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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의 역설…조기퇴직 늘고 정년퇴직 줄어

중앙일보 2019.10.08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2013년 60세 정년이 법제화해 2016년 정착됐지만 이후 되려  조기 퇴직으로 회사를 떠나는 사람은 늘고, 정년퇴직자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정년을 더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않는 한 의도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고사직·명퇴·정리해고 비율
2016년 9.6%→올해 12.2%로
장기근속자 인건비 청년의 4배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손질해야

7일 통계청의 ‘2019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퇴직한 55~64세 취업 경험자 가운데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는 비율은 9.6%였다. 이 비율은 이듬해 11%대로 올라가더니 올해는 12.2%까지 높아졌다. 인원수로도 같은 기간 41만4000명에서 60만2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중장년층의 고용안정을 위해 정년연장을 시행했지만, 인위적인 퇴직이 더 늘어나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반면에 정년퇴직한 사람의 비율은 같은 기간 8.2%(35만5000명)에서 7.1%(35만명)로 떨어졌다.
 
정년퇴직은 줄고, 조기퇴직은 늘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년퇴직은 줄고, 조기퇴직은 늘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효과가 나지 않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우선 빠른 고령화 속도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고령시대의 고용문제와 새로운 고용시스템’ 발표문에 따르면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서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25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94년)·독일(76년)은 물론, 유례없이 짧았던 일본(35년)을 앞서는 속도다. 정년에 다다르는 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정년을 1~2년 늘리는 것도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을 크게 가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직무 내용이나 개개인의 역량과 무관하게 근속 기간이 길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도 걸림돌이다. 한국의 근속 30년 이상 노동자와 1년 미만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2014년 기준 4.39배로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컸다. 장년층 장기근속자 한 명을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청년 근로자 4명을 고용하는 데 소요되는 인건비와 맞먹는다는 의미다.
 
결국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손질하지 않고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 등의 수단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남재량 위원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고도성장기에는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노동 유인을 자극했지만,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며 “법(정년)과 현실(실제 퇴직 연령) 간 괴리가 더욱 확대되는 추세인데,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임금 유연성 제고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짚었다.
 
이뿐만 아니라 정년연장은 청년들의 취업 문을 좁혀 세대 갈등을 키운다. 강력한 노조의 보호를 받는 공공부문·대기업 근로자들에게만 효과가 집중되면서 이들의 기득권 강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를 감안할 때 정년연장이라는 큰 틀의 방향은 맞다. 고령화 시대 노동력 감소에 대비하고 숙련된 인력을 계속 활용하는 긍정적 효과도 크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임금체계를 직무 중심으로 전환하고, 재취업과 이직을 활성화하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년연장은 꼭 논의해야 할 사안이지만, 지금처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득보다 실이 크다”라며 “40대 말~50대 초에 은퇴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의 재고용과 창업 지원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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