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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이판사판 검찰 개혁

중앙일보 2019.10.08 00:28 종합 27면 지면보기
강주안 사회 에디터

강주안 사회 에디터

갈라진 나라를 개탄하던 사람들이 문득 묻는다. “멀쩡하던 친구가 왜 이리 이상한 사람이 됐지?”
 

조국 가족 비리 너무하다는 분노
윤석열 수사 배은망덕하다는 반감
둘의 충돌에 엉망되는 국가형벌권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온 시민들이 어쩌다 원수가 됐는지 관찰해봤다. 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제시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이 서로 모순돼 양립할 수 없다고 느끼는 불균형 상태)가 주범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혼동을 유발한 팩트는 세 가지다.
 
첫째 조국 법무부 장관과 가족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둘째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조 장관을 임명했고 조 장관은 물러날 기미가 없다.
 
셋째 대통령이 발탁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엄중 경고에도 불구하고 조 장관을 겨냥한 수사를 멈추지 않는다.
 
이 세 팩트가 유발하는 인지부조화는 혼란을 넘어 분노를 부른다. 이 중 어떤 사실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행선지가 갈린다.
 
서소문 포럼 10/8

서소문 포럼 10/8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은 셋째 팩트를 참지 못한다. 대통령이 총애하는 법무장관을 윤 총장이 집중 수사하는 건 배은망덕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이런 검찰은 없었다. 조 장관의 낙마는 대통령에게도 큰 타격이다. 대통령은 윤 총장을 파격 발탁했는데 어떻게 청와대와 여당을 궁지로 몰 수 있느냐는 배신감에 떤다. 윤 총장이 지금이라도 납작 엎드리면 화가 식을 텐데 그럴 낌새가 없다. 검찰을 확 뒤집어놔야 브레이크가 걸린다. 이런 생각을 정당화하려면 조 장관 일가의 비리 의혹은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사소한 일탈로 치부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 점점 더 큰 비리 의혹을 끄집어내니 달려가 악을 쓴다. 이들은 “빠른시간 내에 검찰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조 장관의 7일 출근길 발언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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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대검찰청 우편 취급소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수신인으로 하는 '엿'이 담긴 택배가 쌓여있다. 김기정 기자

4일 오전 대검찰청 우편 취급소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수신인으로 하는 '엿'이 담긴 택배가 쌓여있다. 김기정 기자

광화문으로 가는 사람들은 첫째 팩트에 화나 있다. 조 장관 가족이 돈과 학력과 권력을 반칙으로 거머쥐었다고 믿는다. 조 장관이 법무부 수장이라는 사실을 참지 못한다. 지금까지 이런 장관은 없었다. 특히 조 장관의 ‘언행불일치’는 목불인견이다. 이들의 정신적 고통은 조 장관이 물러나야만 치유될 텐데 자진사퇴하거나 대통령이 해임할 조짐이 없으니 화병이 심해진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 중 상당수는 검찰개혁론자다. 그러나 지금 조 장관을 퇴진시킬 건 검찰밖에 없으니 전국의 모든 검사를 투입해서라도 이 모순을 바로잡아주길 바란다. 검찰 개혁은 그 이후에 하면 된다고 합리화한다.
자유한국당과 보수단체가 예고한대로 3일 광화문 일대, 서울역, 청와대 앞 등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과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동시다발적 집회를 펼쳤다. 성난 시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몸싸움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자유한국당과 보수단체가 예고한대로 3일 광화문 일대, 서울역, 청와대 앞 등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과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동시다발적 집회를 펼쳤다. 성난 시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몸싸움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14일 오후 윤석열 검찰총장이 근무하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 앞에 장미꽃이 쌓여있다. 정진호 기자

14일 오후 윤석열 검찰총장이 근무하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 앞에 장미꽃이 쌓여있다. 정진호 기자

 
결국 조 장관이 물러나거나 윤 총장이 항복을 해야 끝날 대치다. 사태가 일단락돼도 후유증은 오래갈 거다. 윤 총장이 굴복한다고 조 장관의 허물이 덮이진 않는다. 법무장관이 준법과 정의와 공정을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피식 웃을 거다. 조 장관이 사퇴해도 윤 총장은 힘을 유지하기 어렵다. 여권에선 그의 권한을 어떻게 뺏을지 골몰할 거다.
 
이 와중에 걱정은 검찰 개혁이다. 평정심을 잃은 당사자들이 대증요법식 대책을 두서없이 던지면서 개혁이 코미디처럼 돼간다. 조 장관이 민정수석 시절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좌우에 두고 사진을 찍으며 자랑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 속 개혁안은 시행도 하기 전에 수술대에 올랐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발표

검경 수사권 조정안 발표

특수수사는 늘었다 줄었다 변덕스럽고 피의자 공개 소환 금지, 피의사실 공표 금지, 심야 조사 금지 같은 급진 정책이 쏟아진다. 한쪽에선 검찰을 손본다고 고소해 하고, 다른 쪽에선 장관 가족 보호 대책이라고 비웃는다. 본의 아니게 친기업 변신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조사를 받기 위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조사를 받기 위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의 중심인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최순실씨가 3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기 위해 취재진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의 중심인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최순실씨가 3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기 위해 취재진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법 개정이 필요 없는 검찰 힘 빼기 조치를 시행하고 못질을 하겠다지만 쉽게 박은 못은 쉽게 뽑힌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그랬다. 기자실을 폐쇄하고 대못질을 했지만 다음 정부에서 고스란히 못이 뽑혔고 폐쇄성은 여전하다. 8년 전 개국한 JTBC의 기자들은 아직도 서울시청 기자단에 가입을 못했다. JTBC는 언론인 대상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매체로 뽑혔지만 번번이 기자단 투표에 막혔다. 여당 시장 관할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경찰청 기자실 폐쇄에 반발하는 출입기자들이 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항의 방문할 예정이었던 13일 오전 청사 9층 청장실 앞에 경찰들이 배치돼 기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경찰청 기자실 폐쇄에 반발하는 출입기자들이 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항의 방문할 예정이었던 13일 오전 청사 9층 청장실 앞에 경찰들이 배치돼 기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참여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의해 지난해 11월 폐쇄됐던 국세청 기자실이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12일 다시 문을 열었다. 출입기자들이 새롭게 단장된 기자실에 앉아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의해 지난해 11월 폐쇄됐던 국세청 기자실이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12일 다시 문을 열었다. 출입기자들이 새롭게 단장된 기자실에 앉아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당장 검찰의 팔다리를 잘라내고 봉합수술도 못하게 재를 뿌려도 분이 안 풀릴 터다. 그러나 훨씬 독하게 진행했던 적폐 수사와 고위 법관들을 법정에 세워 사법부를 물갈이한 ‘코드수사의 추억’도 함께 저울에 올려두고 진중한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의 형벌권을 축구공 다루듯 하면 훗날 그 공에 얻어맞아 많이 아플 수 있다.
 
강주안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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