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8차 화성 연쇄살인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하지만 국과수가 범행 현장의 음모와 수거한 남성들의 음모를 대조해 조사한 결과 이춘재의 것은 일치하지 않았다. 이춘재의 음모는 A양 사망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형태 등이 달랐다고 한다. 
8차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관계자는 "당시 고교생 이상 남성의 음모는 모두 채취해 이춘재의 음모도 조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8차 사건 용의자의 혈액형은 B형으로 이춘재(O형)와 달랐고 국과수 조사 결과에서도 윤씨의 음모가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한다고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이춘재, 8차 사건 당시 용의 선상에 

경찰이 8차 화성 살인 사건 당시 이춘재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이춘재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 3차례 용의 선상에 올랐다.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첫 번째는 1987년 5월 6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후 한 주민이 "1986년 8월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용의자가 이춘재인 것 같다"고 제보해 조사 대상이 됐다.
이춘재는 8차 화성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또 용의 선상에 올랐다. 당시 이춘재는 숨진 A양 집 인근에 살았다. 면식범의 소행일 것이라고 의심한 경찰은 이춘재에 대한 초기 수사가 미진했다고 보고 1988년 말부터 이듬해 4월까지 재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국과수 조사 결과에서 8차 살인범의 범인으로 윤씨가 지목됐다.  
이춘재는 1990년대 초에도 경찰 조사 대상이 됐지만,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세 번째 조사는 대면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이 사건을 수사했던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당시 이춘재와 윤씨 모두 숨진 A양 집 근처에 살았다"며 "이춘재의 경우 이전부터 용의자로 의심을 받았던 만큼 더 철저하게 조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 "살인한 적 없다. 억울하다" 

과거 경찰은 국과수가 분석 결과를 가지고 윤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고 한다. 당시엔 최첨단 수사방법이던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을 사용했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수법이지만 체모 등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을 분석해 용의자의 것과 대조하는 기법이다. 윤씨는 B형이었고 범행 현장에서 나온 음모와 윤씨의 음모가 일치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경찰은 이 결과를 토대로 윤씨를 추궁해 자백을 받았다. 1심 재판부도 경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윤씨는 항소했지만 2심과 3심에서 기각돼 무기수로 복역하다 감형받아 2009년 가석방됐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화성경찰서 태안지서 [중앙포토]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화성경찰서 태안지서 [중앙포토]

그러나 윤씨는 2심·3심 재판에선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경찰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허위 진술했는데 법원이 허위로 자백한 내용만 가지고 유죄로 인정했다"고 했다.
청주교도소의 윤씨를 담당했던 교도관 A씨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씨가 수감 당시에도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 왔다"고 말했다. 윤씨는 현재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윤씨의 2심·3심 판결문은 "윤씨의 자백이 고문 등 강요로 자백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자백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당시 윤씨를 조사했던 경찰관들도 "현장에서 윤씨의 지문이 나왔고 윤씨가 소아마비를 앓고 있긴 하지만 팔 힘이 쎄 담을 넘을 수 있는 점도 확인했다. 당시 A양의 방 구조나 시신 상태 등도 윤씨의 진술과 일치했다"며 수사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춘재의 자백이 거짓이거나 당시 수사가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은 "용의자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건을 포함해 14건의 살인사건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지만, 기억력에 의존해 진술하고 있어서 과거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며 "8차 사건의 경우 윤씨가 '억울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해 당시 국과수 조사 결과나 수사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8차 수사기록이나 당시 현장 증거물인 음모 등은 남아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범행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수원·화성 일대는 물론 충북 청주지역 미제 살인 사건과 성범죄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보다 더 많은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용의자가 진술하지 않은 범죄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진술한 범죄가 이 씨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 용의자의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모든 미제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쉬는 날을 빼고 되도록 조사하려고 하는데 용의자가 심경 변화를 일으켜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이춘재를 상대로 13차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최모란·진창일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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