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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인사이드]스톡홀름 노딜, 북한 핵 협상 '위장전술'의 실체

중앙일보 2019.10.07 16:04

Focus 인사이드

 
스톡홀름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이 노딜로 끝났다. 하노이 정상회담에 이은 또 한 번의 협상 결렬이다. 그런데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왜 북한은 협상장에 나왔는가’다. 김명길 대표의 발언과 이어진 북한 외무성 성명에는 협상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미국에 일방적인 요구만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그들이 말하는 협상이 또 다른 목표로 가기 위한 ‘위장전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념사진 찍은 뒤 '작심발언' 왜?
北, 핵 협상에 또 다른 의도 포함
'북한 도발' 트럼프 침묵은 약점
12월 이전 '제재 완화' 美 양보 노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유는 김명길 북측 대표의 협상 결렬 발언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나온 게 없다고 했다. 북한이 취한 핵실험 중지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중지, 그리고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유해송환과 같은 조치에 대해 미국이 먼저 성의 있게 화답해야 그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들을 위한 본격적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먼저 제재를 해제하고,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전략자산 한반도 인근 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주장과 반대로 미국은 북측의 발표가 8시간 반에 이르는 협상 내용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은 창의적인 협상안을 가지고 갔다고 주장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4개 합의 내용을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접근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북한의 주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도 8시간을 넘는 협상을 마치고 태연하게 기념사진까지 찍은 후에 말이다.
 
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운데)가 미국 측과 회담 후 북한대사관으로 돌아와 미국을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운데)가 미국 측과 회담 후 북한대사관으로 돌아와 미국을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김명길의 발언은 처음부터 준비한 협상결렬 선언을 그대로 읊조린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에 협상의 내용과는 무관한 일방적인 선언을 하고 12월까지 미국의 입장 변화를 기다려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계획한 북한의 협상 전략의 하나로 봐야 한다. 북한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에 있는 대선과정에서 북한의 전략 도발을 두려워한다고 믿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북정책 성과인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 중지’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고 경고한 것이 그 근거다.  
 
지난 10월 2일 동해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 3호 실험을 한 것도 이러한 셈법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을 타진하며 자신들의 협상 전략을 조율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에 해당하는 SLBM 발사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을 보며 협상의 수위를 조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북한의 도발에 침묵을 유지했다. 북한에 있어서는 약점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더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북한이 지난 2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 홈페이지에 공개된 북극성-3형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 홈페이지에 공개된 북극성-3형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렇다면 북한이 협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그것은 핵 보유의 길로 가기 위한 명분 쌓기다.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선행조치들은 아무리 협상이 다급한 트럼프 행정부라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제재를 먼저 해제하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먼저 중단했다가는 미국 국내의 반대 여론이 들끓게 될 것이다. 내년에 있을 대선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더 큰 장애 요인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북한은 자신들은 대화에 성실히 임했지만, 미국이 성의를 보이지 않아 새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발을 하지 않으며 핵무기도 포기하지 않는 상황을 이어갈 것이다. 이 경우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 한 해 북한에 대해 다시금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불안정 상황이 조성될 때 손해 보는 건 아무런 준비 없이 정상회담을 한 트럼프 대통령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경제위기를 막고 핵 보유를 굳히는 길로 가려 들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방문을 마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송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방문을 마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송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미국이 영변 핵시설과 그 밖의 농축우라늄 시설을 동결하는 대가로 석탄과 섬유제품 수출을 3년간 허용해주겠다는 일부 보도의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문제다. 이 거래는 북한의 핵을 폐기하기보다는 결국 동결 거래로 상황이 종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 후 제재가 작동되면 북한은 동결을 풀고 다시 핵물질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럼 다시 제재를 유예해 줘야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런 협상 행태를 지난 30년간 반복해 왔다.
 
만일 12월 이전에 실무협상이 재개되어 트럼프 행정부가 더 양보한다면 북한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핵무기와 핵물질을 포기한다는 비핵화의 최종상태를 밝히지 않고, 영변 정도의 폐기로 제재를 상당 부분 완화 받게 된다면 북한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핵물질 생산시설로 대북제재를 맞바꾸면 이미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400kg 내외의 핵물질과 핵탄두 그리고 ICBM을 계속해서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불완전 비핵화 협상이 되는 것이고, 그 결과 북한은 핵보유국을 굳히게 될 것이다.
 
2017년 9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 이날 김 위원장 뒤에 세워둔 안내판에 북한의 ICBM급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화성-14형'의 '핵탄두(수소탄)'이라고 적혀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017년 9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 이날 김 위원장 뒤에 세워둔 안내판에 북한의 ICBM급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화성-14형'의 '핵탄두(수소탄)'이라고 적혀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나타난 북한의 행보는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결론은 같다. 김정은의 전략적 결단을 운운하며 외교적 고립을 탈피시켜 준 실수로 인해 북한은 핵 보유의 기회를 얻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북한을 설득해 내기 위한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지를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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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의 해법은 김정은 정권에게 핵을 보유해서 얻는 이익보다 핵을 보유해서 지출하는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제재를 철저히 유지함으로써 핵을 보유하면 평생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한국의 억제력을 강화해서 북한이 핵을 갖더라도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경제성장을 희망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 정권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알게 만들 때 북한의 진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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